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접 경험의 즐거움

<러시 : 더라이벌> 폭풍 같은 질주의 원천은 바로 너

새 날 2013. 10. 11. 1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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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속에서 F1의 챔피언 자리를 놓고 진검 승부를 펼치는 제임스 헌트(크리스 헴스워스 분)와 니키 라우다(다니엘 브륄)의 첫 만남은 F3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F3란, 운동경기로 치자면 아마도 2부리그 내지 3부리그 쯤으로 생각하면 될 듯싶다.  즉 아직은 F1에 진출할 만큼의 실력을 갖추지 못한 2진급의 레이서들 끼리 모여 갖는 레이싱을 일컫는다.

 

F3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실력자 제임스 헌트, 어느날 그 앞에 홀연히 나타나 비록 헌트의 저돌적인 행태 때문에 우승을 놓치긴 하였으나 그의 간담을 충분히 서늘케 할 만큼 출중한 실력을 보여줬던 니키 라우다, 그들의 목숨을 건 기나긴 레이싱의 운명은 그렇게 시작됐다.

 

 

숙명의 라이벌인 헌트와 라우다 두 사람은 외모 만큼이나 성격 또한 전양지차다.  헌트의 경우 전형적인 다혈질에 망나니 기질을 지녀 뭐든 제 멋대로인 성향이 짙고, 미래에 대한 계획 따위는 전혀 고려 없이 오로지 현실에만 충실한, 매우 솔직 담백한 인물로 그려져 있다.  그 만큼 그의 삶은 좌충우돌한 데다 울퉁불퉁하기까지 하다.

 

 

반면, 라우다는 우선 집안부터 예사롭지 않다.  큰 사업을 일구며 재력가로 자리잡은 조부모와 부모 덕분에 훌륭한 교육을 받으며 착실하게 성장해온 그, 자신의 진로를 앞에 놓고선 집안의 반대에 부딪히게 되지만, 끝내 가족의 만류를 뿌리치고 모든 훌륭한 배경과 조건들을 뒤로한 채 그가 진정 원하는 레이서의 길로 과감히 뛰어든다.  그는 헌트와 정 반대인 전형적인 범생이 스타일이다.  그의 삶은 철저한 계획에 의해 차근차근 목표를 향해 밟아나가는 형태를 보이고 있다.

 

 

한해 F1 그랑프리에 참가하는 25명 중 2명 꼴로 사망한다는 최악의 직업, 레이서.. 때문에 20%라는 지극히 높은 사망 확률을 안고 달리는 레이서들에게 있어 하루 하루는 생의 마지막이란 생각이 들 정도로 피 말리는 처절한 느낌으로 와닿을 테다.  덕분에 트랙에 서게 될 때면 그들은 매번 전투력 충만한 상태로 레이싱에 임할 수 밖에 없다.  반면 트랙을 벗어난 그들의 일상은 긴장이 제대로 풀려 엉망이기 일쑤다.  쉽게 술과 도박에 빠져들고, 여자들과 어울려 흥청망청 시간을 축내는 레이서들이 대다수이다.



헌트는 레이서들의 그러한 전형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인물이었던 셈이고, 반면 라우다는 일반 레이서들과는 철저히 차별화되는, 철저한 자기관리와 명석한 두뇌에 의한, 주도면밀한 계획에 의해 레이싱에 임하는 조금은 특별한 인물이었던 셈이다.  때문에 헌트는 동료 레이서들 사이에서 인기가 많을 수밖에 없다.  반면 라우다는 레이서들 사이에선 범생이 취급을 당하기에 일종의 왕따에 가까울 수밖에 없다.

 

 

헌트와 라우다의 라이벌 경쟁은 마치 영화 그랑블루에서의 자크와 엔조와의 대결 구도를 연상케 한다.  자크와 엔조 역시 현실에선 전혀 다른 성격의 인물이지만, 바다에만 들어서게 되면 서로간 경쟁 심리가 발동하여 치열한 잠수 경쟁을 펼치게 된다.  다른 점이라면 자크와 엔조는 어릴적부터의 친구이자 라이벌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것이고, 헌트와 라우다는 뒤늦게 트랙에서 부딪히며 비로소 서로의 진가와 존재를 알게 되며 라이벌 관계가 성립하게 된 경우이다.

