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접 경험의 즐거움

속물 사회를 통렬히 비틀다 <속물들>

새 날 2020. 12. 3. 1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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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작가 선우정(유다인)은 동료의 작품을 표절한 뒤 이른바 ‘차용미술’이라는 그럴 듯한 이름으로 포장하여 작품을 발표하고 이를 판매하며 살아가는 인물이다. 덕분에 그녀는 평소 자신의 행위를 못마땅하게 여겨온 동료들과 심각한 갈등을 빚거나 송사에 휘말리는 일이 다반사였다. 


그러던 어느 날, 선우정은 한 유명 미술관의 큐레이터 서진호(송재림)로부터 특별전 참여 제안을 받게 된다. 애인 김형중(심희섭)과 동거 중이던 선우정은 이 특별전 참여를 빌미로 서진호와 깊은 관계로 발전하는데..


영화 <속물들>은 창작보다 동료들의 작품을 베끼는 작업에 더 익숙했던 한 여성 미술작가와 그녀의 주변 인물들에 대한 이야기다. 미술계의 낡은 관행을 풍자적으로 묘사한 블랙코미디로, 속내를 감춘 인물들 저마다 미술관을 매개로 치열한 속물 다툼을 벌이는 내용이 인상 깊게 다뤄진다. 



고등학교 친구 탁소영(옥자연)이 선우정 앞에 모습을 드러낸 건 서진호와의 인연이 깊어갈 즈음이다. 영국에서 건너온 탁소영은 자유분방한 데다 거침없는 성격의 소유자다. 선우정이 애인 몰래 다른 남자를 사귀고 있다는 사실을 눈치 챈 탁소영은 이를 빌미로 선우정의 애인 김형중을 자신이 유혹하겠다는 발칙한 제안에 나선다.  


한편, 김형중은 서진호가 팀장으로 소속된 미술관의 총감독 유지현(유재명)의 부탁으로 새로운 팀장 자리에 앉게 된다. 평소 서진호를 못마땅하게 여겨온 유 감독. 그를 퇴출시키는데 일조할 적임자로 김형중을 낙점한 것이다. 각자 팀장임을 내세우며 신경전에 돌입하는 두 사람. 이들 가운데 하나는 선우정의 애인이고 또 다른 하나는 선우정의 외도 상대. 결코 웃을 수 없는 이러한 현실은 극을 과연 어떤 결말로 이끌고 갈는지.



영화 <속물들>은 감독이 언론 인터뷰를 통해 밝혔듯이 지난 2007년 세상을 떠들썩하게 한 ‘신정아 사건’을 모티브로 한다. 겉은 더없이 화려하지만 그 이면은 부조리하기 짝이 없는 예술계, 그중에서도 미술계의 실체를 폭로한다. 미술계 주변에서 공공연하게 횡행해온 표절과 비자금 횡령 그리고 탈세 등 불의한 사건과 속물로 점철된 인물들을 배경으로 미술계의 현실을 꼬집는다. 



선우정은 재능 부족에 대한 열등감으로 똘똘 뭉친 인물이다. 재능 없이 그동안 미술계에서 버텨올 수 있었던 건 뻔뻔함이라는 유전자와 특유의 속물근성 덕분이다. 탐욕을 위해 친구에게 기꺼이 자신의 애인마저 유혹하도록 허락하는 그녀. 이를 제안하는 탁소영이나 이를 받아들이는 선우정, 이들은 어느 누가 먼저랄 것 없이 막장드라마 속 주인공에 다름 아니다. 


선우정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좋은 환경에서 태어나고 자란 탁소영. 그녀는 내면의 욕망을 결코 감추는 법이 없다. 이러한 기질은 선우정을 비롯한 주변 사람들을 꽤나 불편하게 만드는 요소다. 그 배경에는 탁소영의 본디 성향이 한 몫 단단히 거들지만, 그녀 나름의 세상살이 전략일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그녀는 극중 선우정과 대척점에 서게 된다. 



선우정의 애인 김형중은 주변에서 벌어지는 사건의 실체를 애써 모르는 척 겉으로는 그저 묵묵히 주어진 소임을 다하는 듯 보이지만, 실제로는 여타의 인물들과 마찬가지로 철저한 속물에 지나지 않는다. 서진호는 청년 예술가로서 미술계의 낡은 관행을 타파하려 노력하는 등 누구보다 진보적이며 정의로운 진영에 앞장서는 인물로 그려진다. 그러나 앞뒤가 전혀 다른 그의 파렴치한 행동 양식은 결국 속물이라는 족쇄에 그 스스로를 옭아매는 악수를 초래하고 만다. 


극중 유지현 감독은 기성세대이자 실세로서 오랜 관행을 통해 미술계의 단물을 빨아온 인물이다. 그는 오늘날 미술계의 부조리한 현실과 궤를 함께해왔으며, 먹이사슬의 최상단에 위치해 있는 상징적인 인물이기도 하다. 



겉은 더없이 우아하고 화려한 이미지로 포장돼 있으나, 그 이면은 상대의 뒤통수를 서로 후려치거나 속고 속이는 관계로 얽히고설킨 냉혹한 현실. 이런 가운데 누가 더 속물적이며 탐욕으로 똘똘 뭉쳤는지 마치 경연이라도 펼치듯 아귀다툼을 벌이는 사람들. 영화 <속물들>은 미술관을 매개로, 미술계 내부에서 벌어지는 사건과 인물들을 통해 우리 사회를 통렬히 비튼다.



감독  신아가


* 이미지 출처 : (주)삼백상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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