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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짚의 방패> 세속적 욕망과 명예 사이의 딜레마?

새 날 2013. 9. 21.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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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가 첨예화될수록 돈의 위력은 더욱 커져만 간다.  현대사회의 배금주의 현상은 얼마전 고교생들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결과를 통해서도 고스란히 드러난 바 있다.  우리나라 고교생의 40% 정도가 10억원이 생긴다면 감옥에 다녀오는 일조차 불사하겠단다.

 

고작 10억원 - 물론 현실은 고작일 리가 없다 - 에 범법자를 자청하겠노라는 우리 아이들을 보니, 기성세대로서 그저 부끄러울 따름이다.  물론 경제적 토대가 자본에 의해 이뤄졌고, 그것들이 한데 모일수록 더욱 무서운 힘을 발휘한다는 사실은 익히 잘 알려진 바, 때문에 일개 소시민들이 이를 자각하고 이로부터 휘둘리지 않으려 아무리 뛰어난 정신력을 발휘한다 해도 물리적 근간으로부터 파생되는 힘을 당해낼 재간이 없긴 하다. 

 

그렇다면 만약 100억원을 준다면 영혼도 팔 텐가? 

 

 

여기 기요마루(후지와라 타츠야 분)라 불리는 한 연쇄살인범이 있다.  그는 소아성애자로서 어린 아이들을 연쇄적으로 성폭행한 후 잔혹하게 살해한 혐의를 받고 있다. 



어느날 한 유치원생 여아의 사체가 발견되고, 이 또한 기요마루의 행위로 밝혀진다.  그런데 살해된 여아의 할아버지는 수조원의 자산가로 알려진 인물이다.  그는 자신의 손녀가 무참히 살해된 데에 격분, 살해범에게 개인적인 현상금 100억원을 내걸며 그를 살해하는 자에게 현상금 모두를 지급하겠다고 공표한다.

 

 

기요마루는 경찰에 곧 체포된다.  하지만 그를 경시청까지 호송해야 하는 상황, 그에게 걸린 현상금 100억원을 노리고 그를 살해하기 위해 덤벼드는 무수한 사람들을 뿌리치고 경시청까지 과연 안전하게 그를 호송할 수 있을까?  경찰 당국은 이를 위해 전국에서 내로라하는 실력파 경호원들을 추려 그의 호송작업에 투입한다.

 

100억원의 위력은 생각보다 대단했다.  기요마루의 목숨을 노리는 사람들은 예측하지 못한 곳곳에서 출몰했다.  덕분에 그의 호송작업은 흡사 007작전을 방불케 했다.  호송 차량의 위장은 기본이고, 도중에 다른 종류의 차량으로 갈아타는 모험도 감수해야 한다. 

 

기요마루를 살해하려고 전국에서 몰려든 사람들을 막기 위해 경호원들은 자신들의 몸을 내던지며, 심지어 목숨을 잃기까지 한다.  엄격한 과정을 통해 선발된 정예의 경호원들임에도 불구하고 100억원이란 세속적 욕망에 흔들리며, 호송 도중 배신 행위가 벌어지기도 하는데...

 

 

짚이란 벼나 보리의 이삭을 털고난 뒤의 줄기와 잎을 말한다.  사실 대부분이 버려질 테지만, 최근 우리에게 있어 짚의 재발견 시대라고나 해야 할까?  버려지기보단 여러 용도로 활용되고 있기 때문이다.  짚풀 공예로부터 시작하여 짚풀 삼겹살까지, 그 활용도는 시간이 갈수록 되려 늘고 있는 추세이다. 

 

일본은 어떤지 모르겠다. 어쨌든 이 영화에서의 짚이란, 인간 이하의 범죄 행위를 일삼으면서도 죄책감이라곤 전혀 못느끼는, 기요마루와 같은 쓸모 없는 것들을 의미하는 듯하다.

 

기요마루의 과거 연쇄살인 행적도 못마땅하지만, 호송과정에서 드러나는 그의 잔인한 인간성 때문에 호송을 책임진 경호원들조차 과연 이 살인범을 안전하게 호송하는 것이 옳은 일인지 끝없는 딜레마에 빠지며 흔들리게 된다.  인간 쓰레기 같은 녀석을 보호해야 할 가치가 있는가란 기본적인 의문에 선뜻 답하기가 혼란스러운 데에서 기인한다.

 

주인공인 메카리 형사(오사와 타카오 분) 또한 기요마루의 정상 호송과 살해를 사이에 두고 번민한다.  하지만 그의 고민, 100억원이란 세속적인 욕망 때문만은 분명 아니다.  과연 연쇄살인범의 인권을 보호해주기 위해 자신들의 목숨을 내걸 만 한 가치가 있느냐 라는 점과 오로지 상부의 명령이기에 가치판단의 개입 없이 무조건 명령을 따라야 한다는 투철한 직업정신에서 비롯된 명예, 그 둘 사이의 딜레마이다.

 

 

돈, 잔혹범죄자에 대한 인권 그리고 직업정신에서 비롯된 명예, 이 셋 사이에서 방황하는 인간들의 속성이 다소 우스꽝스럽게, 때로는 잔혹하게 묘사되어 있다.  만약 우리에게 비슷한 상황이 놓여진다면 어떤 선택을 하게 될까?

 

소재가 독특하여 충분히 영화화해도 손색이 없을 듯한데, 아무래도 연출력과 연기자들의 연기력에서 기대에 미치지 못한다.  특히 일부러 그로데스크한 분위기 연출을 노리기 위함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주인공들을 제외한 나머지 출연 배우들의 인상이 참으로 거시기했다.  거기에 어색한 연기력마저 덧붙여지니 정말로 무언가 기괴한 분위기마저 느껴진다.

 

평소 일본 영화를 접할 기회가 거의 없어 그런 걸까?  아니면 일본의 정서와 우리의 그것이 달라도 너무도 달라 그런 걸까?  부드러운 상황 전개보다는 극단으로 치닫는 듯한 극의 전개 방식도 영화의 흐름을 뚝뚝 끊어먹는 효과를 발휘하고 있었다.

 

만약 같은 소재로 우리나라에서 만들어진다면 훨씬 완성도 높은 작품이 나오지 않을까 싶다.  아무튼 뒤끝이 영 개운치 않은 영화임엔 틀림 없다.  물론 스릴러라는 장르 탓일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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