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편린들

구충제 항암치료, 희망이 될 수 있을까

새 날 2020. 2. 27. 2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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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말기 암 환자 조 티펜스가 강아지 구충제 펜벤다졸을 복용하여 암을 극복한 사례는 전 세계적으로 큰 반향을 불러왔다. 우리나라에서도 폐암 4기를 앓고 있는 개그맨 겸 가수 김철민 씨가 강아지 구충제를 복용 중이라며 공개적으로 밝히는 등 암 환자들 사이에서 강아지 구충제 열풍이 불었다. 


암 환자들은 펜벤다졸 임상시험에 대한 국민청원에도 나섰으나 지난달 국립암센터는 강아지 구충제 펜벤다졸의 임상시험은 가치 없는 일이라고 못 박았다. 영국 등 해외에서는 사람용 구충제 항암치료에 대한 임상시험이 진행되고 있는데 반해 우리 보건당국은 의학적 근거 없이 시험할 수 없다는 원론적 입장만 되풀이하고 있는 것이다. 


지난 15일 방송된 SBS <뉴스토리> ‘구충제 항암치료, 그 금지된 희망’ 편에서는 강아지 구충제 항암치료를 둘러싼 논란과 사람용 구충제에 대한 임상시험 가능성에 대해 살펴봤다.


강아지 구충제 열풍


지난해 8월, 암 투병 사실을 공개하며 항암치료와 함께 강아지 구충제 복용을 공개한 개그맨 겸 가수 김철민 씨. 그로부터 여섯 달이 지난 지금 그는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김 씨는 퇴원 후 경기도 양평에 머물고 있었다. 김철민 씨는 “의사가 해주는 건 항암과 방사선뿐인데 이것도 얼마 지나면 못하게 되고 수술도 할 수 없게 된다. 이대로 그냥 죽을 수는 없지 않은가. 내가 실험 대상이 될 것”이라며 절박한 심경을 토로했다.



그렇다면 펜벤다졸 복용 이후 스스로 건강이 조금씩 회복되는 걸 느낀다는 김 씨의 객관적인 건강상태는 어떨까? 주치의인 원자력병원 김혜련 과장은 “김 씨가 느끼는 몸의 호전은 표적 항암제 효과 때문”이라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 취재진이 확인해본 결과 몸에 퍼져 있는 암세포는 크기가 약간 줄어들었고, 간수치 상승 등 우려되던 부작용은 다행히 발견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지난해 1월, 신장암 4기로 3개월 시한부 판정을 받은 황보상근씨. 황보 씨는 항암제와 강아지 구충제 펜벤다졸, 사람용 구충제 알벤다졸을 복용하고 있으며, 조만간 메벤다졸로 바꿀 계획이라고 한다. 알벤다졸과 메벤다졸 모두 사람용 구충제이지만 암 치료로는 사용 허가를 받지 못 했다. 때문에 암 환자들끼리 서로 복용량과 부작용 정보를 공유하고 있는 실정이다. 황보 씨는 “의사들이 관리해주면 좋을 텐데 물어볼 데가 없어 불안하다”는 입장이다.


일부 의사들은 이렇듯 절박한 처지에 놓인 암환자를 위해 비록 제한적이나마 정보를 제공한다. 이들은 구충제의 해외 연구 결과와 주의할 점 등을 소개하면서 구충제 항암 치료가 시도해볼 만한 것이라고 언급한다. 가정의학과 김동후 전문의는 “어차피 그분들은 다른 출구가 없기 때문에 그쪽으로 향한 건데, 이를 현실로 인정하고 그분들이 좀 더 안전하게 복용할 수 있도록 임상시험으로 길을 터주는 것이 좋을 것 같다”고 주장한다. 



사람용 구충제 ‘메벤다졸’의 효과


해외에서는 정부의 허가 아래 사람용 구충제인 메벤다졸의 암 치료 임상시험이 수 년 전부터 진행돼왔다. 지난 2014년 유럽과 미국 연구진이 함께 펴낸 논문에서는 사람용 구충제 메벤다졸의 항암 효과에 주목했다. 해당 논문에는 동물시험과 실험실 연구에서 항암제와 같은 효과가 나타난 반면, 독성은 훨씬 낮다는 결과물과 2년 동안 매일 메벤다졸 200mg을 복용한 암 환자 사례도 포함됐다.


취재진이 해당 논문 공동 저자 가운데 한 사람인 팬 판츠아카 박사와 직접 접촉했다. 그는 현재 유럽의 비영리단체 ‘Anti Cancer Fund’에서 활동 중이다. 다른 치료로 시판된 약들 가운데 항암효과가 있는 약의 동물시험과 실험실 연구를 하고, 항암제로 쓰기 위한 임상시험 비용도 지원하는 이 단체의 항암제 후보군은 300개에 달한다. 메벤다졸은 그 중 가능성이 가장 높은 후보군으로 분류된다. 지난해 말 이탈리아 연구진이 발표한 구충제 항암치료 임상시험과 관련 연구 결과에서도 제한적인 펜벤다졸이나 장기 사용 시 결과를 알기 어려운 알벤다졸보다 메벤다졸이 항암제로 더 적합한 것으로 분류됐다.



