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편린들

재테크로 둔갑한 지방세 카드 대납 사기 사건의 실체

새 날 2020. 3. 7. 1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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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테크는 모든 이들의 관심 영역이다. 하지만 성실하게 살아온 우리 주변의 평범한 이웃들이 재테크에 관심을 기울였다가 돌이킬 수 없는 피해를 당하는 사례가 곳곳에서 발생하고 있다. 7일 방송된 SBS <뉴스토리> ‘어느 특별한 재테크의 함정’ 편에서는 지방세 대납 미끼로 벌어진 재테크 사기 사건의 전모와 관련 문제점들을 짚어봤다.


광주광역시 외곽의 한 주택가. 집안으로 들어서자 가재도구들마다 압류 딱지가 붙어있다. 사기 피해자 이씨는 “하루하루가 지옥”이라고 말한다.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지난 여름, 지인이 이씨에게 찾아와 괜찮은 재테크가 있다며 소개했다. 신용카드로 다른 사람의 지방세를 내주면 매달 수수료로 2%를 챙길 수 있다는 내용이었다. 귀가 솔깃해졌다. 실제로 그녀가 건네준 카드로 누군가의 지방세가 결제됐고, 수수료 30만 원과 함께 결제할 대금이 입금됐다. 


이후 이씨는 수수료를 더 벌 요량으로 신용카드 몇 장을 추가로 건넸다. 그러나 이후 사달이 벌어졌다. 두 달 연속 잘 들어오는가 싶었던 카드대금과 수수료는 지난해 9월 입금되지 않았다. 본인은 물론 남편 카드까지 합친 피해액이 1억2천여만 원에 달한다. 집 전세보증금의 2배가 넘는 금액이다. 이씨는 “자다가 벌떡 일어나기도 하고, 스스로 화를 삭이느라 잠도 제대로 못 이룬다”고 하소연한다. 



일용직 노동자 주모씨. 그 역시 지난해 지인으로부터 비슷한 제안을 받았다. 혹시나 해서 인터넷을 검색해 보니 지방세를 남의 카드로 납부하는 건 합법이었다. 카드를 건넸더니 결제 대금과 수수료가 꼬박꼬박 들어왔다. 욕심이 생겼다. 아내 카드까지 건넸다. 매달 200만 원의 수수료를 벌었다. 누나에게도 권했다. 그러다 결국 카드 대금이 끊기면서 빚더미에 앉게 됐다. 주모씨는 “6천만 원 정도 피해를 봤고, 큰 누님은 보험약관대출, 집 대출, 담보대출 이것저것 다 끌어당기는 바람에 1억8천만 원의 피해를 입었다”고 말한다. 


지방세 카드 대납 사기 사건의 실체


그렇다면 지방세 카드 대납이란 무얼까? 지방세징수법 20조와 23조에 따르면 제3자, 그러니까 다른 사람의 신용카드로 세금을 납부하는 행위는 합법이다. 다만, 카드를 빌려주고 이번 신종 사기 사건처럼 대가를 수수하면 이는 불법에 해당한다. 


사기 사건은 어떤 방식으로 이뤄질까? 사기 일당은 브로커를 통해 일부 법무사들로부터 지방세 물건을 받아온다. 이의 대가로 브로커와 법무사에게는 수수료가 지급된다. 사기 일당은 신용카드를 빌려줄 회원들을 모집한다. 처음에는 수수료를 잘 지급하여 믿음을 확보하고 신용카드를 최대한 모은 뒤 어느 순간 카드빚만 잔뜩 남겨놓고 잠적해 버리는 방식이다. 지난해 초부터 9월까지 광주에서만 550명이 피해를 당했다. 확인된 피해액만도 260억 원이 넘는다. 



그렇다면 피해자들은 왜 사기 행각을 눈치 채지 못 했을까? 이들은 지인이나 친지 소개로 발을 들여놓은 경우가 많았고, 지방세 납부를 대행하는 법무사가 관여돼 있어 문제가 없을 것이라는 믿음이 작용했다. ATM을 통해 타인 카드로 지방세 납부가 가능한 점이나 카드 결제 내역에 지방세로 찍혀 있음에도 카드사에서 별다른 언급이 없었다는 점도 혹시나 하는 의구심을 사그러들게 했다. 의심이 믿음으로 바뀌자 카드를 더 건넸고, 그러다 빚더미 위에 앉게 된 것이다. 


