생각의 편린들

"너만은 약삭빠르고 적당히 눈치 보며 살아야 돼"

새 날 2014. 4. 22. 0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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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량을 직접 몰다 보면 얌체 운전을 하는 이들을 흔히 만난다.  끼어들기부터 신호 없이 차선 변경하기 등 그 유형도 무척이나 다양하다.  마치 대한민국에서 매너 없음을 자처하는 이들 모두가 죄다 도로 위로 한꺼번에 쏟아져 나오기라도 한듯싶다.  이로 인한 영향은 도로 위를 달리는 모든 운전자에게 고스란히 전가된다. 

 

인구밀도가 유난히 높은 데다가 넘쳐나는 차량으로 인해 도로 전체는 연일 북새통이다.  특히 주말의 경우엔 더욱 심해 주차장을 방불케 한다.  가뜩이나 복잡한 도로 상황에서 얌체족들의 무법 행위는 모든 운전자들을 짜증나게 하기에 충분하며, 이는 도로정체로 이어져 결국 시간 낭비로 인한 유무형의 손실을 만들어낸다.  운전자로서의 본분을 망각한 채 '나 하나쯤이야'하는 안일하면서도 이기적인 생각이 빚은 사회적 비용 치고는 제법 크다.

 

무단횡단을 일삼는 사람들의 수도 여전하다.  아니 오히려 해가 지날수록 늘어나는 느낌이다.  이는 나이와도 전혀 무관한듯 보인다.  어르신부터 어린 학생까지 너나 할 것 없다.  물론 대도심 주요도로 주변은 서로가 서로의 시선을 의식하여 그런 것인지, 아니면 도로폭이 상대적으로 넓어 그런 것인지는 몰라도 비교적 잘 지켜지는 편이지만, 조금만 외곽으로 빠져 나와도 사정은 크게 달라진다. 

 

보행자가 자신의 본분을 망각한 채 벌인 일탈 행위는 차량 주행과 보행자의 안전을 위해 정교하게 짜여져있는 교통신호체계에 혼선을 불러와 사고로 이어지거나 자칫 도로 전체를 마비시킬 만큼의 큰 혼란에 빠뜨리게 할 개연성이 다분하다.  이 또한 '나 하나 쯤이야' 현상이 낳은 사회적 병리 현상 중 하나다. 

 

일상에서 자신의 본분을 잊은 채 무수히 벌어지는 작은 일탈 행위들을 절대로 얕봐선 안 될 사건이 기어코 일어나고야 말았다.  세월호 침몰 참사는 자신의 자리를 지키지 않을 경우 벌어질 수 있는 극단의 상황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결과론적이자 결코 되돌릴 수 없어 너무도 안타까운 얘기이긴 하지만, 만에 하나 세월호 선장과 선원들이 사고 당시 모두 자신의 직분에 충실했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에 절로 머무르게 된다. 

 

아마도 그들은 배가 가라앉기 전에 탑승객들을 대피시키기 위해 최선을 다했을 테고, 세월호에 타고 있던 단원고 학생이나 기타 탑승객 대다수는 아마도 구조의 짜릿함을 맛볼 수 있었을 테다.  하지만 결과는 어땠는가?  선장과 선원들은 직분을 망각한 채 오직 자신들의 안위에 눈이 멀어 그들 스스로의 목숨을 '셀프 구조'했지만, 반대로 선체 안에서 얌전히 기다리고 있으면 구해줄 것이란 말만 철석같이 믿고 자신들의 자리를 지켰던 수많은 학생들은 차디찬 바닷속에 고스란히 잠겨 있다.

 

이런 불합리한 세상이 또 어디 있겠는가?  자신의 자리를 지키지 않은 약삭빠른 사람들은 목숨을 구하고, 우직할 만큼 순진하게 자신의 자리를 꿋꿋하게 지켰던 사람들은 오히려 목숨을 잃었으니 말이다.  때문에 혹자들은 말한다.  세상을 곧이 곧대로 믿으며 살아가면 안 되는 이유를 극단적으로 보여주는 예라고, 때문에 지키라는 사회적 규범이나 규칙 따위 어기며 사는 게 오히려 더 잘사는 방법이라고..



