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접 경험의 즐거움

욕망의 끝은 어디일까 '더 룸'

새 날 2019. 9. 25. 1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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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잡한 도심을 벗어나 한적한 곳에 둥지를 틀고 새 삶을 시작한 맷(케빈 얀센스)과 케이트(올가 쿠릴렌코) 부부. 부푼 마음을 안고 도착한 새집은 고풍스러운 외관을 갖추고 있으나 기대와는 달리 한 눈에 봐도 오래된 탓에 손봐야 할 곳이 지천이다. 두 사람은 이곳저곳을 치우고 새롭게 단장하느라 여념이 없다. 


그날도 맷은 쓸고 닦는 등 집안 구석구석을 손보고 있었다. 그러다 우연히 낡은 벽지 뒤에 숨겨진 비밀의 공간을 발견하게 된다. 육중한 문을 열고 들어선 해당 공간은 그다지 특별할 것 없어 보이는 또 하나의 방이었다. 하지만 이곳에는 놀라운 비밀이 감춰져 있었다. 원하는 것을 말하면 무엇이든 다 이뤄졌다. 


부부는 비밀의 방에 들어가 갖고 싶은 것들을 말하고 이들 모두를 소유했다. 돈이면 돈, 음식이면 음식, 보석이면 보석, 예술 작품이면 예술 작품, 그들이 필요하다고 말하는 건 무엇이든 다 얻을 수 있었다. 뿐만 아니다. 비밀의 방은 부부의 바람에 따라 우주공간으로 변모하거나 때로는 숲이 되기도 했다. 부부는 자신들에게 찾아온 행운에 도취되어 한동안 꿈같은 일상을 지내게 된다.



영화 <더 룸>은 맷과 케이트 두 부부가 새롭게 이사 온 집의 벽지 뒤에 숨겨진 비밀의 방을 발견하게 되면서부터 벌어지는 사건을 다룬 미스터리 스릴러 장르의 작품이다. 원하는 건 무엇이든 다 들어주는 비밀의 방은 부부를 끝없는 욕망의 화신으로 돌변시켜 이들로 하여금 결코 넘어서는 안 될 선을 넘게 만든다. 이 작품은 제23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에서 장편초이스 부문 작품상을 수상했다.


행복감에 젖어있던 맷은 단 한 가지가 아쉬웠다. 바로 아기였다. 부부에겐 두 차례의 유산 경험이 있을 뿐 아직 아기가 없었다. 맷은 아내 케이트에게 아기를 갖자고 제안한다. 하지만 케이트는 과거의 아픈 경험 때문에 남편의 제안을 선뜻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그래서 택한 게 비밀의 방의 힘을 빌리는 일이었다. 사건은 순식간에 벌어진다.



케이트는 남편 맷이 자리를 비운 사이 비밀의 방을 통해 사내 아기를 얻게 된다. 아기에게 셰인이라는 이름도 붙여주었다. 뒤늦게 사정을 알게 된 맷. 그는 자신들의 피가 전혀 섞이지 않은 아기를 받아들일 수 없다며 이를 되돌리자고 말한다. 그러나 맷의 반응과는 별개로 셰인을 이미 자신의 아기라고 철석같이 믿는 케이트. 그녀는 완강히 버틴다. 결국 맷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셰인은 이들 부부가 양육하게 된다. 



비밀의 방 등장 이후 삶에 극적인 변화를 맞게 된 맷과 케이트 부부. 부풀어 오를 대로 부풀어 오른, 통제 불능의 상태에 빠진 욕망에 의해 건져 올려진 새로운 생명체. 이러한 결과가 과연 이들 부부에게 행운을 가져다 줄 것인지, 아니면 불행의 단초로 작용하게 될 것인지, 흥미진진한 이야기는 이후 본격적으로 펼쳐진다.


인간의 욕망은 어디까지 갈 수 있을지 그리고 그 끝은 어디쯤일지, 영화 <더 룸>은 시종일관 인간의 욕망을 이야기한다. 여기에 으스스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낡은 집, 집 전체를 감싸는 정체모를 전선들, 시도 때도 없이 깜박이는 전등, 과거 벌어진 의문의 살인사건 등 관객들의 호기심과 상상력을 자극할 만한 장치들이 덧대어져 있다. 무한 욕망이 빚어낸 극적인 쾌락은 예측 불허의 사건을 불러오면서 미스터리한 분위기를 증폭시킨다. ‘아버지에게는 적대적이지만 어머니에게는 성적 애착을 가지게 된다’는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의 기원인 그리스 신화를 재해석하여 풀어낸 점도 흥미로운 지점이다. 



인간이 마음만 먹으면 무엇이든 얻을 수 있는 환경에 놓일 경우 어떠한 일이 벌어질까? 고삐 풀린 망아지마냥 통제 불능의 상태에서 폭주할 것이라는 건 누구나 짐작 가능하다. 극 중 부부는 자신들이 필요한 물건들을 별 어려움 없이 소유하면서 욕망을 채우게 되자 더 큰 욕망에 비로소 눈을 뜨게 된다. 


번역 일을 하던 케이트는 마감 날짜에 쫓기는 데다 수입마저 적었던 자신의 신세가 늘 안타까웠는데, 비로소 이러한 굴레로부터 벗어날 수 있게 됐다. 무엇이든 만들어주는 비밀의 방은 가장 먼저 인간을 노동으로부터 해방시켜 주었다. 그렇다면 다음은 무엇일까? 욕망은 날개를 달고 더욱 멀리 날아간다. 그러다 결국 욕심을 내서는 안 될 금기에 손을 대도록 만든다. 비밀의 방을 통해 얻은 아기는 다른 물건들과는 달리 생명체였다. 그것도 단순한 생명체라기보다 개별성을 갖춘 인격체였다. 



‘원하는 것을 갖지 못하는 인간보다 더 위험한 건 바로 원하는 모든 걸 갖는 인간’이라고 말하던 또 다른 비밀을 간직한 인물 존 도(존 플랜더스)의 경고. 무한 욕망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평범한 인간들의 귀에 이러한 경고가 들려올 리 만무하다. 


영화는 과도한 욕망을 발현시킴으로써 겪게 되는 예상치 못한 사건을 통해 욕망에 대한 인간의 속성을 적나라하게 꼬집는다. 이제까지 볼 수 없었던 전혀 새로운 형태의 이야기 전개와 놀라운 상상력은 극의 몰입감을 극대화시키고, 충격적인 결말은 여운을 길게 남긴다.



감독  크리스티안 볼크만   


* 이미지 출처 : (주)퍼스트런, (주)팬 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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