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저냥

몸이 먼저 반응하는 '커피믹스'만의 매력

새 날 2019. 4. 5. 10:59
반응형

여느 때처럼 아메리카노 한 잔으로 업무를 시작했다. 쌉싸래한 원두커피의 향미가 입과 코의 점막을 자극해온다. 이윽고 몸이 반응한다. 카페인의 각성효과 때문인지, 아니면 플라시보 효과 탓인지는 몰라도 분명 집중력이 한결 높아진 느낌인 것만은 틀림없다. 그렇게 하여 시작된 오전 업무 시간은 눈 깜짝할 사이 지나가고 말았다.


이번에 새롭게 맡게 된 직무는 여러 사람이 함께하여 결과를 도출해내는 협업 형태인 까닭에 그 어느 때보다 업무 공유가 중요한 요소로 다가온다. 아울러 업무의 매개 역할을 하는 여러 장치들이 온전하게 갖춰져 있어야 본질적인 직무가 원활해지는 체계였다. 하지만 무슨 연유에서인지 가장 기본적인 것들이 계속해서 삐걱거리고 있었다. 덕분에 본질을 벗어난 일에 신경을 곤두세우며 자꾸만 시간을 허비해야 했다. 


이날도 사실은 오전 내내 그러한 일들과 씨름을 해야 했고, 물론 비슷한 상황은 오후에도 계속해서 이어지고 있었다. 답답하고 불편한 상황이 반복되자 문득 목이 말라온다. 커피 한 잔이 급했다. 오전에 한 잔을 마시기는 하였으나 이는 습관처럼 행한 것일 뿐, 지금 나의 몸이 커피를 간절히 원하고 있었다. 



그래서 이번에는 믹스커피를 한 잔 탔다. 평소 2봉지를 타서 마시기를 즐겨하던 나는 아쉽게도 오전에 원두커피 한 잔을 이미 마셨으므로 정확히 한 봉지만 탔다. 이것저것 주섬주섬 챙김과 동시에 한 모금의 커피로 목을 축인다. 목 넘김이 부드럽다. 달달함이 온몸으로 번져온다. 


“아, 맛있다”


나도 모르게 절로 내지른 탄성에 주변 사람들의 시선이 일제히 나를 향한다. 멋쩍은 웃음으로 화답한다. 이는 정말로 맛이 있지 않으면 절대로 일어날 수 없는 현상이었다. 일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는 상황에서 입속은 바싹 타들어가고, 이 시점에서 달달한 커피믹스 한 모금이 들어가니, 나를 둘러싼 온 세상이 갑자기 달리 다가오는 것이었다. 


조금 과장해서 표현하자면 커피믹스가 나의 몸으로 빨려 들어옴과 동시에 머릿속에서는 화려한 형형색색의 폭죽이 연신 터지는 느낌이었다. 아메리카노가 흑백TV 영상을 보는 칙칙한 느낌이라고 하면, 커피믹스는 화려한 컬러TV 영상을 보는 듯 흡사 천지가 개벽하는 느낌으로 다가온다. 


ⓒpixabay


커피믹스에는 커피와 설탕 그리고 크리머라는 재료가 황금비율로 배합돼있어 우리 모두의 입맛을 사로잡고 있다. 이 배합은 그야말로 절묘하다. 언제 어디에서, 그리고 어느 누구와 함께 마시든 이 커피믹스 녀석 하나만 있으면 언제나 한결같은 맛을 맛볼 수 있게 해주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하여 언젠가 한 외국인이 내게 이런 질문을 해온 적이 있다. “이 커피믹스가 정말로 한국 사람들의 입맛에 모두 맞나요?” 그렇다고 답했더니 굉장히 놀라워하는 눈치였다. 왜냐하면 자기네 나라 사람들의 입맛은 제각기 달라 커피를 타먹을 때면 각기 취향에 따라 비율을 조절하기 때문이란다. 


그렇게 놓고 보니 세계 최초로 커피믹스를 개발하고, 전 세계에 이를 수출하여 세계인의 입맛을 사로잡은 우리 기업의 능력은 실로 대단한 것이었다. 물론 우리가 이 기업이 개발한 제품에 입맛이 최적화된 것인지, 아니면 해당 기업이 우리의 입맛 가운데 가장 보편적인 입맛을 찾은 것인지는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 류의 논리와 비슷하지만 말이다. 



이런 가운데 근래엔 진한 커피 원두의 맛과 향을 느낄 수 있는 원두커피의 소비가 폭발적으로 증가하면서 커피믹스의 소비도 점차 내리막길을 걷고 있다는 소식이다. 여러모로 아쉬운 상황이 아닐 수 없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의 식품산업통계정보에 따르면 커피믹스는 2015년 1천11억 원에서 2016년 944억 원으로 시장 규모가 점차 줄어들고 있었다. 


커피믹스가 비만을 유발한다거나 대사증후군을 일으킨다는 등 성인 건강을 해치는 주범으로 지목되고 있는 점도 최근 건강에 각별히 신경을 쏟고 있는 소비자들로부터 외면을 받게 하는 핵심 요소로 작용하고 있다. 물론 연구 주체에 따라 그 결과가 천양지차인 까닭에 이 또한 ‘술을 적당히 먹으면 건강에 이롭다’거나 ‘무조건 해롭다’는 류의 해묵은 논쟁거리와 다름없지만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달달한 향미의 커피믹스는 오랫동안 수많은 사람들의 둘도 없는 친구로 함께해왔다. 수십 년 동안을 변함없이 말이다. 특히 직장인의 나른한 오후를 깨우며 각성시키는 용도로는 이 만한 게 없다. 오늘도 커피믹스 한 잔을 홀짝이면서 그 달달함의 마성에 나의 몸을 온전히 맡겨보련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