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접 경험의 즐거움

희대의 악녀인가 희생양인가 '아이, 토냐'

새 날 2019. 5. 3. 1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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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4년 1월 릴레함메르 동계올림픽 국가대표 선발전을 겸한 피겨 스케이팅 전미선수권 대회를 앞둔 시점. 세간의 관심은 라이벌인 토냐 하딩(마고 로비)과 낸시 케리건에게로 일제히 쏠렸다. 그러나 대회를 불과 이틀 앞둔 상황에서 괴한이 낸시 케리건을 습격하는 사건이 벌어진다. FBI가 수사에 나섰다. 조사 결과 토냐 하딩의 전 남편과 경호원이 이번 사건에 연루됐다. 토냐 하딩은 테러의 배후로 지목된다.

미국 빙상연맹은 부상으로 올림픽 출전이 무산될 위기에 처한 낸시 케리건에게 올림픽 출전을 허용했다. 올림픽에 출전한 낸시 케리건은 2위를 기록하며 은메달을 목에 걸었고, 토냐 하딩은 8위에 그쳤다. 올림픽이 끝난 뒤 토냐 하딩은 미국 빙상연맹으로부터 징계를 받고 결국 선수 자격을 영구히 박탈당하고 만다.

피겨 스케이팅 선수 토냐 하딩의 라이벌인 낸시 케리건이 토냐 하딩의 지인에게 습격당하면서 미국 전역을 발칵 뒤집어놓은, 이른바 ‘토냐 하딩 사건’이다. 이 사건으로 토냐 하딩은 피겨 스케이팅 유망주에서 하루아침에 미국판 ‘국민 밉상’으로 전락, ‘희대의 악녀’로 낙인찍히며 대중들에 의해 조롱의 대상이 되고 만다.



피겨 유망주 ‘토냐 하딩’, 그녀를 추락시킨 라이벌 피습 사건

영화 <아이, 토냐>는 미국 최초로 트리플 악셀에 성공하면서 언론과 대중의 관심을 한 몸에 받았던 피겨 스케이팅 선수 토냐 하딩이 ‘토냐 하딩 사건’에 연루되면서 어떻게 희대의 악녀로 전락하게 되는지 그 뒷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토냐 하딩과 그녀의 엄마 라보나 골든(앨리슨 제니) 그리고 전 남편 제프 길롤리(세바스찬 스탠) 등이 카메라 앞에서 인터뷰하는 장면으로 시작하는 이 영화는 ‘다큐 픽션’의 형식을 띤 위트 넘치는 블랙 코미디 장르의 작품이다. 우스꽝스러운 상황이 끝도 없이 이어지지만 결코 웃을 수 없는 ‘웃픈’ 현실을 비트는 감독의 개성 있는 연출이 돋보인다.



4살 때부터 피겨 스케이팅에 소질을 드러냈던 토냐 하딩은 엄마의 혹독한 훈계와 조련 속에서 성장한 인물이다. 언어폭력은 기본이었으며, 가혹한 폭력은 일상이었다. 그녀는 기술을 완벽히 소화하고 기량을 마음껏 뽐내는 등 무대를 휘어잡았음에도 불구하고 불우한 가정환경과 보수 일색의 기존 질서를 벗어나는 행태 등이 못마땅하다는 이유로 매번 심사위원들로부터 합당한 점수를 받지 못했다.



하지만 엄마의 혹독한 가르침이 이어지고 이에 독기를 품으며 악착같이 연습하면서 스케이트를 탄 덕분에 그녀는 결국 세계선수권대회에서 트리플 악셀을 성공시킨 미국 최초의 선수로 등극하게 된다. 미국 피겨 선수 가운데 어느 누구도 성공하지 못했던 이 기술 하나로 토냐 하딩은 단번에 실력을 인정받게 되고, 스포츠계는 물론 대중들로부터도 스포트라이트를 한 몸에 받는 선수로 급성장하게 된다. 동시에 올림픽 대표 유력 후보 선수로도 떠올랐다.

그녀는 첫 남자친구인 제프 길룰리를 만나 사랑에 빠지고 결혼에도 성공하게 되지만, 행복을 누릴 수 있는 시간은 비교적 짧았다. 결혼과 동시에 엄마의 가혹한 양육과 폭력적인 환경으로부터 비로소 탈출하는 듯싶었으나 이번엔 남편의 폭력과 마주하게 된 것이다. 그의 폭력은 시도 때도 없이 이어졌다. 지옥 같은 일상의 연속이었다.



‘토냐 하딩’은 희대의 악녀인가 희생양인가

이런 그녀에게 탈출구 역할을 해주었던 건 오로지 피겨 스케이팅뿐이었다. 하지만 스포츠계는 실력과는 별개로 그녀만의 개성 넘치는 캐릭터를 그다지 달가워하지 않는 눈치였다. 가난과 불우했던 과거는 그녀를 꼬리표처럼 따라다니면서 실력을 평가 절하하는 용도로 쓰였다. 그들이 원하는 선수상이 아니라는 이유로 수많은 언론과 대중의 가혹한 비난을 받으며 불공정한 대우를 받아야 했던 그녀는 악으로 이를 버텨냈다.



트리플 악셀 기술로 일약 스타덤에 오른 뒤 토냐 하딩을 열심히 띄우기 바빴던 스포츠계와 미디어 매체들. 이들은 낸시 케리건 피습 사건이 발생하자 급작스럽게 돌변, 토냐 하딩을 희대의 악녀로 몰아가기 시작했다. 자유분방한 평소의 행태와 과거 불우했던 환경 따위의 요소들까지 어느덧 족쇄가 되어 그녀를 옭아매는 역할을 톡톡히 했다.


토냐 하딩으로 완벽하게 빙의한 마고 로비의 파워풀한 연기가 단연 돋보이는 작품이다. 대중들에게 ‘할리퀸’의 이미지만으로 각인되고 소비되기에는 아까운 측면이 엿보이는 대목이다. 괴물 같은 엄마를 잔혹하면서도 때로는 코믹하게 연기한 제75회 골든글로브 여우조연상의 주인공 앨리슨 제니의 열연도 빼놓을 수 없다.



토냐 하딩은 평생을 폭력에 시달려온 불우한 환경 속에서 성장한 인물이다. 유년기와 청소년기엔 엄마의 폭력으로부터, 그리고 성인이 되어선 남편의 폭력에 의해 늘 갇혀 지내왔다. 유일한 즐거움이었던 스케이팅에 빠져든 동안에는 그녀를 눈엣가시로 여긴 스포츠계가 또 다른 가해자에 다름 아니었다.

뿐만 아니다. 달면 삼키고 쓰면 뱉기 일쑤인 언론과 미디어 매체, 그리고 대중들의 행태 또한 그녀를 막다른 궁지로 몰아넣는 역할을 톡톡히 한다. 이들은 진실보다는 각기 자신들의 입맛에 맞게 각색된 가십 따위에 집중하고 또 열중했다. 그들의 공격은 집요했다.

국민 밉상과 희대의 악녀로 회자되면서 영원히 고통 받고 있는 토냐 하딩 앞에 진실은 그 어디에도 없었다.



감독  크레이그 질레스피


* 이미지 출처 : 영화사 진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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