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접 경험의 즐거움

성공 이면의 추악한 민낯과 권력의 속성

새 날 2013. 8. 5. 0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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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 이면의 추악한 민낯

 

우리 사회에서 통용되는 일반적인 성공의 의미란 무얼까.  아마도 높은 사회적 지위와 많은 돈을 움켜쥐고 권력을 휘두르는 모습을 대부분 떠올릴 듯싶다.  그들이 부러운가?  그렇다 그들이 부럽다.  그런데 사회에서 꽤나 명망 있는 사람들의 추악한 실체가 매스컴을 통해 연일 까발려질 때면 우린 늘 "너희들이 그럼 그렇지"란 생각을 하며 냉소를 보내게 된다.  그들이 부러우면 부러울수록 냉소의 강도는 더 심해진다.  여기엔 일말의 동정심 따위조차 자리할 리 만무하다.

 

 

물론 "그럼 그렇지"란 생각엔 복합적인 의미가 숨어있다.  소위 권력 쥐고 돈 있는 사람들이 도덕적으로나 윤리적으로 깨끗하지 못할 것이란 선입견과 잘난 사람들의 처참하게 무너지는 모습을 통해 대리 만족감과 같은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된다는 점이 바로 그것이다. 

 

그런데 일반적으로 우리 사회에서 "수퍼갑" 내지 적어도 그냥 "갑"이라 불리는 이들의 자제로 태어나지 못한 이상 성공을 위한 길은 그 갈래가 그리 많을 것 같지 않다.

 

그렇다.  사회적 지위나 권력이 높은, 소위 성공(?)한 사람들에 대해 우린 순수한 노력과 열정보다는 그 자리에 있기까지 그리고 그 이후에 얼마나 많은 추악한 짓을 벌여왔을까를 먼저 떠올리게 된다.  현재 돈과 권력을 쥐고 있는 "갑"에 의해 그들과 비슷한 모습을 바라며 발버둥치고 올라오는 이들 또한 그들로부터 길들여지고 그들의 모습을 답습해가는 등 "갑"의 영역에 발을 들여놓기 위해 무수한 테스트와 훈련과정을 겪으며 가능성(?) 있는 자들만 그 좁은 문을 통과하게 되는 통과의례를 밟아야 하는 것이리라.  결국 지위가 한 단계씩 높아질수록 "갑"인 그들을 점차 닮아간다는 의미가 될 듯싶다. 



이와 같은 결과는 그동안 수많은 명망 있는 정치인들과 기업인 그리고 그밖의 높은 권력과 지위에 있던 사람들이 우리에게 스스로 증명해 보였다.  비근하게는 최근 막장 드라마와도 같은 사실을 실토하며 세간을 놀라게 했던 한 정치인과 종교인을 예로 들 수 있겠다.

 

영화 <더 테러 라이브> 갑과 을의 평행선

 

한때 당대 최고의 앵커라 손 꼽히며 TV의 주요 뉴스 프로그램을 평정했던 윤영화(하정우 분), 그는 이제 라디오 시사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신세로 전락하고 만다.  어느날 평소와 다름없이 생방송을 진행하고 있던 윤영화, 청취자와의 전화통화 중 뜻밖의 테러 협박을 받게 되고, 전화 속 테러범이 테러행위를 공언하자마자 실제로 그의 눈 앞에서 얼마전 성재기씨가 퍼포먼스를 벌이다 사고사한 마포대교가 폭발하는 놀라운 일이 벌어진다.

 

 

윤영화는 과연 어떤 인물일까.  그는 성공을 위해서라면 특종도 남의 것을 베낄 정도로 집요하며, 물불을 가리지 않는 인물로 묘사되어 있다.  그가 특급 앵커로서의 자리를 굳건히 지킬 수 있었던 건 바로 이러한 그의 속성 탓이다.  잘나가던 앵커가 라디오 프로나 전전하고 있는 비참한 신세가 된 것은 바로 그보다 "갑"의 위치에 있는 직장상사 때문이다.  그의 의도에 의해 윤영화는 늘 철저하게 이용 당한다.  특급앵커의 인기를 누렸던 윤영화 자신은 스스로를 "갑"이라 생각하고 있지만 실상은 그 또한 "갑"이 되기 위해 몸부림 치는, 그저 평범한 "을"에 불과할 뿐이다. 

