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편린들

'워라밸족' '욜로족' 그들의 삶을 응원한다

새 날 2017. 12. 20. 2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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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과 여가는 서로 반대되는 개념이다. 양립할 수가 없다. 즉, 수입을 얻기 위해 노동을 택하는 경우 정확히 그만큼 여가 시간은 줄어들기 마련이다. 그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이렇듯 노동과 여가의 상충관계는 노동으로 벌어들이는 수입과 여가를 통해 얻는 휴식, 즉 하나를 선택하게 되면 반드시 다른 하나를 포기해야 하는 기회비용에 의해 성립된다. 그렇지만 이는 언제까지나 이론에 불과할 뿐, 현실에서는 대부분의 노동자들이 자신의 노동시간을 마음대로 조절할 수가 없다. 왜냐하면 회사 나름의 사정이 있을 테고, 아울러 고용의 안정성 등 구조적인 측면이나 외부적인 요인도 무시할 수가 없는 탓이다. 


이로 인해 직장인들은 오늘도 정해진 노동시간을 살아가야 한다. 아니 정확히 말해 정해진 만큼의 노동시간을 일할 수 있다면 그나마 다행이다. 그 이상을 해야 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우리 사회를 일컬어 이른바 ‘피로사회’라 한다. 주당 노동시간이 OECD 가운데 두 번째로 길다. 취업포탈 잡코리아가 직장인을 대상으로 노동시간과 관련한 설문조사를 했는데, 이에 따르면 직장인들의 주당 실제 근로시간은 평균 53.2시간이었으며, 10명 중 8명가량이 주 1회 이상 야근을 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5회 이상도 12.7%나 됐다. 10명 가운데 한 명은 주말에도 근무를 한다. 


ⓒ익스피디아


이러한 암담한 현실은 직장인들에게 그나마 재충전의 기회를 제공해주는 유일한 도구 가운데 하나인 휴가에도 고스란히 영향을 미친다. 전 세계 가운데 우리나라 직장인들의 휴가 사용에 대한 불만족도가 가장 높다는 조사 결과가 발표됐다. 온라인 여행사 익스피디아가 전 세계 주요 30개 국을 대상으로 조사한 '익스피디아 유급휴가 사용 실태' 결과에 따르면 한국인 응답자의 82%가 "휴가 사용환경에 불만족한다"고 답했다. 


그중에서도 가장 눈에 띄는 대목은 휴가 자체가 불편하게 와닿는 직장인들의 비율이 높다는 대목이다. 한국인은 자신의 상사 또는 동료에게 부정적인 이미지를 줄까 봐 주어진 휴가를 전부 사용하는 것을 두려워했다. 심지어 휴가 사용 시 죄책감을 느끼는 이들도 무려 61%에 달했다. 29%인 세계 평균에 비하면 월등히 높다. 직장인들의 당연한 권리 행사 가운데 하나인 휴가마저도 눈치를 봐야 하는 안타까운 현실이다. 


더구나 우리나라 직장인들의 다수는 휴가 중에 두고 온 일을 생각하면 너무나 불편하여 몸둘 바를 몰라해 한다. 아울러 휴가 중에도 일을 처리해야 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이를 통해 휴식을 취해도 도무지 쉰 것 같지 않다고 호소하기 일쑤다. 이렇듯 휴가조차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는 판국이니 직장인들이 여가의 태부족으로 취미 등의 활동을 하지 못하는 이른바 '타임 푸어' 현상에 허덕이는 모습은 어쩌면 지극히 당연한 결과물일지도 모른다. 



앞서의 통계와 마찬가지로 잡코리아가 지난해 직장인들을 대상으로 경제 상황 때문에 포기한 항목에 대한 설문조사를 벌인 바 있는데, 이에 따르면 '취미와 여가생활(55.4%)'을 으뜸으로 꼽았다. 그 다음으로는 '저축(38.8%)'과 '인간관계(36.8%)', '결혼(33%)', '노후준비(31.2%)', '내 집 마련(30.4%)' 등을 꼽고 있었다. 지금 이 시각에도 열악한 환경 속에서 취업을 위해 모든 열정을 쏟아붓고 있을 취업준비생들에게는 회사에 적을 두고 있는 직장인들이 막연한 부러움의 대상으로 다가올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그 어렵다는 취업 관문을 무사히 통과하더라도 이렇듯 그들 앞에는 더욱 더 큰 난관이 놓여 있는 까닭에 취준생들이 흔히 생각하는 것과 같은 행복과는 거리감이 있어 보인다. 세계 최장에 가까운 긴 노동시간은 직장인들이 재충전해야 할 여가 시간마저 열심히 갉아먹고 있는 와중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현실은 우리 국민들이 생각하고 느끼는 생애주기별 여가와 관련한 불만 이유에서도 여실히 드러난다. 



통계청이 최근 발표한 '한국의 사회동향 2017'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 국민들은 젊을수록 여가를 즐기기 위한 시간이 부족하다고 느끼는 반면, 나이가 많을수록 경제적인 부담 때문에 여가를 즐길 수 없다고 답했다. 즉, 청년 세대는 수입을 위해 열심히 경제활동에 참여해야 하는 시기이기에 상대적으로 여가 시간이 부족하다고 느끼며, 반대로 중년을 거쳐 노년기로 접어들게 되면 여가 시간은 유의미할 정도로 늘어나나 이제는 반대로 경제적인 부담 때문에 여가를 즐길 수 없게 된다는 것이다. 이렇듯 대한민국 사회에서 우리의 삶은 알고 보면 참으로 보잘 것 없다.


현재 정부는 주당 최대 근로시간을 현행 68시간에서 52시간으로 단축시키는 ‘근로시간단축법’을 추진 중이다. 그러나 직장인들의 다수는 해당 법이 통과되더라도 자신의 근로시간이 실제로 줄어들지 않을 것이라 생각하고 있다. 그 때문인지 지금처럼 갑갑하기 이를 데 없는 삶의 방식에 반기를 들고, 스스로 변화를 꾀하려는 사람들이 점차 늘고 있다. 일과 삶 사이에서 균형을 찾고자 하는 '워라밸족', 자신을 위한 가치 소비에 돈을 아끼지 않는 '욜로족' 등이 대표적인 사례다. 



그동안 우리가 흔히 생각해온, 젊었을 때 열심히 벌어 노후를 편안히 보내고자 하는, 즉 미래의 삶을 위해 현재의 그것을 과감히 희생시켜온 형태의 삶은 결코 옳은 방식이 아닐 수도 있음을 비로소 깨닫기 시작한 것이다. 이들은 결코 보장 받을 수 없는 미래 가치에 하나밖에 없는 자신의 삶과 시간이 오롯이 저당 잡히는 우를 범하지 않는다. 때문에 현재의 삶에 최선을 다함과 동시에 오로지 가치 있는 일과 시간에만 투자하면서 만족을 추구하는 삶을 살 뿐이다. 형식적이며 피곤한 인간관계는 최대한 지양하고, 자기 안에서 스스로를 통해 만족감을 누리려 노력한다. 


여건이 어떠하든 주어진 환경에 안주하거나 결코 포기하는 일이 없고, 보다 긍정적이며 유연한 태도로 삶의 방식을 주도적으로 변화시키려는 이들의 열망이 앞으로 우리 사회를 보다 좋은 방향으로 변모시킬 것이라 감히 확신한다. 내가 그들을 응원하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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