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접 경험의 즐거움

<까밀 리와인드> 16세로 되감기한 삶, 질곡은 계속된다

새 날 2013. 8. 22. 0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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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인인 당신, 만일 이팔청춘의 꽃다운 나이로 돌아가게 된다면 가장 하고 싶은 일이 무얼까.  물론 청소년기의 시절이 그 어느 때보다 행복했던 분들도 있을 것이고, 나처럼 매우 심드렁했던 분들도 있을 것이다.  때문에 한 번쯤은 그 시절로 되돌아가 다시 한 번 당시의 행복을 누려보고 싶거나 무언가 부족했던 시기였더라면 못다한 일을 다시금 해보고픈 마음이 굴뚝 같을 것이다. 

 

현재의 시간을 과거로 되돌릴 수만 있다면 마구 엉킨 실타래처럼 뒤틀린 내 현재의 삶을 과연 바로 펼 수 있을까?

 

영화 <까밀 리와인드>는 제목 그대로 40대 여인 까밀의 삶을 마치 카세트 테이프 되감기하듯 16세 풋풋한 소녀의 삶으로 되돌려놓는다.  일종의 "시간여행"인 셈이다.  이러한 일이 실제로 가능하다면 무척이나 설레고 흥미진진한 일임엔 틀림 없을 테지만, 실상 현실과 얼기설기 연결지어진 과거로 돌아가 그 실타래들을 하나 둘 푸는 일, 그리 만만한 일만은 아닐지도 모르겠단 생각이 든다.  

 

비루한 현재의 삶을 잊고자 까밀은 춤의 향연으로

 

단역 배우가 직업인 40대 아줌마 까밀, 그녀 주변의 일들은 뭐든 재미없다.  현재의 직업도 그저 먹고 살아야 하기에 정말 마지못해 하는 일이고, 남편은 젊은 여자와 눈이 맞아 딴 살림을 차린다며 집을 나가 버렸다.  그녀는 집에서도 곧 쫓겨나야 할 형편이다.  단순한 삶의 권태기를 넘어 일생 최대의 위기에 내몰린 셈이다.  



그러던 어느날, 그러니까 정확히 2007년 12월 31일, 까밀은 새해맞이 파티에 참석하여 현재의 비루한 삶을 잊고자 옛친구들과 신나게 춤을 추다가 신년 카운터를 세며 새해를 맞이하는 순간, 그만 의식을 잃고 만다.  깨어났을 땐 어느 병원이었고 이후 그녀의 삶은 1985년의 상황으로 되돌려지는데...

 

함께 춤추던 40대 아줌마들, 16세 당시에도 모두 친구들이었다

 

재미있는 건 과거로 돌아간 40대 아줌마 까밀의 외모, 16세가 아닌 현재 그대로의 모습이다.  중년의 아줌마가 10대의 옷을 입고 10대 아이들과 함께 10대처럼 행동하는 모습이 다소 어색하며 우스꽝스러워 보이긴 하지만, 어쩌면 이는 과거의 삶과 현재의 삶이 필연과 같은 운명의 끈으로 질기도록 이어져있음을 나타내려 한 의도적인 장치일지도 모르겠단 생각이 든다.

 

10대로 다시 돌아가 벌이는 일탈행위는 마냥 즐겁기만 하

 

까밀애게는 16세때 임신하여 낳은 20대의 딸이 하나 있다.  언젠가 까밀은 딸에게 이런 말을 한다. "돌아가신 나의 엄마가 너무 보고 싶구나.  엄마의 목소리가 기억나지 않아 너무 안타깝다."  그래서 그랬던 걸까?  16세로 되돌아간 까밀이 제일 먼저 한 일, 바로 그토록 그리움에 사무쳤던, 살아계신 엄마의 목소리 녹음이었다.  물론 당시엔 지금과 같은 디지털기기들이 있을리 만무할 테고, 그녀가 16세때 소유하던 소니의 워크맨이 전부였다.  까밀에게는 돌아가신 엄마를 다시 만나게 된 일이 그 무엇보다 소중한 일이었던 셈이다.  만일 여러분들이 16세로 돌아가게 된다면 가장 먼저 하고 싶은 일은 과연 무얼까?

 

꿈에서라도 보고 싶던 엄마와 아빠를 실제로 만나다니..

 

까밀은 2008년을 살다 1985년으로 시간을 거슬러온 셈이기에 일반인들이 갖추지 못한, 미래를 보는 혜안을 하나 더 갖추고 있었다.  혹자는 미래를 예측할 수 있기에 과거의 좋지 않은 일들을 좋은 방향으로 바꿔 미래의 삶에 영향을 미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40대인 지금도 여전히 만나는 친구이지만, 10대 당시의 그녀에게 까밀은 묻는다. 

"미래의 모습을 알고 있다면 넌 어떻게 하겠니?"

"난 죽어버릴거야"

미래 예측에 대한 그녀의 생각, 친구의 입을 빌려 대신한 셈이다.

 

까밀이 아무리 발버둥친다 해도 절대로 바꿀 수 없는 게 있다.  아무리 과거로 돌아가 자신이 원하는 미래의 모습으로 변화를 시도하려 해도 절대 불가한 것들..  그녀는 어머니가 돌아가는 시기와 이유를 너무도 정확히 알고 있지만 이를 막을 수 있는 방법은 딱히 없다.  미리 병원에 보내 진단을 받게 하고 최대한 이를 회피해보려 노력하지만 과거의 세계에서도 예전처럼 어머니는 결국 돌아가시고 만다.  아무리 미래를 바라보는 눈을 갖추고 있다 하더라도 삶을 원하는 방향으로 마음껏 바꿀 수 없다는 것, 그녀는 엄마의 죽음을 통해 뼈저리게 느껴야 했다.  비슷한 사례는 또 있다.  까밀의 절친 중 한 명, 10대때 당시 시각을 잃을 것이란 의사의 진단이 있었고, 40대의 현실세계에선 그녀 결국 시각장애인으로 등장한다. 

 

과거로 돌아가 만난 10대의 남편 또한 까밀처럼 현재의 모습 그대로

 

지금은 이혼한 상태지만 그의 남편을 만나게 된 시기 또한 16세 때다.  다만, 현재 사이가 좋지 않은 남편에 대해 과거로 돌아가 다시 보았을 때 의외의 긍정적인 면을 발견할 수 있었다는 점이 과거로 돌아가 얻은 유일한 수확이라면 수확, 그녀는 그와의 관계 개선에 과연 성공하게 될까?

 

까밀의 시간 되감기 경험을 통해 감독이 우리에게 던지고 싶었던 메시지란 바로 이런 게 아닐까?   아무리 과거의 삶으로 되돌아간들 현재 삶의 질곡에서 절대 벗어날 수 없다는..

 

유쾌하거나 슬프거나 때론 씁쓸한 감정까지, 여러 복합적인 감정을 동시에 느끼고 싶은 분께 추천하고픈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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