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접 경험의 즐거움

<설국열차> 삶의 물리적 토대 변혁을 위한 거친 몸부림

새 날 2013. 8. 12. 1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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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영화의 신기원을 열었던 봉준호 감독 작품 "괴물"에 대한 인상이 너무 강렬했던 탓일까?  아니면 그로부터 꽤나 많은 시간의 흐름이 있었고, 때문에 더욱 진화한 한국 영화들에 익숙해지며 눈높이가 높아져서 그런 걸까?  그도 아니라면 현재 가장 많은 호평을 받으며 장안의 화제로 떠오른 인기 탓에 기대치가 너무 높아 그런 것일까?

 

 

어쨌든 이 푹푹 찌는 폭염 속에서 땀 흘리며 애써 영화관을 찾아 관람한 영화치고는 영 별로였다.  특히 이 영화의 감독과  같은 감독의 작품인 "괴물"에 비해 더욱 그러했다.  이상하게도 그동안 많은 사람들로부터 좋은 평가를 받은 영화일수록 내겐 오히려 실망으로 다가온 경우가 많았다.  비근한 예로 "베를린"을 들 수 있겠다.  베를린, 여러모로 참 맘에 들지 않은 구석이 많았지만, 특히 외국인 배우들의 극의 흐름에 녹아들지 못한 연기 탓에 관람내내 나의 집중력을 자꾸만 흐트러뜨려 놓았었다.

 

"설국열차" 또한 많은 외국인 배우들의 출연으로 그와 비슷한 느낌을 주지 않을까 싶어 사실 관람을 꺼려했던 측면이 있다.  하지만 다행히 그러한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된다.  배우들의 연기력이 뛰어난 것이었는지 아니면 봉준호 감독의 연출력이 훌륭한 것이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어쨌든 베를린에서와 같이 집중력을 떨어뜨릴 만큼의 엉성한 연기와 연출은 단언컨대 없다.



허나 안타깝게도 내용적인 측면에서 기대 만큼의 완성도를 보여주지 못 한다.  감독이 의도한 세계관과 영화가 내포하고 있는 그럴싸한 난해한 메시지 따위를 배제한 채 순수 볼거리 위주로의 관점으로 볼 때 결코 만족스러운 영상을 제공해주지 못 한다는 의미이다. 

 

아니 오히려 쓸 데 없어 보이는 격투씬이 너무 많아 번잡스러웠고 꽤나 잔인한 장면들 때문에 눈쌀이 찌푸려질 때가 한 두 번이 아니었다.  감독의 메시지 전달을 위해 이토록 과도한 격투씬과 피가 낭자한 잔인함이 굳이 필요했을까 싶다.  아울러 하나의 독립된 세계로 표현된 기차, 어쩔 수 없었던 측면이 있긴 하겠지만 영화 내내 좁아터지는 기차 안에서의 씬만을 바라보다 보니 폐쇄된 공간의 특징 때문이었는지 무척이나 답답함을 느껴야 했다. 

 

앞서 봤던 "더 테러 라이브"와 비교되는 부분이다.  이 영화 또한 주된 배경이 "설국열차"와 마찬가지로 좁아터지는 라디오 스튜디오 안이다.  물론 도중 약간의 긴장감이 떨어지는 찰라 다소의 지루함이 느껴지긴 했지만, "설국영화"에서와 같은 답답함과는 그 차원이 달랐다. 

 

 

열차는 세상의 축소판이다.  현대사회로 넘어오게 되면서 옛날과 같이 명문화된 계급이 존재하지는 않지만, 재산과 사회적 지위, 직업 등에 의해 눈에 보이지 않는 차별화된 계층으로의 분화가 존재하는 것은 공공연한 현실이다.  기차의 맨 끝 칸은 사회의 가장 밑바닥 인생이랄 수 있는 하층민들이 탑승해 있고, 앞칸으로 갈수록 점차 높은 계층의 사람들이 자리하고 있다.

 

세상을 담아낸 하드웨어적 토대를 이루고 있는 열차는 이를 직접 설계하고 제작한 윌포드라는 인물에 의해 운영되고 있다.  이 세상의 토대를 움켜쥔 그는 절대권력자다.  오로지 그만이 세상을 쥐락 펴락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으로서 절대권력을 휘두르며 열차 내 균형을 유지해 나간다.  마치 생태계의 개체수가 일정하게 유지되는 생태계 평형을 이루듯 열차 내의 사람 수 또한 일정한 숫자로 맞춰 균형을 유지하는 것이 그만의 운영 방식이다.

 

이를 위해 때론 열차내 반란을 고의로 유도하는 등 윌포드는 주도면밀함을 잃지 않은 채 균형 유지를 명분으로 열차내에서의 살인 행위마저 정당화시킨다.  절대권력 앞에선 그 어떠한 반란이나 계급투쟁의 몸부림조차도 윌포드 손바닥 안에서 놀아나게 되는 셈이다.  현재의 체제 하에선 절대권력을 물리칠 수 있는 방법이 없다는 것을 깨닫는데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으며, 이로부터의 유일한 탈출 방법은 결국 물리적 토대 자체를 없애는 일임을 절실히 깨닫게 된다.  그러나 세상의 물리적 토대를 완전히 뒤집어놓는 사회변혁엔 당연히 그에 비례한 희생과 모험이 따르는 법이다.

 

이 영화 또한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 없다"라는 법칙을 또 한 번 증명해준 셈이다.  수백 억원이 투자된 제작비를 뽑아내기 위해 배급사는 상영관 수를 대폭 늘리고 언론 플레이를 통해 지속적으로 세간의 관심을 유발시키고 있다.  그러한 노력 덕분인지 현재 박스오피스 1위를 달리며 수백만명의 관객 몰이를 하고 있다. 

 

그렇다면 과연 투자한 액수 그리고 수백만명 관객몰이 만큼의 실제 가치가 존재하는 영화라고 할 수 있을까?  글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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