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저냥

"50+ 남자들은 왜 한결같이 다 그래요?”

새 날 2019. 6. 9. 1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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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실에 들어섰더니, 분위기가 왠지 싸했다. 아니 냉랭하다는 표현이 좀 더 어울릴 것 같다. 전화 응대를 하는 분의 목소리가 평소에 비해 상당히 하이 톤이었고, 주변 사람들은 불안해하며 서로의 눈치만을 살피고 있었다. 나는 슬쩍 내 자리로 가 앉았다. 잠시 뒤 통화가 끝나자 모두들 기다렸다는 듯이 한 마디씩 거들기 시작한다. 개중엔 욕지거리를 내뱉는 이도 있었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방금까지 사무실 내에서 있었던 상황을 간추려보자. 전화 한 통이 걸려왔다. 상대에게 협조를 당부하는 내용이었고, 그래야만 그쪽의 일이 추진 가능한, 누구든 쉽게 수긍할 만한 사안이었다. 전화를 걸어 온 사람은 ‘50+세대(50세 이상의 연령층)’의 남성이었으며, 전화를 응대한 이 역시 50+세대의 여성이었다.

전화 응대 당시 최대한 친절하며 공손한 태도로 설명을 하고 이해도 시켜주었건만 전화를 걸어 온 남성은 다짜고짜 ‘내가 어디 출신입네’ 하며 상대방의 말은 끝까지 경청하지도 않은 채 무시하는 태도로 일관하면서 막무가내로 억지를 쓰거나 생떼를 부렸다.



“아무개씨, 50+세대 남자들은 왜 한결같이 다 그래요?”

이 질문에 난 순간 당황했다. 질문은 한 사람이 던졌으나 주변에 함께 있던 여성들의 표정으로 봐서는 죄다 비슷한 생각을 갖고 있는 듯 보였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사무실의 여성들을 지금처럼 화나게 만든 건 단지 이번 한 건만이 아니라는 의미였다. 그동안 숱한 경험을 통해 50+세대 남성들만의 어떤 좋지 않은 공통점 내지 특징 같은 것들을 서로 공유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아마도 남편에 대한 이미지도 이에 적지 않은 영향을 끼쳤으리라 짐작된다.
 
한낮의 조용하기 이를 데 없던 사무실은 한 남성의 전화로 인해 크게 술렁거리며 홍역을 치러야 했다. 졸지에 50+세대 남성 전체에 대한 성토장으로 변모했다. 이쯤 되면 여성들의 응축된 에너지가 나를 향해 일시에 폭발할 듯한 기세였다. 이를 어찌하면 좋을까.


ⓒpixabay


“그들은 여자를 대하는 태도도 아주 밥맛없어. 나더러 결혼을 안 해서 성격이 이 모양이라나 어떻다나. 아무개씨, 말 좀 해봐요. 50+ 남자들은 도대체 왜 그런 거죠?”

점입가경이었다. 여성들의 분노 가득한 에너지 파장이 나에게 고스란히 전달되고 있었다. 그렇다면 왜일까? 왜 특정 계층에게 있어 50+세대의 남성에 대한 이미지는 이토록 좋지 않게 다가오는 것일까? 물론 50+세대에 해당하는 남성들 모두가 그런 건 아니리라 확신한다. 다만, 가부장적이며 권위적인 태도를 쉽게 버리지 못하는 일부의 경직된 태도로 인해 계층 전체가 한꺼번에 매도당하고 있는 게 아닐까 싶다.

그렇다면 이와 관련하여 변명 아닌 변명을 한 번 해보자. 많은 사람들이 직장 생활에 몸담고 있다. 50+세대도 예외는 아니다. 직장 내에서 50+의 나이쯤 되면 보통 중책을 맡고 있거나 퇴직할 즈음이다. 이들을 일컬어 이른바 ‘회사인간’이라고 한다. 회사인간은 아침부터 밤늦은 시각까지 대부분의 시간을 직장에서 보내며 회사에 대한 귀속의식이 무척 강해 한 번 입사하면 퇴사할 때까지 충성하려는 특징을 지닌다. 그러다 보니 독립된 인격체인 자신을 조직과 동일시 여기게 되고, 조직에 의해 부여된 권위마저 고스란히 자신의 것이라고 착각하는 경향을 띠게 된다.



문제는 보통 이 지점에서 발생한다. 회사인간은 퇴사 이후에도 회사에 몸담고 있을 당시 조직에 의해 부여된 권위를 자신의 것인 양 꽉 움켜쥔 채 이를 손아귀에서 놓지 못하는 것이다. 물론 자신의 전부였던 것을 누구인들 하루아침에 쉽게 놓아버릴 수 있을까 싶다. 이러한 성향에 덧붙여 이제껏 우리 사회를 지배해 온 가부장적인 전통 문화의 영향까지 더해지면서 공고해진 권위의식으로부터 쉽사리 탈피할 수 없게 되었을 것이다.

변화 받아들이기를 꺼려하고 과거의 틀에서 안주하려는 그맘때 연령대의 속성도 이에 한 몫 단단히 거들고 있는 모양새다. 젊은 세대처럼 무엇이든 쉽게 받아들이고 재빠르게 바꿀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50+세대는 어느덧 그렇게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연령대가 된 것이다. 그러다 보니 해당 세대 전체가 젊은 세대에게는 ‘꼰대’로, 그리고 일부 여성 계층에는 ‘진상’으로 낙인찍혀버린 게 아닐까?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은 세대 간 혹은 계층 간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얽히면서 갈수록 갈등이 증폭되어가는 양상이다. 대중이 쉽게 이용 가능한 공간조차 어느새 ‘노키즈존’이니 ‘노시니어존’ 등의 형태로 마음에 들지 않는 대상에 대한 진입을 원천적으로 차단하고 있으니 말이다. 이는 차별과 혐오를 키우고 공동체 분위기를 해치며 더 나아가 사회 불안을 야기하는 불씨로 작용할 공산이 크다.

까칠하고 권위적이기까지 한 50+세대 남성들. 이들을 향해 ‘왜 한결같이 그 모양이냐’며 얼굴을 붉히면서 불만을 토로하는 여성들. 이는 자칫 또 다른 갈등의 시작점이 될 수 있다. 나는 이들이 특정 계층을 향해 무작정 분노를 표출하기에 앞서 세대 간 그리고 계층 간 서로의 입장과 처지를 조금씩 헤아리려는 노력을 좀 더 기울여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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