팬 판츠아카 박사는 “메벤다졸 항암치료 임상시험은 작은 연구팀 한 곳에서 하는 게 아니다. 각기 다른 나라에서 각각 다른 연구팀들이 진행하고 있다. 그들 모두 메벤다졸이 암 치료에 효과가 있다는 확신을 갖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렇다면 해외와 달리 강아지 구충제가 사람에 대한 연구가 부족하여 임상시험의 가치가 없다는 입장을 밝힌 국립암센터는 사람용 구충제 메벤다졸과 알벤다졸의 가능성을 어떻게 보고 있을까?


국립암센터 명승권 박사는 “가능성이 없는 건 아니라고 판단했기에 연구비를 대고 승인을 했을 거다. 그런데 한국은 왜 안 하느냐. 우리는 여러 신약 후보물질에 대해 임상시험을 진행하고 있다. 메벤다졸도 우선순위가 높았다면 진행했을 것”이라고 말한다. 메벤다졸이 항암 효과가 있는 건 인정하지만, 해외 임상시험과 관찰 연구에서 암 환자들에게 나타난 효과의 의학적 인과관계는 더 따져봐야 한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과거 임상심사위원이었던 진단검사의학과 강윤희 전문의의 생각은 조금 달랐다. 그녀는 메벤다졸과 펜벤다졸의 관련 자료를 살펴본 뒤 “효과가 있으면서도 이토록 안전할 수 있다는 사실에 놀랐다”는 반응이다. 그녀는 구충제 항암치료와 관련하여 의료계가 근거를 놓고 검토하는 생산적인 논의보다는 원론적인 부작용만 강조한다고 지적한다. 그러면서 구충제 남용이나 암거래 등 위험한 상황을 감안할 경우 임상시험이 결코 가치 없는 건 아니라고 말하며 “어떤 신약을 개발해도 몇 천억 원을 투자해서 개발에 성공할 가능성은 10%에 불과하다. 다른 항암제의 동물시험 자료와 비교해 봤을 때 결코 나쁘지 않다”고 주장한다.



사람용 구충제 ‘메벤다졸’, 희망이 될 수 있을까


특허가 만료된 사람용 구충제 메벤다졸은 복제 약을 팔던 국내 한 제약업체가 1년 전부터 경제성이 없다며 생산을 중단한 바 있다. 제약업체가 시간과 돈을 들여 메벤다졸의 항암치료 임상시험에 뛰어들기란 쉽지 않다는 의미다. 때문에 미국과 유럽에서는 정부와 비영리단체가 임상시험 비용을 지원하고 있다. 미국 최고 의과대학 중 하나인 존스홉킨스대 암센터에서는 메벤다졸을 암 환자에게 투여할 때 적절한 복용량은 얼마나 되는지를 임상시험 중이다. 이 시험은 미 국립암센터의 예산 지원 하에 이뤄지고 있다. 


영국의 한 전문병원은 정부 허가 아래 암 환자들에게 메벤다졸 등 항암제가 아닌 여러 가지 기존 약을 병행 투약 중이다. 항콜레라제, 당뇨병약, 콜레스테롤 억제제, 구충제 메벤다졸을 각기 한 알씩 매일 암 환자에게 복용시킨 뒤 의사가 환자 상태를 관리하는 방식이다. 신약 항암제였다면 암 환자 등이 매년 수억 원을 부담해야겠지만, 이 약들은 수십만 원에 불과해 더 많은 암 환자들의 치료가 가능하단다. 5천 명이 넘는 환자를 치료하면서도 부작용은 없었다고 말한다. 지난해 말 학술지에 뇌종양 환자 95명의 치료 결과를 실었고, 유방암과 자궁암, 직장암 환자 그룹을 치료한 결과도 곧 발표할 예정이라고 한다. 설립자인 배니스터 박사는 “한국 연구자나 단체가 도와달라고 하면 기꺼이 응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틱 장애 치료제로 허가받은 보톡스는 현재 주름방지용으로 활용되고 있다. 두통약으로 개발된 아스피린은 혈전 용해제로 쓰인다. 최근엔 코로나19 환자들에게 에이즈 치료제를 처방, 효과를 톡톡히 보고 있다. 이들 사례처럼 구충제 역시 의도하던 것과 달리 암 치료제로 활용될 가능성은 얼마든 열려있다. 암 환자 수 174만 명의 시대다. 관련 비용은 연간 7조 원에 달한다. 구충제가 암 치료제로써의 획기적인 효능을 갖추게 된다면 암으로 촉발된 천문학적인 사회적 비용 또한 크게 줄일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그동안 강아지 구충제의 암 치료 효과와 부작용 여부를 놓고 무수한 논란 속에서도 절박한 처지의 암 환자들은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이를 구입, 복용해왔다. 이번 취재는 이러한 현실에 대한 일종의 팩트 체크에 가깝다. 물론 구충제의 암 치료 효과가 명징하게 밝혀지지 않은 이상 논란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어쨌거나 해외에서는 사람용 구충제 암 치료 연구가 적극적으로 시도되는 반면, 우리는 의학적 근거가 부족하다거나 부작용을 부각시키는 등의 이유로 소극적 방식으로 일관하고 있다는 점은 여러 경로를 통해 확인된 사실이다. 적어도 절박한 이들의 희망이 무참히 꺾이는 일은 없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과연 이게 국가나 보건 당국이 가치 없는 일이라며 그냥 한쪽으로 제쳐놓을 문제인지, 이건 국가의 책임이자 의무라고 생각한다.”



* 이미지 출처 : S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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