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편린들

잇따르는 '자살', 허울뿐인 자살보도권고기준

새 날 2014. 3. 5. 08: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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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잇따르고 있는 자살 소식은 가뜩이나 미세먼지 가득한 대기로 인해 갑갑했던, 숨쉬기조차 버거웠던 가슴을 더욱 조여오고 있는 느낌입니다.  더군다나 가족이 함께 극단적인 선택을 한 이유가 대부분 생활고 때문이란 우울한 소식은 우리를 더욱 안타깝게 만들고 있습니다. 

 

이미 잘 알려져 있다시피 우리나라의 자살률은 세계젹으로 가장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으며, 2011년 기준 OECD 회원국 가운데 1위를 차지하고 있기도 합니다.  대한민국의 자살에 의한 사망률은 인구 10만 명당 33.3명으로 OECD 평균의 3배에 달하는 수치입니다.

 

자살이 이렇듯 급격히 늘어나며 사회문제로까지 비화된 데엔 여러 이유가 존재하겠지만, 이번 글에선 자살 발생의 근원적인 이유를 되짚어 가기보단 일전에 살펴봤던 언론의 자살 보도 행태에 대해 다시금 언급해 보려 합니다. 

 

이 글에 앞서 살펴보면 도움이 될 글입니다.  <언론의 자살 보도 행태 이젠 바뀌어야 한다 (2013. 6. 5)>

 

인터넷의 성장과 함께 급격히 발전한 미디어매체들의 잘못된 자살 보도 행태가 이른바 베르테르효과를 불러오며 또 다른 자살을 부추길 수 있다는 건 이미 주지의 사실입니다.  때문에 이를 막고자 한국기자협회와 한국자살예방협회, 보건복지부가 자살 보도 권고 기준을 공동으로 마련하여 시행해 오고 있습니다.



하지만 앞선 글에서도 언급했듯 이러한 기준이 법적 구속력이 없기에 잘 지켜지지 않고 있다는 데에 문제점이 있습니다.  지난해 유명 연예인의 자살 시도와 그를 모방한 일반인들의 연이은 자살이 이어지며, 보건복지부가 기존의 자살 보도 권고 기준을 한층 업그레이드한, '자살 보도 권고 기준 2.0'을 세계보건기구가 지정한 '자살예방의 날'인 9월 10일에 발표했습니다.  주요 원칙만 살펴보겠습니다.

 

자살보도 권고기준 2.0  9가지 원칙

 

1. 언론은 자살에 대한 보도를 최소화해야 합니다.
2. 자살이라는 단어는 자제하고 선정적 표현을 피해야 합니다.
3. 자살과 관련된 상세 내용은 최소화해야 합니다.
4. 자살 보도에서는 유가족 등 주변 사람을 배려하는 신중한 자세가 필요합니다.
5. 자살과 자살자에 대한 어떠한 미화나 합리화도 피해야 합니다.
6. 사회적 문제 제기를 위한 수단으로 자살 보도를 이용해서는 안 됩니다.
7. 자살로 인한 부정적 결과를 알려야 합니다.
8. 자살 예방에 관한 다양하고 정확한 정보를 제공합니다.
9. 인터넷에서의 자살 보도는 더욱 신중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예전에 비해 미디어매체들이 이번 권고를 잘 지키고 있을까요?  그래서 최근 발생한 동반 자살 사건 위주로 인터넷에 올라온 신문 기사들을 살펴 보았습니다.

 

 

자살 방법에 대한 묘사는 자살 수단을 제공하는 것과 같은 부작용이 있습니다.  때문에 이러한 보도 행태는 자살과 관련한 구체적인 내용을 묘사하지 말아야 한다는 원칙을 어긋난 것입니다.

 

 

여전히 많은 기사들이 자살 방법에 대해 구체적으로 묘사하고 있었습니다.

 

 

자살 보도에서 특정 장소나 특징적인 장소를 명시하면 그 장소에 대한 관심을 유발할 수 있으며, 상대적으로 해당 장소에 접근하기 쉬운 사람들의 자살을 유도할 수 있습니다.  때문에 자살 보도에 있어 자살 장소를 밝혀서는 안 되며 이를 포함시켜야 할 이유도 물론 없습니다. 

 

 

하지만 우리 언론들은 친절하게도(?) 구체적인 장소와 당시의 상황을 매우 세밀하게 묘사하고 있었습니다.  또한 자살이라는 단어를 기사 제목에 넣거나 선정적인 표현을 피해야 한다는 권고 역시 지켜지지 않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번엔 기사 제목을 한 번 살펴볼까 합니다.

 

 

 

 

 

 

 

 

어떤가요?  자살이란 표현을 넘어 보다 자극적인, 동반자살과 심지어 자살 방법마저 묘사된 제목들로 넘쳐나고 있습니다.  이미 권고2.0 원칙의 가장 기본이라 할 수 있는 1번부터 3번 항목까지 지켜지지 않고 있으니, 다른 항목들은 거들떠 보나 마나일 듯합니다.

 

자살 보도가 자살 빈도와 방법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은 자살에 대한 언론 보도 직후 실제 자살 시도가 급증했던 과거의 사례로 이미 입증된 바 있습니다.  언론의 무책임한 보도 하나로 인해 자칫 귀중한 생명이 사라질 수도 있습니다.  이러한 행태는 사회적 공기로서의 책무를 망각한 행위로밖에 볼 수 없습니다.

 

우리 언론사들이 권고2.0에서 제시한 가이드라인만 제대로 준수한다해도 최소한 언론매체를 통해 또 다른 자살 모방 행위를 부추기는 일 따위는 벌어지지 않을 것입니다.  최근의 가족 동반 자살 행위는 우리 사회의 각종 부조리와 부작용이 응축되어 발현된 형태 중 하나라고 생각되어집니다.  이의 근본적인 해결책은 사회안전망을 확충하는 등의 복지 정책이 방점을 찍겠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우리 언론들의 책임있는 역할이 더욱 중요해지고 있는 상황입니다.  

 

언론들 스스로 자살 보도 권고 기준을 허수아비로 만드는 우를 범하지 말아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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