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편린들

테러울렁증 미국, 북한울렁증 한국, 다른듯 닮은꼴

새 날 2013. 4. 26. 1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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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스톤 마라톤 폭탄 테러 사건이 벌어진 직후 미국 FBI는 곧바로 테러 용의자를 지목하며 공개수배하였고 얼마후 그를 체포하였다는 소식이 실시간 속보로 우리에게 전달되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미국 경찰의 기민한 움직임보다 저의 귀를 더욱 솔깃하게 했던 것은 바로 테러 용의자의 출신 국가입니다.  역시나 예상을 크게 벗어나지 않았습니다.  아랍계였던 것입니다.  보다 정확한 그의 국적, 사우디아라비아로 밝혀졌습니다.  하지만 그는 곧 무혐의로 풀려나게 됩니다.

 

  이슬람계와 유색인종을 향한 마녀사냥

 

911 테러 이후 미국 사회를 짓눌러 온 테러리즘 트라우마, 10년이 더 지났건만 미국은 여전히 그로부터 헤어나지 못하고 있는 모습입니다.  당시 그들이 당한 충격과 고통, 이루 말로 형언할 수 없을 만큼 어마어마한 것이었기에 심정적으로는 충분히 수긍 가능합니다. 

 

하지만 FBI의 테러 용의자 지목에서도 볼 수 있듯 비슷한 사건만 터졌다 하면 미국인들의 반응, 한결 같습니다.  짐작컨대, 아마도 911 테러 트라우마란 녀석이 미국인들로하여금 집단 이성 마비 현상이라도 불러일으키게 하는 모양입니다.  물론 이와 같은 일, 전적으로 언론과 정치권이 맨 앞줄에서 진두 지휘를 하고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겠지요. 

 

이슬람권 국가 출신이라는 이유만으로 그들이 미국 사회로부터 받아야 하는 따가운 눈총, 앞으로도 얼마나 더 많은 속앓이를 해야만 할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려하던 일들이 그대로 현실화되고 있었습니다.  보스턴 마라톤 폭탄 테러범과 그 배후가 분명하게 드러나지도 않은 상황에서 아랍권 출신 등 유색인종을 겨냥한 마녀사냥식 증오 범죄가 미국 내에서 잇따랐던 것입니다.  이는 단순 폭행을 넘어 한 사람의 목숨까지 잃게 한, 안타까운 일을 기어코 만들어내고야 말았습니다.  네티즌 수사대에 의해 이번 테러 사건 용의자로 지목되어 누명을 썼던 브라운대 철학과 학생 트라피시가 숨진 채 발견된 것입니다.  자살로 보여지지만, 그에 대한 동기가 아직은 명확히 밝혀지지 않고 있습니다.

 

  미국 내에서 일고 있는 자성의 목소리

 

이런 도를 넘는 마녀사냥 현상에 대해 미국 내 일각에서 뒤늦게 자성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습니다.  그중 테러리즘 연구자인 스콧 애트런 존제이 형사사법대학 교수가 지난 22일(현지시각) 미국 외교 전문 매체 포린폴리시에 기고했던 글 하나를 소개해 볼까 합니다.

 

미국 언론과 정치권이 보스턴 테러 사건 이후 테러리즘에 대한 선정적 접근으로 그의 위험을 과대포장하고 있다.  오히려 언론의 이러한 호들갑이 새로운 세대의 테러리스트들을 낳고 있다.  보스턴 테러범 가운데 한 명은 숨지고 한 명은 붙잡혔지만, 그들의 테러 행위는 결국 우리의 가장 내밀한 공포를 부추긴 한 편의 '스펙터클한 쇼'를 통해 승리했다고 할 수 있다.  어린이건 누구건 미국민이 폭탄테러로 숨질 확률은 규제받지 않은 총기나 감시에서 벗어난 비료공장(텍사스주 비료공장 사고를 지칭) 탓에 목숨을 잃을 확률보다 훨씬 낮다.  미국 정치권과 대중은 다른 대부분의 폭력에는 '상당한 관용'을 보이는 반면 테러리즘에 대한 '무관용 정책'에는 무비판적인 지지를 보내는 듯 하다.  9·11 정도 규모의 테러행위도 미국 사회에 심각한 타격을 입힐 수는 없으며, 오히려 우리의 반응이 결국 사회를 해치는 것이 된다.  우발적인 테러 행위를 서로 연관짓고 부풀려 '전쟁'이라거나 '자유에 대한 공격'으로 포장함으로써 어떻게 보면 주변적인 현상이라고 할 수 있는 테러가 미국 정부와 국민의 최대 관심사가 됐다.  언론은 공공선을 지향하는 보도를 통해 테러리즘과 미디어의 '동업관계'를 끊어낼 수 있다.  우리가 절제를 발휘하고, 삶을 다시 살아내는 사람들을 조망할 때 테러리즘은 패배할 것이다.

 

미국 등 서구의 민간인을 상대로 한 대부분의 테러 행위가 체계화된 해외 테러조직에 의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느슨한 인간관계 속에서 개인적 좌절을 맛 본 이들에 의해 스스로 탄생한 자생적 테러일 가능성이 높다며, 언론과 정치권의 테러리즘에 대한 선정적 접근에 일침을 놓은 것입니다.

 

  미국 사회와 한국 사회, 서로 다른 듯 닮은 꼴

 

테러에 대해 비이성적인 집단 현상마저 보이고 있는 최근의 미국 사회를 보며, 자연스레 한국 사회를 돌아보게 됩니다.  테러 울렁증에 걸린 미국인들, 테러 얘기만 나왔다 하면 이슬람권을 지목하듯, 북한 울렁증에 걸린 우린 무슨 일만 터졌다 하면 일단 그의 배후로 북한을 지목하는 일이 다반사가 되었습니다.  미국 사회가 이슬람권을 향해 마녀사냥을 벌이듯 우리 사회에선 종북세력이라 낙인 찍힌 자들을 향해 총구를 정조준하고 있는 셈입니다.

 

어찌 보면 사람 사는 동네는 국내외를 막론하고 정말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게 합니다.  우리가 북한에 대한 울렁증 때문에 종북세력 색출과 같은 웃지 못할 해프닝을 겪어 왔듯, 미국 사회 또한 그와 유사한 행태를 보여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미국 사회의 뒤늦은 자성의 목소리, 비록 일부분의 목소리겠지만, 테러 울렁증 때문에 실체가 불분명한 것을 향해 집단으로 드러내었던 광기어린 행태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기회라고 여겨집니다.

 

얼마전 어나니머스의 북한 매체 해킹 사건을 통해 우리 사회에 불어닥친 종북세력 색출 논란, 우리가 짊어진 북한과 미국이 짊어진 테러, 때문에 미국의 마녀사냥과 다른 듯하지만 위협이라는 속성상 비슷한 측면이 있기에 일견 다른 듯하면서도 같다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 또한 지극히 상식적이며 이성적인 형태의 사회를 지향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관련   "美언론 선정적 보도로 테러위험 과대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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