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접 경험의 즐거움

영화 '버닝'의 원작 소설 '헛간을 태우다'

새 날 2018. 5. 22. 17: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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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세 기혼자인 나는 친지의 결혼식에서 20세인 그녀를 알게 됐다. 그녀는 유명 선생님으로부터 팬터마임을 배우고 있으며, 간혹 광고 알바를 통해 생계를 유지하곤 한다. 그녀는 요즘 말로 표현하자면 상당히 쿨한 여성이었다. 아울러 내겐 있는 그대로의 그녀로 충분히 만족스러웠다. 복잡하고 골치 아픈 생각 따위는 애초 하지 않으려는 성향 덕분에 그녀의 머릿속은 늘 깃털처럼 가벼웠다. 좋게 표현하자면 순수함 같은 종류의 것이다. 


나는 그녀의 이런 점이 맘에 든다. 다른 사람들도 아마 나와 비슷할 테다. 누구든 쉽게 빠져들 법한 매력 포인트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녀의 대화에는 상대방을 편안하게 해주는 묘한 재능이 숨어 있다. 그녀와의 만남은 주로 나의 일방적인 연락을 매개로 이뤄졌으며, 물론 만남에 따르는 비용 또한 모두 내가 지불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녀는 북아프리카를 몇 개월 동안 다녀오겠단다. 왜 하필이면 북아프리카인지는 그녀를 이해하기 쉽지 않은 것처럼 알 수 없는 종류의 것이었다. 어쨌든 그녀는 북아프리카로 훌쩍 떠났으며, 3개월 만에 다시 돌아왔다. 



그런데 이번엔 혼자가 아니었다. 나보다는 조금 어릴 것으로 짐작되는 남성과 함께였다. 이 남성은 출중한 외모에 멋진 스포츠카를 몰고 다녔다. 언뜻 봐도 돈이 많은 듯한 청년이었다. 그다지 알고 싶지도 않고 내키지도 않았으나 왠지 물어 봐야 예의일 것 같아 무슨 일을 하느냐는 질문을 던졌다. 무역업을 한다는 그의 답변이 돌아온다. 하지만 그녀에 따르면 딱히 일을 하고 있는 것 같지는 않단다. 


그녀와 그, 이 두 사람은 한 쌍의 신혼부부처럼 정말로 잘 어울렸다. 그녀는 그동안 무수한 남성들과 만나고 헤어졌지만, 이제껏 사귀어 온 남성들과 비교하면 모처럼 연인다운 연인을 만난 셈이었다. 이후로는 내가 우연히 그녀를 만나게 되더라도 곁에는 항상 그가 함께 따라다녔다. 그러던 어느 날 그녀는 그와 멋진 스포츠카에 등승한 채 나의 집을 방문하는데... 


이 작품은 영화 버닝의 원작으로 알려진 무라카미 하루키의 단편 소설이다. 영화를 보고 난 뒤 오히려 이곳저곳에 의문 부호가 붙고, 잔상이 오랜 기간 내 머릿속에서 맴돌던 터라 원작은 도대체 무슨 내용이며 어떠한 분위기일지 내심 궁금했다. 책의 분량은 고작 30쪽가량밖에 되지 않아 금방 읽힌다. 영화는 소설의 내용 일부를 각색하고 살을 조금 더 보탠 듯싶다. 


영화 '버닝'


소설속 '나'는 31살 기혼자인 평범한 인물로 그려져 있다. 그녀 역시 현대를 살아가는 젊은 여성의 전형적인 인물이라고 볼 수 있다. 문제적 인물은 다름 아닌 그였다. 말쑥한 외모에 잘 빠진 스포츠카를 몰고 다니는 걸로 봐선 부유한 계층일 것으로 짐작케 하지만, 정작 무슨 일을 하는지는 알 수 없는 데다 딱히 일을 하는 것 같지도 않은 그였다. 온통 베일 속에 가려진, 의문의 인물이었다. 


특별히 일을 하지도 않으면서 굉장한 부자로 보여지는 그를 소설속 '나'는 마치 피츠제럴드의 '위대한 개츠비' 같다고 말한다. 개츠비는 꿈과 야망을 실현시키기 위해 불법적인 수단도 마다하지 않던 지극히 현실적인 인물로 그려져 있다. '헛간을 태우다'에서 '그'는 대마초를 피우며, 간간이 타인 소유의 헛간 태우는 일을 즐겨한다. 그런데 이 헛간 태우는 일이란 게 그 속내를 알고 보면 참으로 섬뜩하기 짝이 없다. 다른 한편으로는 그의 이 알 듯 모를 듯한 표현 하나로 인해 정작 가장 중요한 걸 놓친 채 자신의 집 주변을 샅샅이 헤집으며 허둥대던 나의 모습은 공허함 그 자체가 아닐 수 없다.


이 세상에는 헛간이 수도 없이 많으며, 그것들 모두가 자신에 의해 태워지기를 바라는 것 같다는 그의 표현으로부터는 물질적 욕망을 채우면 채울수록 정신은 되레 공허해지기 쉬운 현대인들의 나약한 경향성이 묻어나온다. 물질적으로는 더없이 풍요로우나 그로 인해 되레 결핍을 호소해야 하는, 무척 아이러니한 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인들이다. 상실감과 결핍을 느끼며 타인과 보이지 않는 벽을 쌓은 채 살아가는 청년들의 불안 심리를 그리는 것으로 유명한 일본의 대표 현대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다운 작품이다. 엄청나게 섬뜩한 소설을 써보고 싶다던 그의 바람도 일정 부분 이뤄졌다.



이번엔 화제작인 영화 '버닝'을 이야기해보자. 이창동 감독은 소설속 '나'를 전혀 다른 인물인 '종수'로 재탄생시켰다. 현재 청년들이 겪고 있는 미증유의 고통을 이 소설속 이야기 안에 녹여내기 위한 장치로 읽힌다. 덕분에 현실적인 고통이 일상으로 자리잡은 청년 종수와 해미가 그들과는 상반된 계층의 대표 인물인 벤과 인연을 맺고 불안과 분노를 드러내면서 우리 사회가 현재 안고 있는 모순 그리고 청년들이 안고 있을 법한 불안 심리 등을 묘사하고 있다. 


아울러 소설에서는 등장하지 않는, 여러 종류의 은유와 상징 그리고 비유, 이를테면 고양이, 서울타워, 종수 엄마, 우물, 비닐하우스, 리틀 헝거와 그레이트 헝거 등을 영화속 곳곳에 배치시켜놓음으로써 관객으로 하여금 저마다 다른 해석이 가능하게끔 열린 결말로 이야기를 마치고 있는 점도 매력적으로 다가오게 하는 요소다. 



저자  무라카미 하루키

역자  권남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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