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저냥

'나이 듦'에도 공부가 필요하다

새 날 2019. 6. 6. 1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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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조사 네트워크 WIN이 2018년 10월부터 올해 1월까지 세계 41개 국 성인 31,890명을 대상으로 스스로 더는 젊지 않다고 느끼는 나이와 늙었다고 느끼기 시작하는 나이를 각각 물었더니 우리나라 사람은 평균 52세부터 본인이 ‘더는 젊지 않다’고 느끼고 있었으며, 60세부터 ‘늙었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니까 60세가 되면 스스로를 노인으로 자각한다는 의미다.

평균 수명으로 따지자면 내 나이는 어느덧 반환점을 돌아선 지 꽤 지났다. 스스로도 청춘의 흔적은 더 이상 내 육신에 남아있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렇다고 하여 나를 노인이라고 호칭하기엔 너무 젊다. 나의 정체성은 과연 무얼까? 서두에서 살펴본 통계 결과에 의하면 물리적인 나이를 떠나 스스로가 ‘더는 젊지 않다’고 느끼는, 그러니까 젊은 것도 아니고 늙은 것도 아닌, 나는 이른바 낀 세대의 범주에 속한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달라지는 뚜렷한 몇 가지가 있다. 성호르몬의 감소로 인한 생리적 감정적 변화 따위를 언급하려는 게 아니다. 젊은 시절 몸을 어떻게 다뤘느냐에 따라 사람들마다 다소 차이가 있겠으나, 어쨌든 자신의 심신과 관련하여 조금 더 세심한 관심을 기울여야 하는 시기가 도래한다.



운동을 통해 꾸준히 건강을 관리해온 사람이라면 큰 변화가 없겠으나 그렇지 않았던 이들에게는 건강을 관리하라는 모종의 신호가 오기 시작하는 시점도 바로 이때다. 소홀히 다뤘던 육신에 이전보다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하고 생기를 불어넣어야 하는 시기가 본격적으로 찾아온 셈이다. 젊지 않은 육신을 건강한 상태로 유지시키려면 더 많은 노력이 뒤따라야 한다는 건 모두가 알 만한 사실이다.

시간은 상대적이다. 그럼에도 어느 누구에게나 절대적이며 공평하게 다가오는 한 가지가 있으니, 그건 바로 사람의 몸에 다양한 흔적을 남긴다는 사실이다. 그 흔적에는 대체로 좋지 않은 인식이 깔려있다. 이를테면 힘이 들고 아프며 심지어 추레해지는, 속된 말로 추접하고 칙칙한 이미지로 가득하다.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최근 49세 이상 연령대의 출입을 막는 이른바 ‘노시니어존’이 화제다. 서울 관악구에 위치한 한 식당에 관련 안내문이 붙으면서 논란으로 불거졌는데, 이와 관련하여 온라인상에서 다양한 의견들이 오갔다. 대체로 식당의 회전율을 떨어뜨리거나 추태를 부리는, 이른바 ‘진상’ 손님이 유독 중장년 계층에 많기 때문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이는 젊지도 않고 늙지도 않은, 곧 노인이 될 계층에 대한 일반인들의 생각과 인식의 일단을 엿볼 수 있는 기회였다. 괜스레 나의 얼굴이 화끈거린다.

우리 사회에서 이른바 ‘아주머니’ ‘아저씨’로 대변되는, 젊지도 않고 늙지도 않은 계층에 대한 인식은 가히 좋지 않다. 아주머니와 아저씨라는 어휘는 대개 ‘뻔뻔함’이라는 이미지로 소비되어온 경향이 크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젊지도 않고 늙지도 않은, 곧 노인이 될 계층은 우리 사회에서 왜 뻔뻔함의 대명사가 된 걸까? 어쩌다가 노시니어존까지 등장하게 된 걸까?

서두에서 언급한 ‘더는 젊지 않다’고 느끼는 연령대에 이르면 어느 누가 됐든 육신은 점차 쇠약해지고 망가지기 마련이다. 이는 돌이킬 수 없다. 육체가 점차 힘이 들고 아프며 속된 말로 추접하고 칙칙한 이미지로 변해가면서 더욱 악화되기만 할 뿐 앞으로 좋아질 일이 없다고 판단되다 보니, 육신에 종속돼있던 마음마저 그 통제의 끈을 일시에 풀어헤치고 무장해제해버린 건 아닐는지.



‘나이 듦’이란 나뿐만이 아니라 어느 누구에게든 감당하기 어렵고 당혹스러운 현실로 다가온다. 그렇기에 더더욱 노화에 대한 인식을 달리 해야 할 것으로 판단된다. 향후 펼쳐질 나이 듦과 더 쇠약해져 갈 육신의 섭리에 대해 이를 익히고 이해하지 않는다면 차츰 변해갈 나의 육신 앞에서 느끼는 분노와 좌절감 그리고 상실감이 증폭하리라는 것은 불을 보듯 뻔한 노릇이기 때문이다.

곧 다가올 노년. 늙어가는 몸의 변화를 통제하고 긴장의 끈이 풀린 마음을 다잡기 위해서라도 우리에게는 이와 관련한 학습과 육신을 관리하는 약간의 의지 및 노력이 요구된다.

‘나이 듦’에도 공부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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