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편린들

제천 화재 참사, 초동 대처 논란 왜 불거졌나

새 날 2017. 12. 24. 1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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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천 스포츠센터 화재는 우리처럼 평범하기 이를 데 없는 사람들이 평소 자주 이용하던 공간에서 운동을 하거나 사우나를 즐기는 등 말 그대로 소소한 일상을 보내다가 급작스레 들이닥친 참사라 더욱 충격적이고 마음이 아프다. 언론을 통해 속속 전해지는 참사 희생자들의 사연 하나 하나에는 두 눈을 절로 적시게 할 만큼 한결 같이 가슴 저리고 먹먹한 이야기들로 가득하다. 


재난이란 늘 예고 없이 다가오는 법이다. 제천 화재는 이를 다시 한 번 입증시켰다. 한편 이번 참사는 곱씹을수록 인재에 가깝다는 생각이 들게 한다. 특정 요소 한 가지 때문이 아니다. 우연이라고 하기엔 석연찮은, 필연으로 다가오게 하는 다양한 요소들이 복합적으로 얽혀있다. 우선 아직 정확한 화재 원인이 밝혀지지는 않았으나 국립과학수사연구원 등 합동 감식팀은 화재의 유력한 원인으로 천장 관에 설치된 동파방지용 열선의 결함이나 파손 가능성을 제기하고 있다. 당시 얼음 제거 작업이 이뤄졌는데 화재가 이에 의해 발생했든 아니면 배관 열선의 자체 결함에 의해 발생했든 안정성이 확보되지 않은 것만큼은 분명해 보인다. 


스포츠센터의 외벽은 드라이비트 공법으로 지어졌다. 해당 공법은 불이 쉽게 옮겨 붙어 화재가 발생할 경우 걷잡을 수 없이 불길을 확산시키며 많은 양의 유독가스를 내뿜어 인명 피해의 위험을 더욱 높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지난 2015년 발생한 경기도 의정부 아파트 화재 당시에도 건물 1층 주차장에서 난 불이 드라이비트 소재의 외벽을 타고 순식간에 건물 전체로 번진 바 있다. 이번 화재와 판박이다. 1층에 주차 공간을 확보할 수 있도록 설계한 필로티 구조 역시 화재에는 취약하다. 



이번 화재의 영상을 직접 보니 최초 발화 시점부터 불길이 무섭게 확산되었고 검은 유독가스가 건물 전체를 삼키는 데까지는 불과 3분도 채 걸리지 않았다. 소방 당국이 아무리 출동을 빨리 했다 해도 이미 손을 쓰기 어려울 정도로 불길이 크게 번진 상황임을 의미한다. 언론보도에 따르면 소방관들은 화재 신고 후 7분만에 현장에 도착하였으며, 그나마도 주차된 차량들 때문에 건물 진입이 늦어졌다고 한다. 이렇듯 열악한 시민의식도 한 몫 거들고 나선 셈이다. 건물 주변에 주차된 차량으로 인해 소방도로의 확보가 여의치 않아 소방차의 진입이 늦어진 탓에 골든타임마저 놓친 것이다. 


건물 소유주와 관리 직원들의 건물 관리 및 재난 상황 대처 수준 또한 심각했다. 사고 건물은 화재가 발생했을 당시 화재탐지시설과 스프링쿨러조차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던 것으로 밝혀졌다. 게다가 3주 전 소방점검 당시 이러한 사안을 지적 받은 것으로 알려졌으며, 그 외에 추가로 밝혀진 소방안전은 심각할 정도의 수준이었다고 한다. 아울러 화재 당시 건물 소유주와 직원들은 손님들을 안전하게 대피시켜야 할 의무가 있음에도 다수는 그냥 빠져나왔던 것으로 전해진다. 안전불감증에 무책임함까지 더해진 상황이다. 이는 2층 여탕과 3층 남탕에서 발생한 사상자의 숫자가 극과 극이었다는 사실을 통해서도 입증된다. 건물을 불법 개조한 사실도 드러났다. 이렇듯 다양한 결과물들을 종합해볼 때 해당 건물은 애시당초 화재 발생에 취약한 상태였으며, 안전관리 또한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결국 예고된 참사였던 셈이다.


소방 당국의 초동 대응 논란도 불거졌다. 왜 창문을 깨는 등 적극적인 구조 활동을 벌이지 않았냐는 게 논란의 핵심이다. 너무도 황망하게 숨져간 피해자들을 생각하면 이들의 울분은 십분 이해되고도 남는다. 어떡하든 귀한 생명들을 살렸어야 하는데 무언가 적극적인 움직임이 없는 듯싶어 야속하기 이를 데 없었을 테다. 소방 당국이 이에 대해 적극적으로 해명에 나섰음에도 유가족들의 항의는 수그러들 줄을 모른다. 일부 언론과 야당 역시 이러한 사실을 부각시키기에 여념이 없다. 


일부 언론은 제천 참사를 정부의 실정으로 몰아가기 위해 혈안이 돼 있다


그러나 소방관들은 화재 당시 어느 누구보다 자신의 직분에 최선을 다했다. 만에 하나 그들에게 부족함이 엿보인다면, 정치권의 비협조적인 자세로 인해 소방관에 대한 열악한 처우 개선이 여전히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사실 때문일 테다. 아울러 이번 참사를 어떡하든 현 정부의 실정으로 엮어 흔들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겠지만, 앞서도 살펴봤듯 제천 화재가 참사로 이어지게 된 결정적인 빌미는 이명박 정부 시절로 거슬러올라간다. 


ⓒ연합뉴스


지난 2009년 도입된 도시형 생활주택은 서민주거 안정을 위한다는 명분으로 주차공간 확보 면적, 건물 간 이격 거리, 용적률 등 각종 규제를 대폭 완화한 형태의 건축물이다. 이후 전국 각지에는 필로티 구조로 된 비슷한 형태의 다가구주택이 우후죽순 생겨났다. 더불어 건축업자들은 완화된 규제를 틈 타 가격이 조금 더 저렴한 드라이비트 공법을 이에 적용시키기 시작했다. 화재가 발생한 제천 스포츠센터 역시 이와 동일한 구조 및 형태였다. 그렇다면 이번 참사의 빌미는 현 정부가 아닌 바로 이명박 정부가 제공한 셈이 된다. 그래서 그런 걸까? 야당과 일부 언론이 유독 소방관의 초동 대응 논란을 부각시키면서 이에 대해 물고 늘어지는 이유 말이다.



그동안 크고 작은 숱한 재난과 참사를 겪어오면서 이에 대처하는 방식도 발전을 거듭해왔다. 자연스레 시민들의 눈높이도 한 단계 높아졌다. 때문에 초동 대처가 어떤 방식으로 이뤄져야 한다거나 골든타임이 어떻다는 둥 사고 대처에 대한 기대치도 그에 걸맞게 부쩍 커졌다. 하지만 정부의 재난 대응에 바라는 수준만큼 시민들의 안전에 대한 의식 역시 제고되어야 하나 여전히 제자리 걸음임이 분명하다. 덕분에 재난 대응에 대한 눈높이와 안전불감증 사이의 간극은 되레 더 벌어진 느낌이다. 소방 당국의 초기 대응과 관련하여 논란이 불거지고 이를 자꾸만 확대재생산하고 있는 건 특정 이득을 노린 일부 야당과 언론의 구습으로 짐작되며, 시민들의 재난에 대한 높아진 눈높이와 그에 반해 여전한 안전불감증 사이에 깊이 패인 골 역시 그에 한 몫 단단히 거드는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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