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접 경험의 즐거움

실패를 거듭하라, 위험을 무릅쓰라 '내가 죽기 전에 가장 듣고 싶은 말'

새 날 2018. 5. 16. 19: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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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리엇 롤러(셜리 맥클레인)는 과거 광고회사를 직접 만들어 운영할 정도로 열혈 여성이었으나 은퇴 후 쓸쓸한 노년을 보내고 있던 참이다. 그녀는 완벽주의자였다. 무엇이든 자신의 기준으로 비춰볼 때 그에 미치지 못 할 경우 성에 차지 않아 하던 그녀였다. 덕분에 주변 사람들은 모두가 혀를 내두르던 터였다. 완벽주의적 성향은 타인에게는 자연스레 까칠한 성품으로 다가오기 십상이었으며, 이는 황혼에 접어든 그녀 주변에 아무도 남지 않은 결정적인 이유 가운데 하나로 작용한다.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신문 지면에 인쇄된 누군가의 부고 기사를 접하게 된 그녀, 자신이 사망할 경우 그와 관련한 기사는 과연 어떤 방식으로 쓰여지게 될지 너무도 궁금하던 터였다. 추진력만큼은 탁월했던 헤리엇, 과거 주요 거래처였던 신문사를 무작정 찾아가 부고 기사 전문 기자인 앤(아만다 사이프리드)에게 아직 사망하지도 않은 자신의 부고 기사를 작성해줄 것을 부탁한다. 



앤은 이러한 부탁이 어이없었던 데다가 영 탐탁지 않게 다가왔으나 신문사와 해리엇과의 무시할 수 없는 관계 그리고 편집장의 지시가 더해져 못 이기는 척 그녀의 부탁을 받아들이기로 작정한다. 하지만 그녀가 알려준 지인들을 일일이 찾아다니면서 해리엇이라는 인물의 됨됨이를 꼼꼼히 살펴보았더니 모두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 정도로 그녀의 평판은 형편 없었다. 심지어 가족과도 사이가 좋지 않아 연이 닿지 않을 정도였으니 이쯤 되면 칭찬은 고사하고 해리엇이 죽은 뒤 명복을 빌어줄 것인가의 여부조차도 의구심이 들지 않을 수 없었다. 



앤은 해리엇의 부고 기사를 다른 망자들의 그것처럼 어떡하든 그럴 듯하게 꾸며보려 노력하지만, 온통 좋지 않은 사연과 기록들로 인해 손 써볼 도리가 딱히 없었다. 해리엇은 철저히 사실에 기반하여 작성된 앤의 부고 기사가 영 마뜩지 않게 다가왔다. 멋진 형태를 원했던 해리엇은 결국 다른 이들의 그것처럼 쓰여질 수 있도록 얼마 남지 않은 그녀의 여생을 앤의 개인적인 도움을 받으며 바꿔나가기로 하는데... 



완벽한 부고 기사에 필요한 제반 조건들은 까칠하면서도 지나치게 자기주도적 성향의 해리엇에게는 받아들이기 쉽지 않은 과제로 다가온다. 일단 주변 사람들의 칭찬이 있어야 하며, 가족의 사랑을 듬뿍 받는 사람이어야 하고, 불특정 다수 혹은 누군가에게 우연히 영향을 끼치는 인물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여기에 다른 이들과의 차별화 포인트인 와일드 카드로 사용될 법한 것도 한 가지 정도는 있어야 한다. 


해리엇은 아동 보호소를 찾아 부모의 보살핌을 받지 못해 위험에 처한 흑인 아동들 가운데 여느 아이들과는 생각이 다른 데다 통통 튈 만큼 개성 넘치는 소녀 브렌다(앤쥴 리 딕슨)를 자신의 영향이 미치게 할 대상으로 낙점, 앤과 함께 부고 기사의 요건을 맞춰나가기 위한 여정에 돌입한다. 해리엇을 향한 앤의 시선은 삐딱함 그 자체다. 그도 그럴 것이 고집 세고 옹졸하며 무엇이든 자기 멋대로 하려는 노인네가 앤이 아닌 누구에겐들 흡족하게 다가올 리 만무했다. 



더구나 해리엇에 대한 주변 사람들의 평가는 최악이었다. 그저 일이었기에 어쩔 수 없이 그녀의 부탁을 들어주기는 했으나 하루빨리 이를 마무리 짓고 싶은 마음 굴뚝 같았다. 그러나 앤이 삶에 변화를 꾀하기로 작정한 해리엇을 근접하여 도우면서 직접 지켜본 결과, 과거 해리엇의 화려했던 삶이 결코 예사롭지 않은 종류의 것임을 직감하게 된다. 그녀의 이야기만 꺼내면 다수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는 상황이었으나, 그렇다고 하여 모든 사람이 그런 건 아니었다. 오히려 어떤 이들은 해리엇을 존경하는 인물로 꼽고 있었다. 이렇듯 차츰 다른 시각으로 바라보게 되는 그녀의 삶은 앤의 마음을 사로잡기 시작했다.



해리엇이 현업에서 활동할 당시는 여성의 신분으로서 사회 생활 자체만으로도 쉽지 않은 시절이었다. 때문에 해리엇은 누구보다, 특히 남성들에게 뒤처지지 않기 위해 피눈물 나는 노력을 거듭한 끝에 남성들도 어렵다는 성공한 사업가로 우뚝 설 수 있었다. 앤은 해리엇이라는 인물을 깊이 파헤칠수록 자신의 삶이 상대적으로 빈약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한 시대를 풍미하며 누구보다 통찰력 있는 멋진 삶을 누렸던 해리엇에 비하면 앤의 그것은 보잘 것 없었기 때문이다. 



부고 기사라는 독특한 소재를 통해 삶과 죽음, 도전과 실패, 그리고 꿈을 이야기하는 영화다. 해리엇이 우연히 영향을 미치려 했던 대상은 사실 브렌다였으나, 결과적으로는 계획적으로 접근한 대상이었던 까닭에 우연이라고 말할 수 없다. 오히려 앤이 해리엇의 삶에 깊숙이 다가감과 동시에 자신의 내면 속에서 소용돌이치는 뜨거운 열정을 깨닫게 하고, 삶에 긍정적인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었기에 정작 우연한 영향력의 대상은 앤의 몫이 되어야 할 것 같다. 


브렌다 역을 소화한 어린 소녀 앤쥴 리 딕슨의 배우로서의 끼와 역량은 대단한 것이었으며, 아만다 사이프리드는 여전히 사랑스러웠고, 셜리 맥클레인은 그녀의 출연만으로도 이번 작품에 묵직함을 더한다. 3대에 이르는 이들이 벌이는 좌충우돌 에피소드와 연기의 조화는 모든 세대에 공감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하다. 



감독  마크 펠링톤


* 이미지 출처 : 네이버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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