그렇다면 우리 아이들에게는 이를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학교에서의 도덕이나 윤리 교육과는 별개로 적당히 꾀 부리며 요령껏 살아가는 게 가장 현명하며, 잘 사는 방법이라고 설명해야 함이 옳은 걸까?  너무 올곧고 정직하다 보면 세월호 참사에서 보듯 결국 손해만 입게 될 테니, 절대로 그리 살지 말라고 신신당부하기라도 해야 하는 걸까?  혼란스럽다.

 

우리 사회에서 반칙이 난무하는 건 비단 일상 생활 뿐만이 아니다.  정치인이나 사회 고위층 인사들의 반칙은 이미 혀를 내두를 정도로 만연돼 있다.  높은 직위에 있으면 그쯤은 온당하다고 여기는 건지 서로가 눈 감아주기 바쁘다.  과거 아무리 나쁜 짓을 했어도 선거 시즌만 돌아오면 또 다시 기어나와 얼굴색 싹 바꿔 세탁하기 바쁘고, 유권자들 역시 과거 일 따위 모두 용서해주며 그들을 재차 선택한다.  썩은 윗물이 아래로 내려와 고이다 보니 사회 전체에 썩은 냄새가 진동을 한다.  일반인들에게 '나 하나쯤이야'라는 생각이 지배적으로 자리잡게 된 연유, 바로 이로부터 기인한 측면이 강하다. 

 

횡단보도에 서서 신호 바뀌기를 기다리고 있노라면 다른 사람들은 그냥 건너가기 일쑤다.  그리 해도 제지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으며, 유유히 제 갈 길을 보다 빨리 갈 수 있게 된다.  하염없이 서서 신호를 기다리는 자신만 왠지 바보가 되는 듯하고 억울한 생각마저 든다.  아울러 일방통행 골목길을 역주행하여 이동하면 금방 도착할 수 있는 길을 굳이 돌아서 갈 필요가 있을까 싶다.  많은 사람들은 요령껏 다들 그렇게들 사는데?  나만 이를 지키려니 이 또한 억울한 느낌이다.

 

우리 사회에서는 자신의 자리에서 기본을 지키며 살다가는 손해만 보는 것 같고, 반면 늘 반칙을 일삼는 사람은 오히려 떵떵거리며 잘사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국민들의 의식수준이 여기에서 머물러 있는 한 대한민국이란 나라, 절대로 선진국의 위치에 올라설 수가 없다.  육신은 성숙한 어른이지만, 정신은 여전히 유아적 수준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반칙을 통해 목숨을 부지한 선장과 선원들은 살아있되 살아있다고 볼 수가 없다.  그들이 자신의 자리를 지키지 못해 치러야 할 죗값은 평생을 바쳐도 모자랄 판국이다.  여생을 오롯이 감옥에서 죄책감에 시달리며 살게 될 공산이 크다. 

 

우리 사회, 여전히 몰상식과 비정상이 판을 치고 있다.  비정상이 정상으로 보여지고, 몰상식이 상식이 돼버린 사회에서는 어쩌면 세월호 안에 갇힌 아이들처럼 자신의 본분만을 착실히 지키고 있다간 모든 걸 빼앗길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이런 사회가 지속되기를 바라는가? 

 

그렇지 않을 테다.  '나 하나쯤이야'라는 사소한 생각이 자칫 또 다른 제2, 제3의 세월호 참사와 같은 결과를 빚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절대로 간과해선 안 된다.  이런 산 경험을 얻고도 모든 사회 구성원이 여전히 자신의 자리를 지키지 않은 채 안위와 이익만을 좇는다면, 우리 사회의 미래는 보지 않고도 뻔하다.  현재의 불합리한 사회를 아이들 세대에게도 고스란히 물려줄 텐가? 

 

"얘야, 너만은 약삭빠르게 행동하고 사회적 규범 따위 모두 지킬 필요없이 요령껏 적당히 눈치 보며 살아야 돼. 그게 잘사는 지름길인 거야"라고 말해야만 하는 사회라면 너무도 암울하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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