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접 경험의 즐거움

가정의 의미 곱씹어보게 하는 영화 '홈'

새 날 2019. 9. 28. 1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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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록 가난하지만 엄마(강보민)와 함께 알콩달콩 살아가던 준호(이효제)와 성호(임태풍). 어느 날 사고로 엄마를 잃게 된다. 갑자기 닥쳐온 불행으로 경황이 없었던 상황에서 동생 성호마저 친아빠 원재(허준석)의 손에 이끌려 준호 곁을 떠나가고 만다. 철저히 혼자가 된 준호. 엄마와 헤어져 따로 사는 아빠(강원재)를 찾아가 보지만, 그를 왠지 부담스러워하는 눈치이다. 


한편 원재를 선뜻 따라나섰던 성호는 얼마 지나지 않아 형 준호와 떨어져 살기 싫다며 하소연한다. 이에 원재는 조금 주저하는 듯하지만, 이내 성호의 의견을 받아들여 준호도 당분간 자신의 집에서 함께 살기로 결정한다. 준호는 비록 생경한 환경이었으나 안락함을 느낄 수 있는 원재의 집에서 원재의 딸 지영(김하나) 그리고 성호와 함께 새로운 생활에 적응해 나간다. 


영화 <홈>은 중학생인 준호가 뜻하지 않은 엄마의 죽음으로 가정이 해체되고, 그와 동시에 새로운 가족을 만나게 된 뒤 낯선 환경을 극복하며 행복을 찾아나가는 과정을 그린 작품이다. 



준호 엄마가 유부남인 원재와의 사이에 낳은 자식이 다름 아닌 준호 동생 성호였다. 그녀는 남편과 헤어진 뒤 준호 및 성호와 함께 살고 있는 처지였으며, 원재의 아내(최유송)와는 앙숙 관계였다. 교통사고가 있던 그날도 준호 엄마는 원재의 아내를 따라 승용차에 함께 올랐다. 두 사람이 탄 차량은 사고가 발생, 둘은 나란히 중환자실로 실려 가고 그중 준호 엄마만 목숨을 잃게 된다. 


자신을 돌봐주던 유일한 사람, 엄마의 죽음. 성호는 친아빠인 원재를 따라가면 그만이었으나 축구를 유독 좋아하는, 아직 중학생에 불과한 준호를 돌봐줄 어른들은 그 어디에도 없었다. 그런 와중에 비록 잠시가 될지 모르는 상황이었으나 원재가 준호에게 함께 지내자며 손길을 내민다. 



초라했던 자신의 집에 비해 원재의 집은 아늑하고 편안했다. 하지만 준호를 매료시킨 건 단순히 물질적인 환경 때문만은 아니었다. 준호는 이곳에서 동생들을 돌보면서 잠깐 동안이나마 행복감이란 걸 만끽하게 된다. 가족과 함께 머무르면서 일상을 누리는 공간이 존재한다는 사실이 준호를 들뜨게 한 것이다.



하지만 준호의 행복은 아직은 불안투성이다. 병상에 누워 있는 원재의 아내가 머지않아 회복될 경우, 준호를 탐탁지 않게 여길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어른들의 결정을 무조건 따라야 하는 준호. 시간이 지날수록 가족과 가정의 소중함이 뼛속 깊숙이 다가옴에도 그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이란 그다지 많지 않았다. 


극 중 준호는 현실이 자신에게 안겨준 중압감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안간힘을 써보지만, 어쩐 일인지 힘에 부치는 듯하다. 어머니의 운명 소식을 접하고 장례식장을 방문했을 때, 홀로 남겨진 뒤 자신이 살던 곳을 찾았을 때, 친구들에게 집단 구타를 당하고 원재의 편의점으로 돌아왔을 때, 낡은 축구화를 들고 축구장을 서성거렸을 때, 카메라의 앵글은 한결같이 준호의 뒷모습, 그러니까 그의 어깨를 클로즈업한다. 준호의 어깨가 유독 처진 느낌이었던 건 결코 우연이 아니다. 그가 현실에서 느끼는 무게감이 어느 정도인가를 가늠해볼 수 있는 장면이다. 준호는 자신을 짓눌러온 무거운 짐들을 훌훌 털어버리고, 과연 그의 바람대로 원재의 가족과 함께 행복을 누리게 될까?  



가정은 안식처다. 어떠한 경우에도, 이를테면 군에 입대를 하거나 여행을 떠나게 될 때에도 언젠가 다시 돌아올 가정이 있다는 사실 덕분에 우리는 현재의 일에 좀 더 집중하게 된다. 여행이 즐거울 수 있는 건 역설적으로 말해, 돌아올 집과 가족 그리고 가정이 존재하기 때문이 아닐까? 다시 말해, 가족 혹은 가정이란 우리의 일상을 더욱 풍족하게 만들어주는 최후의 보루 같은 게 아닐까?



너무 앙증맞아 귀요미로 다가오던 성호 역의 임태풍군. 어른도 소화하기 힘든 역할을, 그것도 경상도 사투리를 곧잘 써가며 천연덕스럽게 해낸다. 연기 경험이 거의 없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그의 연기력은 신통방통했다. 


영화 <홈>은 가정의 해체 위기 속에서 홀로 남게 된 중학생 준호가 가족 내지 가정에 안착하기 위해 몸부림치는 과정을 통해 지금 여기에서 삶을 영위하고 있는 현대인들로 하여금 가족과 가정 그리고 집이란 과연 어떤 의미로 다가오는지를 찬찬히 곱씹어보게 한다. 



감독  김종우   


* 이미지 출처 : ㈜리틀빅픽처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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