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접 경험의 즐거움

<노라노> 유신정권이여, 미니스커트를 허하라

새 날 2013. 10. 31. 0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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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션 디자이너 노라노 선생은 85세의 노령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길다란 속눈썹을 붙이며, 머리는 검게 염색한 채 고운 화장을 하고 다닌다.  연필을 쥐고 직접 디자인하여 가위로 오리며 재봉하는 모습을 보노라면 흡사 젊은이 못지 않다.  그녀의 이러한 열정은 어디서부터 비롯되었을까.

 

영화는 그에 대한 물음으로부터 시작된다.  물론 그녀 앞엔 수많은 수식어가 따라 붙는다.  한국 최초의 패션디자이너, 우리 사회에 커다란 센세이션을 불러 일으켰던 윤복희 씨의 미니스커트 디자이너, 기성복 시장을 개척한 사람, 한국 최초의 패션쇼를 열었던 인물 등등

 

 

절실함이 그에 대한 답이다.  일제강점기, 징용이나 정신대에 끌려가지 않기 위해 어쩔 수 없어 17세에 택했던 결혼, 시댁과의 마찰로 인해 영 순탄치 않았다.  결국 19세에 이혼녀가 된 그녀는 홀홀단신 손엔 돈 한 푼 쥠 없이 세상과 맞대면해야 했다.  지금은 조금 형편이 나아졌다지만, 당시 여성 혼자서 세상을 살아가야 하는 현실은 그리 녹록치 않은 일임에 틀림없었을 게다.  다행히 그녀에게 천금과도 같은 인생 대역전의 기회가 찾아온다.  미국 유학길에 오를 수 있게 된 것이다. 

 

 

노라노 그녀는 말한다.  자신조차도 패션 디자이너 하면 폼 잡고 앉아 아이디어나 짜내고 디자인만 하면 그만일 줄 알았는데, 60년동안 바늘에 수도 없이 찔리고, 가위질 탓에 손에 못이 박히는 등 무척이나 고난의 연속이었노라고.  



비단 디자이너만 그렇겠는가.  화려한 직업일수록 수면 위에서의 우아함을 유지하기 위해 물밑에선 엄청난 속도로 발을 젓고 있어야 한다는 사실을 증명한 것일 뿐.

 

 

사람들의 행동양식을 통제하고 잠재의식마저 갉아먹었던 서슬 퍼런 박정희 유신정권시절, 노라노와 윤복희에 의해 잇따른 미니스커트의 도발이 이뤄졌다.  이를 보며 당황해하고 어쩔 줄 몰라했을 사람들을 생각하면 유쾌 통쾌 상쾌하기가 그지 없다.  엄숙한 통제사회에 한 방 날린 셈 아니었겠는가. 

 

 

패션 불모지였던 이땅에 패션이란 개념을 최초로 뿌리고 오늘날과 같은 성과를 거둔 그녀, 60년 열정과 강단에 박수를 보낸다.  이땅의 여성들에게 보다 당당해지고 자신감을 가졌으면 하는 바램에서 평생 옷을 디자인하고 만들었다는 그녀, 아마도 오늘날 여성들의 삶이 그나마 조금은 나아질 수 있게 된 배경엔 바로 그러한 노력들이 더해졌기 때문 아닐까싶다. 

 

물론 당시 그녀의 옷을 입을 수 있는 부류, 흔히 말하는 서민들과는 거리가 멀다.  아마도 상류계층이나 영화계 최고 스타 쯤은 되어야 그녀의 디자인을 향유할 수 있었을 게다.  따라서 어찌 보면 특수계층을 상대로 한 직업이었기에 상대적으로 손 쉽게 돈을 벌고 명성을 얻지 않았겠냐며 반문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다른 모든 것들을 차치하더라도 85세의 나이에 여전히 열정적인 모습으로 자신의 일에 몰두하고 있는 그녀의 모습을 보노라면 아름답지 않을 수 없다.  역시 대단한 분이다.

 

메인 포스터를 보고선 영화배우 조민수가 주연일 것이라 예측했었다.  누가?  물론 집사람이다.  눈썰미 안 좋기로 소문난 나야 아무리 뚫어져라 쳐다봐도 모자를 푹 눌러쓴 그녀가 누구인지 알 길 없다.  그런데 집사람의 예측이 하나는 맞았고 다른 하나는 틀렸다.  포스터 속의 그녀, 분명 조민수가 맞다.  영화관람후 팜플렛을 통해 확인해 본 결과다.  허나 조민수 그녀는 영화 속에서 단 한 컷도 등장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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