 

윤영화 자신에게는 이번 테러범과의 접촉이 그가 재기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 판단하게 되고, 이를 특종거리로 만들기 위해 그보다 훨씬 더 간교하고 영악한 상사(이경영 분)와 함께 이를 모의하게 된다.  테러범과의 전화통화를 전국에 생방송으로 내보내는 특종 기회를 잡은 윤영화는 그가 지닌 모든 역량을 총동원하여 생방송에 임한다.  오로지 TV앵커로서의 재도약이란 성공 하나만을 바라며..

 

하지만 테러범과의 대화를 전국에 생방송으로 내보내는 과정에서 윤영화의 추악한 과거 행적들이 모두 까발려진다.  마치 우리 사회에서 소위 성공했다는 사람들의 추한 민낯이 만천하에 드러나듯 말이다.  윤영화는 스스로 "갑"의 위치에 놓여있다고 생각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그가 "갑"이라면 "수퍼갑"에 의해 그는 얼마든지 바닥으로 내쳐질 수 있기 때문이다.  

 

한편 마포대교 테러를 감행한 테러범은 일용직 건설노동자로 뼈 빠지게 일을 해도 변하지 않는 삶에 좌절을 느껴야 하는, 우리 사회의 전형적인 "을"의 위치에 놓여있는 사람이다.  윤영화와 테러범, 전혀 다른 삶을 살아온 듯하지만 사회적 지위로 따져 본다면 결국 같은 "을"에 불과할 뿐이다.

 

권력의 속성 그리고 그들에게 빅엿을

 

이번 마포대교 테러는 일종의 "을"의 몸부림으로서 "갑"의 진정성 있는 모습을 기대하며 벌인 행위이다.  하지만 우리 사회에서의 일반적인 갑과 을의 관계처럼 영화속 "갑"인 권력은 진정성 없는 태도로 일관하며 끝내 "을"에게 모든 혐의와 모함을 덧씌워 사지로 내모는 일마저 서슴지 않는다.

 

때문에 권력 먹이사슬의 정점에 놓인 대통령에게 사과를 받으려 하는 테러범과 인질의 목숨을 담보로 자신의 영달만을 위해 추악한 짓을 서슴지 않는 직장상사 그리고 대충 얼버무리다 테러범을 급습하려는 청와대, 경찰과 같은 권력기관은 서로 평행선을 달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설사 사람이 죽어나가는 일이 있다손 쳐도 "갑"은 "을"에게 형식적인 제스처를 취할지언정 진정성 있게 머리를 숙이는 일 따위 절대 없노라는 걸 이 영화는 극명하게 보여준다.  오히려 자신들의 권력과 지위 유지를 위해 뭇 사람들의 목숨마저 이용하려는 잔인함마저 드러낸다.  권력의 속성이다.  이는 생태계의 상단으로 갈수록 그 정도가 심해진다.  윤영화 또한 성공과 개인의 영달을 위해 온갖 추잡한 짓을 해왔지만, 결국 그 또한 권력과 돈의 먹이사슬 앞에서는 희생양이 될 수밖에 없음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을"의 현실이다.

 

진정어린 권력의 사과만을 바랬던 테러범에겐 사과는 커녕 총알 세례만이 퍼부어질 뿐이다.  마지막 엔딩 장면이 압권이다.  윤영화의 마지막 몸짓은 우리 사회의 부조리를 모두 쓸어버려 리셋하고 싶다는 의지의 표현이고, 추악한 권력에 대한 일종의 경고 메시지다.

 

권력과 "갑"에 대해 마지막으로 통렬한 빅엿을 날린 셈이다.  모처럼 정말 통쾌함을 느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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