 

라이벌 관계라는 것은 팽팽한 긴장감을 유지시켜 서로의 발전을 이끄는 데에 있어 지대한 공헌을 하게 된다.  그랑블루에서도 두 사람의 끊임없는 경쟁을 통해 잠수 기록이 계속 경신되었듯 이 영화 속에서도 헌트와 라우다 두 사람 역시 상대방의 존재 덕분에 좋은 기록을 유지해 나갈 수 있었던 셈이다.  심지어 라우다의 큰 부상 속에서도 고통을 이겨내고 다시금 운전대를 잡을 수 있었던 힘의 근원 또한 헌트라는 출중한 라이벌 때문이기도 하다. 

 

 

라이벌이란 이렇듯 자신을 지속적으로 단련시키고 담금질하는 데에 있어 필수불가결한 존재임에 틀림 없다.  우리는 살아가며 어느 영역에서건 라이벌이란 존재를 쉽게 맞닥뜨리게 된다.  이런 상황을 달갑게 받아들이지 않거나 회피할 필요 없이 자신의 발전을 위해서라도 라이벌과의 긴장감을 항상 유지하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들게 한다.

 

1976년 실제 있었던 F1 경기를 영화화한 것이라는데, 당시의 F1 머신의 생김새는 오늘날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은 듯하다.  라우다가 운전하는 페라리는 동력이 무려 450마력에 이른다.  아울러 우리나라는 최근에서야 F1경기를 유치하게 되었는데, 일본은 76년 이때 이미 전 세계 순회 경주의 한 코스로 자리매김하고 있다는 사실에 놀라움과 묘한 질투심을 느껴야 했다.

 

평소 F1에 대해 특별한 관심이 없었지만, 이 영화를 통해 약간의 관심을 갖게 되었다면, 그것만으로도 이 영화는 성공한 셈 아닐까?  영화속에서 가끔 등장하는 귀여운 올드카의 면면은 자동차 매니아들의 심장을 떨리게 할 만큼 꽤나 흥미로운 요소일 것 같다는 생각마저 들게 한다.

 

 

헌트와 라우다가 트랙에서 펼치는 불꽃 튀는 레이싱 뿐 아니라 서로간 퍼붓는 독설도 재밌는 요소다.  범생이인 라우다는 날라리 같은 헌트에게 매번 당할 것 같지만 의외로 꽤나 강한 독설을 퍼부어대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때문에 이들이 주고 받는 독설도 이 영화의 조그마한 관전 포인트가 될 수 있을 듯싶다.

 

물론 조금은 특이한 직업 탓이겠지만, 이들이 살아가는 방식은 일반적인 우리네 삶과는 달리 독특한 생활 패턴을 보여준다.  결국 사람이 살아가는 방식이란 천편일률적으로 획일화된 것이 아닌, 너무도 다양한 양식으로 발현된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일깨우고 있는 것이다.

 

때문에 헌트와 라우다, 두 사람의 이질적인 성격 만큼이나 삶의 지향점 내지 살아가는 방식이 너무도 다른데, 과연 이 둘 중 누가 올바른 삶이라고 재단하며 콕 짚어 가치판단을 들이댈 수 있을까?

 

이 영화의 한 가지 아쉬운 점이라면, 헌트와 라우다 두 사람 중 마치 누군가의 삶의 방식은 옳은 것이고, 또 다른 사람의 삶의 방식은 잘못됐다라는 점을 인식시키려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는 점이다.  물론 이 영화를 보고 받아들이는 관객 마다의 입장에서 제각각 다른 해석을 내릴 수 있는 여지가 존재하겠지만 말이다.

 

불꽃 튀는 두 사람의 레이싱 경쟁 뿐 아니라 그를 둘러싼 주변의 소소한 사건들과 뭉클한 가족애, 그리고 그들의 극명하게 다른 삶의 방식 등을 엿볼 수 있어서 좋았고, 여타 많은 부분에서도 무척이나 마음에 드는 영화다.  감히 추천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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