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접 경험의 즐거움

풀꽃시인의 행복하게 사는 법.. 도서 <나태주의 행복수업>

새 날 2024. 6. 8. 2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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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인 충남 서천으로부터 조금 떨어진 공주에서 문학관을 운영하며 풀꽃을 가꾸고 살아가는 시인. 이른바  '풀꽃시인'으로 널리 알려진 나태주다. 그는 1945년생, 우리 나이로 올해 여든살이다. 조급하게 살아가는 현대인들을 향해 너무 잘하려 애쓰지 말라던, 예쁘지 않은 너에게도 어여쁘다며 진정으로 응원해 주던 노시인을 인터뷰어 김지수가 만났다. 

 

도서 <나태주의 행복수업>은 <이어령의 마지막 수업> 작가이자 인터뷰어인 김지수가 2023년 2월부터 5월까지 매주 한 차례 충남 공주의 풀꽃문학관을 찾아 나태주와 함께 시간을 보내며 나눈 대화를 써내려간 에세이이자 여행기다. 두 사람이 나눈 정겨운 대화는 새초롬하게 내민 봄의 햇살처럼 풋풋하고 따사롭기 그지없다. 긴장으로 굳게 닫혀 있는 독자의 몸과 마음의 빗장을 스르르 열리게 해 줄 것이다.

 

나태주 시인이 쓴 시는 초등학생도 이해하기 쉬울 만큼 어려운 시어들이 없다. 그는 난 체 하기 위해 글을 쓰지 않는다. 그의 표현처럼 그저 보통의 마음으로 사람들의 심금을 쥐락펴락한다. 조금은 서투르지만 이 보편성이 갖는 힘은 무척 크다. 시인은 인생의 본질도 자신의 시처럼 서투른 것이라고 말한다. 모두에게 서투른 삶이기에 그저 열심히 살아가는 수밖에 없음을 노시인은 진작부터 터득했다. 

 

그렇다면 시인에게 열심히 잘 사는 건 어떤 의미일까. 자신이 잘하는 일에 최선을 다하고 그 결과가 다른 이들에게 도움이 된다면 그게 바로 잘 사는 지름길. 문득 '만인을 위해 싸울 때 나는 자유'라고 일갈하던 고 김남주 시인의 글이 오버랩되는 건 우연일까.

 

더불어 시인은 인생의 금잔, 즉 황금기는 늦게 올수록 좋다고 말한다. 사실 나태주 시인이 딱 그짝이다. 중심이 아닌 변방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며 틈틈이 시를 써오기는 했으나 그의 작품이 비로소 빛을 발하여 오늘에 이르게 된 건 불과 10년 남짓. 그래서 너무 좋단다. 

 

 

시인은 독자들을 위해 자신의 영업비밀(?)도 풀어 놓았다. 시를 쓰는 요령인데, 모두가 알고 있는 시 '풀꽃'을 그만의 공식에 대입시켜 보자.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

 

 

첫째는 의인화, 둘째는 대화, 마지막으로 두 개는 본질적인 것, 그리고 한 개는 이질적인 것을 섞으면 시가 된단다. '풀꽃'도 그랬다. 꽃을 의인화하고, 대화하듯 써내려 간 뒤, 본질인 꽃을 이야기하다가 대상을 너로 바꾼다. 시는 고상하고 어렵다는 인식이 강하지만, 적어도 나태주 시인의 시만큼은 이 법칙으로부터 예외일 듯싶다. 이참에 시 한 편 작성해 보는 건 어떨까. 노시인의 공식으로.

 

나태주 시인은 자신을 매우 졸렬한 인물이라 자평한다. 고해성사 같았던 그의 과거 허물은 사실 타인에게 풀어놓기 쉽지 않을 만큼 내밀한 것들이었으나 그는 기꺼이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깊이 반성했다. '졸렬하다'는 '옹졸하고 천하여 서투르다'는 사전적 의미를 갖는다. 시인도 언급했듯 누구나 자신의 인생은 서투르기 마련. 그렇다면 진짜로 졸렬한 사람들은 따로 있지 않을는지. 바로 부끄러움을 모르는 사람들 말이다.

 

나를 포함한 현대인들은 내면에 화를 많이 품고 사는 듯하다. 평균치를 미리 그어 놓고 그에 미치지 못 할까 봐 발버둥치며 오늘도 타인들과의 경쟁 속에서 허우적거린다. 치열함은 디폴트, 즉 상수다. 여기에 온갖 변수들이 우리의 멱살을 툭하면 잡아채가기 일쑤다. 엇그제 새해가 시작된 것 같은데, 잠깐 돌아서니 벌써 연말이다. 이런 분위기에 휩쓸려 살다 보니 우린 늘 '여긴 어디, 나는 누구'를 외치고 있는 게 아닌가.

 

길을 걷다 보면 스쳐 지나가는 수많은 사람들, 그들의 대부분은 무표정. 그나마 잔뜩 화난 듯한 표정을 짓지 않은 것만으로도 천만다행인 걸까. '오늘도 무사히'라는 표현이 입에서 절로 흘러 나온다. 하루에도 수십 번, 아니 수백 번 되뇌이길. 난 왜 남들보다 잘하지 못 하는 걸까. 나는 왜 이렇게 무능한 걸까. 자책하고 또 자책한다. 아주 적당한 시기에 인생의 금잔을 즐기고 있는, 공주에 터 잡고 사는 노시인은 이런 우리에게 이렇게 말하곤 한다. 너무 잘하려 애쓰지 말라.

 

감사하다 자꾸만 말하고, 예쁘다 또 말하면 실제로 그렇지 않아도 그렇게 된다고 주장하는 시인. 글로 쓰고 입으로 되뇌이다 보면 우리의 마음도 몸도 덩달아 말이나 글처럼 따라가게 된다는 의미. 그렇다면 그가 말하는 행복이란 무엇일까. 그의 행복론을 들춰보자.

 

인생은 그 자체로 고통이다. 모두가 행복을 말하고 이를 추구하는 이유다. 시인의 행복론은 아주 단순하다. 거창한 게 아닌, 일상 속 작은 것에서부터 행복을 찾으려 노력해야 하는 당위성에 대해 조곤조곤 말한다. 

 

시인과 인터뷰어는 매우 폭넓은 주제와 다양한 소재를 놓고 대화를 이어간다. 우리가 살아가는 데 있어 한번쯤 짚어봐야 하는 삶의 자세나 지침들, 때로는 진지하게 때로는 농을 쳐가며 독자들에게 노시인의 생각을 전달한다. 푸근한 시골 할아버지 같은 이미지의 나태주 시인. 어느 누구보다 치열하게 살아온 '서울러' 김지수 인터뷰어. 두 사람의 대화는 그래서 더욱 맛깔나다.

 

햇살 가득한 봄날, 풀꽃 만발한 한적한 시골길을 하릴없이 타박타박 걷는 듯한 행복감을 선사해 줄  <나태주의 행복수업>. 화를 많이 안고 사는 모든 현대인들에게 일독을 권한다.

 

 

저자  김지수

열림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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