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편린들

아무도 책임지지 않으려는 사회.. 사과도 없이 그저 남탓만

새 날 2014. 4. 24. 0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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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는 재난 컨트롤타워가 아니다" 발뼘하기 바쁜 청와대

 

청와대는 23일 민경욱 대변인을 통해 "청와대는 재난 컨트롤타워가 아니다"라고 밝혔다.  김장수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이 세월호 침몰사고와 관련해 컨트롤타워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못하고 있다는 일부 언론의 지적에 대해 직접 반박하고 나선 것이다. 

 

하지만 지난 16일 세월호 사고 발생 당시만 해도 박근혜 대통령은 청와대 국가안보실을 통해 사건을 보고받으며 직접 챙기고 있다고 국민들 앞에서 강조한 바 있다.  불과 일주일 사이 태도가 달라져도 너무 달라진 셈이 아닐 수 없다.  그렇다면 이제와서 발뼘하는 이유가 무얼까?  정답은 의외로 가까운 곳에서 찾을 수 있었다.  박 대통령의 최근 발언을 한 번 확인해 보자.   

 

"지위 고하 막론하고 책임 묻겠다"

"정부의 위기대응 시스템과 초동 대처에 대해 반성해야 한다"

"자리보전을 위해 눈치만 보는 공무원들은 우리 정부에서 반드시 퇴출시킬 것"

"선장과 선원들의 행위는 상식적으로 도저히 납득할 수 없고, 용납될 수 없는 살인과도 같은 행태다"

 

 

세월호 참사와 관련하여 박근혜 대통령이 최근 쏟아낸 발언들이다.  일국의 대통령이 한 발언치고는 정제되지 않은 어휘이며 그 수위가 제법 센 편이라 놀랍기 그지없다.  '통일은 대박이다' 발언 이후 걸러지지 않은 어휘가 제법 심심치 않게 등장하고 있는 추세의 연장선이다.  이는 대통령의 심기가 매우 불편하다는 사실을 국민들에게 간접적이나마, 아니 직접적으로 알리고 싶기라도 했던 모양이다. 

 

발언들을 유심히 살펴보면 '책임 묻겠다, 반성해야 한다, 퇴출시킬 것' 등과 같이 대통령은 멀찌감치 떨어져 자신과는 전혀 관련없는 일인 양 죄다 제3자만 질책하며 그들에게 엄포를 놓고 있는 모양새다.  대통령은 국가 원수이기 전에 행정부의 수반 아니었던가?  그렇다면 행정부를 총괄하는 책임자이자 지도자로서 스스로는 전혀 책임이 없기라도 하다는 의미인가?

 

외신은 비웃고.. 과거 대통령도 사과부터

 

그랬다.  이른바 책임 회피다.  김장수 실장과 민경욱 대변인의 발언 또한 이와 궤를 함께하고 있는 셈이다.  청와대는 재난 컨트롤타워가 아니기에 대통령은 전혀 책임이 없다라는 것을 새삼 강조하고 나선 것이다.  대통령이 평소 유체이탈 화법을 즐겨 사용해오더니 이번엔 궁극의 책임 회피 신공이라도 보여줄 참인가 보다.



박 대통령의 이러한 책임 회피성 발언에 대해 외신이 가만있을 리 없다.  영국의 가디언지는 "비극적인 사건이긴 하지만, 세월호 승무원들을 쉽사리 살인자라고 규정할 만큼 상황이 간단한 게 아니다. 서방에서는 의심할 여지가 없는 국가적 비극에 이렇게 늑장대응하고도 신용과 지위를 보전할 수 있는 국가 지도자가 있을지 확신할 수 없다"라며 꼬집고 나섰다.

 

적어도 과거의 대통령들은 국가적 재난 상황 앞에서 국민들에게 가장 먼저 머리를 숙인 바 있다.  김영삼 대통령 시절이었던 지난 1993년 서해 훼리호 침몰 사건이 발생하여 292명의 사망자가 발생했을 당시 "모든 것이 자신의 불찰"이라며 대통령은 국민들 앞에 사과부터 했다.  2003년 대구 지하철 참사가 일어나 192명의 사망자가 발생했을 당시에도 노무현 대통령은 "죄인된 심정"이라며, 국민에게 머리 숙여 사과했다.

