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편린들

세계여성의 날, 아직도 요원한 양성 평등 사회

새 날 2014. 3. 8. 0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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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8일은 '세계여성의 날'이다.  이는 1908년 3월 8일 미국의 여성 노동자들이 뉴욕 루트거스 광장에 모여 선거권과 노동조합 결성의 자유 쟁취를 위해 대대적인 시위를 벌인 것에서 발원했으며, 올해로 벌써 106주년째를 맞이하고 있다.

 

 

한편 대한민국 최초의 여성 대통령인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달 26일 '세계여성지도자평의회'에 가입했다고 밝혔다.  세계여성지도자평의회는 여성 지도자들의 존재와 목소리를 확대하고 젊은 여성들이 지도자가 돼 여성관련 주요 현안 제기의 독려 역할을 수행할 목적으로 지난 1996년 핀란드 대통령과 유엔사무총장이 공동 설립한 유엔 소속 단체로, 현재 48명의 여성 대통령과 총리 출신들이 가입돼있다.

 

그러나 대통령이 이러한 여성 지도자 단체에 가입하고 또한 최초로 여성을 대통령으로 뽑을 만큼 일견 성숙해 보이는 대한민국 사회, 과연 성 평등은 제대로 실현되고 있는 걸까?  이를 알아보기 위해 우선 객관적인 관련 지표들을 살펴보자. 

 

지난해 10월 세계경제포럼이 발표한 '2013년 세계 성 격차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의 성평등 순위가 136개국 중 111위를 차지한 것으로 나타났다.  헌정 사상 최초의 여성 대통령이 등장하였고, 아울러 세계여성지도자평의회에 가입할 만큼의 국가 위상 치고는 도저히 면목이 서지 않는 결과가 아닐 수 없다.

 

ⓒ한국일보

 

또한 'OECD 국가의 성차별 수준 국제비교' 보고서에 따르면 34개 OECD 회원국 중 우리나라의 양성평등지수는 31위에 랭크된 것으로 드러났다.  이는 거의 바닥권 수준으로서 세계경제포럼이 발표한 순위에 이어 세계 10위권인 우리의 경제력에 비해 부끄러운 수치가 아닐 수 없다. 

 

우리 사회 어느덧 여성대통령의 시대를 맞이 하였지만, 여성들의 유리천장은 남성이 대통령이었던 시대보다 오히려 더 높아 장차관급 72명 중 여성은 4명, 청와대 비서관급 이상 53명 중 3명에 불과한 것으로 민주당 조사 결과 밝혀졌으며, 박근혜 대통령이 내세웠던 여성 관련 공약들은 안타깝게도 대부분 파기되거나 예산 삭감 수순을 밟아가고 있다.  10만 명의 여성 인재 확보와 미래 여성인재 10만 양성 프로젝트, 그리고 저소득층 영아 분유와 기저귀 지원 예산, 고위험 임산부 지원 예산 등이 그에 해당한다.  가뜩이나 힘든 여성들의 삶이 더욱 고단해질 수밖에 없다.

 

우리 사회의 뿌리 깊은 남성 본위의 문화는 특히 군에서 더욱 도드라진다.  군은 ROTC 평가에서 2년 연속 여자대학이 1위를 차지하자 평가방식을 등급제로 바꾸는 만행을 저질렀다.  공군사관학교의 사례는 더욱 웃음을 자아내게 한다.  올해 여생도가 수석졸업을 차지하였으나 석연치 않은 이유로 대통령상을 남생도에게 주려다 여론의 뭇매를 맞고 결국 해당 여생도에게 돌려주는 해프닝이 벌어진 것이다.  육군사관학교는 지난해까지 2년 연속 여생도가 수석졸업을 차지하자 성적산출방식을 아예 변경하는 꼼수짓을 벌였다.  거센 여풍 앞에서 한없이 초라해지는 남성들이 아닐 수 없다.



이렇듯 우리 사회의 뿌리 깊은 남녀 차별적 가부장적인 요소들은 여전하다.  외양은 서구 문화를 대충 흉내내며 얼추 세련된 듯 비슷해 보이지만, 정작 속내는 봉건적 사상을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심지어 여성들 스스로도 그러한 경향을 지니고 있을 정도다. 

 

이는 마치 우리의 경제력이 짧은 시간에 세계 10위권에 올라서며 선진국에 육박할 만큼 볼륨이 비대해졌지만, 국민들의 의식수준은 과거에 비해 크게 바뀌지 않아 절대 선진국이 될 수 없는 이치와 비슷하다.  그만큼 겉 모양은 흉내를 내긴 쉬워도 일종의 문화 내지 사상과 같은 류들을 바꾸기란 쉽지 않다는 방증이다. 

 

가뜩이나 여성 차별에 대한 문화가 팽배한 상황에서 표현의 자유를 빙자한 채 우리 사회를 일탈과 극단의 혐오 문화로 오염시켜가고 있는 극우 표방 커뮤니티 '일베'류에선 여성 전체를 비하하는 '김치녀' '된장녀' '보슬녀' 등의 신조어를 만들어내어 여성을 흥미와 재미거리로 전락시키며, 극단의 차별 사상을 설파하고 있어 더욱 혼란이 가중되고 있는 양상이다.  때문에 이들을 자신들의 놀이터에서만 놀게끔 해야 할 당위성이 엿보인다.

 

여성에 대한 차별 문화는 마치 지역 차별처럼 우리 사회의 너무도 오래되고 고질적인 병폐 중 하나이다.  때문에 단순히 법과 제도 개선만으로는 사회 내에 팽배한 작금의 차별적 요소들을 완전히 뿌리 뽑기란 요원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선 법과 제도 개선이란 토대의 변화부터 이뤄놓는다면, 우리 사회 전반에 흐르고 있던 이런 류의 문화와 사상 또한 점차 변화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을까 싶다.  때문에 지도자의 의지와 정책 추진력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 

 

박근혜 대통령은 단순히 형식적인 유엔 여성지도자 단체에 가입하는 것과 같은 전시성 정책에서 탈피, 국민들과 철석같이 약속했던 여성 관련 공약들을 반드시 이행하여 여성들의 고단한 삶의 질을 대폭 향상시키고, 고질적인 남녀차별 문화를 혁파해야만 한다.  이는 최초의 여성 대통령에게 부여된 엄중한 미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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