연세대 심리학과 이동귀 교수는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 처음부터 말이 안 되는 얘기를 하면 넘어가는 사람이 없다”며 “사기 행위는 보통 첫 번째는 사실, 두 번째도 사실, 가장 중요한 세 번째는 사기, 이러한 구조를 갖는다”고 말한다. 사기 일당은 피해자들의 심리를 교묘히 파고들어 지인이나 가족 친지까지 소개하도록 유도함으로써 점점 사기의 규모를 키워갔다. 시간제한을 걸어두어 더 많은 지인과 친척을 끌어들이도록 유도하는 치밀함까지 갖췄다.


하지만 이번 사기 사건이 과연 그들만의 잘못일까? 모든 카드사에는 FDS(이상금융거래감지시스템), 즉 이상 금융 거래를 감지하는 시스템이 갖춰져 있다. 비정상적인 거래를 감지하면 카드 주인에게 연락을 취해 확인 뒤 거래를 정지시키기도 한다. 그런데 취재 결과 카드사들 가운데 오직 두 곳에서만 연락이 왔던 것으로 밝혀졌다. 이상 금융 거래 감지 시스템의 허점이 드러난 셈이다.


사기 행각 방조한 신용카드사와 일부 법무사


한 대학생 피해자는 하루 동안 부동산 취득세를 수천만 원 결제했다. 관련 지자체만도 한두 곳이 아니었다. 어느 누가 봐도 비정상적인 금융 거래였다. 다른 피해자들 역시 매달 수천만 원씩, 그것도 오로지 지방세만 결제했으나 카드사에선 아무런 연락조차 없었다. 일부 카드사는 특별카드한도 명목으로 한도를 크게 올렸다. 이번 사기 사건의 피해 규모가 눈덩이처럼 불어난 건 바로 이 특별한도 때문이다.


더불어민주당 제윤경 의원은 “카드사들이 소비자를 보호해야 한다는 생각은 눈곱만큼도 없고 그저 실적 채우기에 급급했던 것 같다”고 귀띔한다. 



일부 법무사들의 불법 행위도 도마 위에 올랐다. 법무사는 납세자 대신 취득이나 등록 업무를 대행해주고 수수료를 받는 직업인이다. 일부 법무사는 사기 일당에게 지방세 고지서를 공급하고 별도의 돈을 챙겼다. 사기 일당이 결제한 지방세만 해도 최소 수백억 원에 달한다. 적어도 수백 명의 법무사가 이번 사건에 연루돼 있다는 의미다. 


제윤경 의원은 “납세자의 세금으로 이득을 취했고, 카드 제공자까지 모두를 속인 행위이니 법무사도 사기에 가담한 것”이라고 해석한다. 금융정의연대 김득의 대표 역시 “수사를 통해 엄벌해야 한다. 이번 기회에 발본색원하지 않으면 유사한 전문직이 낀 범죄 사건이 계속 일어날 것”이라며 “처벌이 불가능할 경우 법무사협회 등을 통해 자격을 박탈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취재 결과 광주뿐 아니라 대구에서도 120명의 피해자가 100억 원가량의 사기를 당했고, 목포 등 여타의 지역에서도 비슷한 사기 사건이 진행 중으로 드러났다. 사기 피해자들은 신용불량자로 전락하거나 가정이 해체되기도 한다. 이들 대부분은 평범한 중산층이거나 서민들이었다. 가계에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고 싶다는 소박한 마음에서 출발한 재테크가 피해자들을 하루아침에 빚더미 위에 앉혀놓은 것이다. 



사기 피해자들이 스스로 화를 자초한 측면이 전혀 없다고는 말하기 어렵다. 하지만 피해를 당한 이들의 부주의만을 탓하기에는 구조적으로 허술한 지점이 많다. 비정상적인 거래를 감지하는 신용카드사의 FDS는 허점이 보완되어야 할 것이고, 소비자 보호보다 실적에 눈이 멀어 비정상적인 거래를 방관하고 심지어 특별한도까지 높여주는 행위는 마땅히 지양돼야 할 것이다. 이번 사기 사건이 발생한 지 다섯 달 만에야 늑장 주의보를 발령한 정부는 좀 더 신속한 대처가 요구되며, 법무사에 대한 관리감독도 철저해야 할 것으로 생각한다. 


재테크는 모든 이들이 관심을 갖는 사안인 만큼 이를 미끼로 삼은 범죄의 발생은 우리 모두가 언제든 그의 표적이자 피해자가 될 수 있음을 의미한다. 점점 교묘해지는 사기로부터 피해를 당하지 않기 위해서는 가장 먼저 당사자 스스로 의심해보고 또 조심해야겠지만, 구조적으로 존재하고 발생하는 허점은 정부 등 관련 주체가 조속히 나서서 해결해야 할 것이다.



* 이미지 출처 : S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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