 

국민들의 아픔은 외면, 책임 회피하기 바쁜 대통령

 

반면 박 대통령은 어떤가.  대통령은 여과되지 않은 발언들을 마구 쏟아내는 방식으로 이번 참사와 관련하여 아랫사람이나 사고 관련자들만을 질책하고 있다.  행정부 수반으로서의 정부 운용에 대한 잘못과 책임은 절대로 없단다.  좋다.  그렇다면 대통령은 정제되지 않은 발언으로 아랫사람들을 꾸짖어가며 스스로의 스트레스를 풀 수 있을 지언정, 국민들의 가슴에 생긴 깊은 상처는 과연 어떤 방법으로 풀어야만 하는 걸까?

 

이번 참사로 인해 전 국민은 집단 상실감에 빠진 채 우울증세마저 보이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대통령이 사과를 하기는 커녕 자신의 책임 회피성 경고 발언만을 늘어놓고 있고, 이를 듣고 있어야만 하는 국민들의 피로감은 더욱 증폭돼갈 수밖에 없다.  이 나라가 정상적인 나라가 맞는가?

 

 

최소한 대통령의 직위에 위치한 분이라면 무조건 아랫사람들 탓을 하며 엄포를 놓기 이전에 먼저 국민들의 눈물을 닦아주고 아픔을 보듬어주었어야 하는 게 수순 아닐까?  그러기 위해선 과거의 대통령들처럼 진심 어린 대국민 사과가 가장 선행되어야 했을 텐데, 지금의 대통령은 행정부 수반으로서의 스스로에 대한 반성이나 책임에 대한 사과는 일절 않은 채 오로지 아랫사람들만을 탓하며 심지어 퇴출시키겠다는 엄포마저 서슴지 않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대통령은 국무위원인 장관의 임명과 각 부처 운용에 따르는 책임 따위는 전혀 없다는 의미라도 된단 말인가?  아랫사람들이 잘못했으면 책임자가 직접 나서서 사과를 하고 수습을 하는 게 일반적이자 상식적인 도리 아니었던가?  우리 대통령은 상식도 갖추지 못할 만큼 몰염치한 사람이었던가?  국민들이 자신을 택해줬다는 것을 불과 2년도 안 된 이 시점에서 모두 망각하기라도 한 걸까?

 

박 대통령 지지율 관리 만큼만 신경 썼어도

 

세월호 참사는 우리 사회의 축소판이다.  내재돼있던 모든 불합리와 부조리, 무능함, 몰상식 등이 그동안 감춰져있어 외견상 잘 발현되지 않았을뿐, 단 한 번의 들쑤심으로 인해 모두 제 모습을 드러내고 만 셈이다.  이런 총체적인 부실과 비정상 덩어리 앞에서 대통령은 자신의 과오가 절대 아니라며, 모두 아랫사람들의 탓이라고 질책만 하고 있다.  평소 비정상화의 정상화를 논하던 분께서 어찌 스스로의 비정상적인 부분은 바라보지도 못하는 건지 그저 안타까울 뿐이다.

 

과연 대한민국의 주인은 누구인 걸까?  '국민이 국가'라는 말은 역시나 법전에 적힌 글귀 하나에 불과한, 그저 형식적인 수사일 뿐인 걸까?  행정부, 사법부, 입법부의 세 권력이 상호 견제와 균형을 이뤄나간다는 건 아이들 교과서에도 언급된 민주주의의 기본 원리일진대, 우리 대통령은 저 세 권력 위에 군림하고 있는, 마치 헌법 위의 초법적 지위라도 누리고 있는 사람 같아 보인다.  누구 말마따나 스스로 여왕이라도 되는 양 착각하며 살고 있는 건 아닌지 심히 의심스럽기까지 하다.  이 나라의 주인은 국민이 아닌, 바로 대통령 자신이었던 셈이다.

 

마지막으로 거들고 싶은 말이다.  이번 세월호 참사에 대해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정확히 대통령의 지지율 관리만큼만 신경 썼더라면, 적어도 실종자들을 모두 사체로 걷어올려야만 하는 끔찍한 비극 따위는 애초 벌어지지도 않았을 테다. 

 

반성은 없고 책임도 지지 않으려 하며 오로지 남탓만 하는 우리 사회, 과연 희망은 있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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