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편린들

혁신학교 사이트 폐쇄.. "교육감님, 참 쪼잔하십니다"

새 날 2014. 3. 6. 0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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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소 황당한 일을 겪었다.  집 주변에 있는 한 초등학교가 지난 2011년부터 혁신학교로 지정돼 운영해왔고, 어느덧 3년이 지나 올해 재지정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는 소식을 언젠가 해당 학교의 아이들로부터 전해들은 기억이 있다.(3년마다 재지정 여부를 결정한다고 한 것 같은데, 물론 직접 확인한 사항이 아니기에 정확한 정보가 아닐 수도 있다) 

 

그래서 신학기 개학이 이뤄진 시점에서 재지정이 되었는가 확인차 혁신학교 사이트를 검색, 찾아 들어가려 시도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사이트가 아예 접속이 되지 않는 상황이다.

 

'다음'에서 서울형혁신학교로 검색했을 때의 화면

 

해당 사이트 링크 클릭 후 브라우저에 뜨는 검색 결과 화면

 

혹시나 하여 검색어를 혁신학교로 넣어 기사 검색을 해보았다.  문용린 교육감이 서울형 혁신학교 공식 홈페이지를 일방적으로 폐쇄했다는 소식이 전해져 온다.  그것도 사전 공지조차 없이 말이다.  홈페이지 유지비 월 60만원이 없어 취한 조치라는 교육청 관계자의 설명이 덧붙여지긴 했지만, 왠지 궁색하다.

 

서울형 혁신학교는 입시 위주의 획일적 학교 교육에서 벗어나 창의적이고 자기주도적인 학습능력을 높여 공교육을 정상화시키겠다는 취지로 만들어져 지난 2011년에 첫 문을 열었다.  곽노현 전 교육감의 대표 정책 중 하나이며 2013년  상반기 기준으로 서울에 모두 67개교가 있다.(해당 사이트가 열리지 않아 최근의 숫자는 확인 불가하니 양해 바란다) 

 

ⓒ연합뉴스


곽노현 전 교육감과 정치적 노선이 전혀 다른 탓인지 문용린 교육감은 진작부터 혁신학교를 못마땅해하며 기회가 닿을 때마다 이에 대한 반감을 드러내왔다.  그는 혁신학교의 성과를 검토한 후 사업 지속 여부를 결정하겠노라 누누이 밝혀왔고 지난해엔 그에 따른 첫 정책감사가 이뤄지기도 했으며, 혁신학교 조례안 제정을 둘러싸고 의결기관인 서울시의회와의 감정싸움을 지속적으로 벌여오기도 했다.

 

급기야 지난해말 서울시의회가 의결한 2014년 서울교육청 예산안을 교육감이 부동의하는 사상 초유의 사태마저 빚어지고 만다.  가뜩이나 혁신학교 예산이 지난해에 비해 60% 이상 대폭 삭감된 상황에서 기타 그와 관련한 예산은 1원짜리 한장 집행하지 않겠다는 강경한 입장을 내보인 셈이라 이는 혁신학교 무력화에 대한 문 교육감의 의지에 정점을 찍은 결과로 비친다.

 

모두 좋다.  문 교육감과 곽 전 교육감의 정치적 지향점이 전혀 다를 테니, 정책 방향 또한 달라질 수 있는 건 너무도 당연한 일일 테다.  하지만 현재 67개교나 되는 혁신학교 재학 학생과 그들의 학부모가 도대체 무슨 죄가 있다고 이들에게 피해를 고스란히 전가시키면서까지 무리수를 두고 있는 걸까.  혹시 서울시의회와의 깊어진 감정의 골을 교육 서비스 주체인 아이들과 학부모에게 쏟아부을 작정이라도 한 셈인가?

 

서울형 혁신학교 분포도

 

혁신학교의 설립 취지나 이를 추진한 주체가 누구인가를 떠나 사립학교가 아닌 이상 거주지역에 따라 배정되는 체계에 따라 아이들은 혁신학교로 또는 일반학교로 나뉘어 진학하게 된다.  일부러 특정학교를 피하겠다며 이사를 가지 않는 이상 자신의 거주지 학교가 혁신학교라면 자연스레 해당 학교로 배정을 받게 되는 셈이다.  이 과정엔 어떠한 가치판단 따위의 개입이 있을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육감은 자신이 만든 정책이 아닐 뿐더러 마음에 들지도 않는다고 하여 이렇듯 순진무구한 아이들을 볼모로 무책임한 행동을 해서는 아니 될 말이다.  문 교육감 스스로 교육자가 아닌, 마치 여의도에서 활동 중인 또 하나의 정치인이라 여기고 있는 것쯤으로 비칠뿐이다.  그렇다면 교육감이란 자리는 그에게 맞지 않는 옷일지도 모르겠단 생각마저 든다.

 

혹여 최악의 경우 혁신학교제도가 폐지라는 수순을 밟게 된다손쳐도, 물론 그럴 일은 없겠지만, 현재 여전히 운영 중인 상황이라면, 기본적인 지원이 계속해서 이뤄지도록 하는 게 교육자로서 지켜야 할 최소한의 도리이자 책무 아닐까?



교육기관 사이트가 무슨 사기업이 운영하는 개인 사이트도 아닐진대, 더군다나 혁신학교가 폐쇄된 상황도 아닌 데다가 앞으로 그에 관한 정보는 도대체 어디서, 또 어떤 방식으로 얻으라고 하는 건지, 공익의 운영 목적을 담고 있는 공공사이트를 어찌하여 하루아침에 사전 예고도 없이 일방적으로 폐쇄시킬 수 있는지 그 패기가 그저 놀랍고 가상할 따름이다.

 

월 60만원의 비용이 없다는 교육청의 변명을 곧이 곧대로 받아들여보자.  혹여 그렇다면 교육 서비스를 총괄하는 교육청의 입장에서 교육서비스의 주체를 위해 교육청 홈페이지 서버에 세를 들이는 방안은 전혀 생각 못해본 걸까 아니면 안 하고 있는 걸까.  어떤 방식이 되었든 계속해서 운영해야 하는 게 맞지 않을까?

 

이쯤되면 아이들과 학부모가 실험실의 쥐인 양 툭하면 교육정책을 바꾸거나 새로 만들었다가 또 다시 없애기를 반복, 우리의 교육정책이 백년지대계는 커녕 일년지대계조차 될 수 없는 이유를 문 교육감이 실천을 통해 몸소 보여주고 있는 셈이다.

 

혁신학교든 일반학교든 학부모들은 그저 배정된 대로 아이들을 학교에 보낼 뿐이다.  그렇다면 교육감은 현재의 체계 내에서 이뤄지는 교육 서비스만큼은 정상적으로 끌고 나가야 할 책무가 있다.  정치적 성향에 따라 서비스를 취사 선택하여 제공하는 행위는 교육자로서의 자질을 의심케 하기에 충분하며, 우리 아이들의 교육이 정치적인 이유로 이리저리 휘둘려서도 절대 안 될 노릇이다. 

 

"교육감님, 그렇게 안 봤는데 참 쪼잔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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