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편린들

혐오 현상 부추기는 1인 인터넷방송

새 날 2017. 8. 13. 1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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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 상에서 1인 방송을 진행하던 남성 BJ가 한 여성 BJ를 살해하겠다며 직접 찾아다니는 모습을 생방송으로 진행한 이른바 'BJ 살해 협박' 사건은 우리 사회에 충격을 던져준다. 아프리카TV 등 1인 인터넷방송은 이를 시청하는 네티즌들로부터 ‘별풍선’을 받거나 광고를 게재한 부분에 대해 그만큼을 BJ에게 현금으로 돌려주는 시스템이다. 그동안 자극적이고 선정적인 장면이나 설정을 경쟁적으로 보여준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던 건 모두 이 때문이다. 


실제로 일부 BJ들의 성적 일탈이나 패륜, 공공장소에서의 온갖 민폐 행위가 이들 1인 방송을 통해 특별한 여과 장치 없이 대중들에게 고스란히 노출돼왔으며, 심지어 이들 방송으로부터 여성이 혼자 왁싱숍을 운영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 뒤 손님으로 가장, 해당 주인을 찾아가 살해하는 엽기적인 사건의 매개 역할을 이들 1인 인터넷방송이 제공하기도 하였다. 


ⓒSBS


하지만 이번 사건은 우리가 앞서 봐왔던, 많은 시청자와 별풍선을 끌어모으려는 BJ들의 단순한 경쟁 심리에서 비롯됐다기 보다 현재 사회 기저로부터 발현되고 있는 갖가지 다양한 사회적 현상들과 자극적인 설정을 통해 대중들의 관심을 유발하기 위해 애를 쓰고 있는 BJ들의 경쟁 행태가 한데 얽혀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발생한 것으로 읽힌다. 


우리 사회의 치열한 경쟁 시스템 속에서 이를 버티지 못하고 주류에서 밀려난 남성들이 그들끼리 온라인 구석진 곳에 모여 스스로 비교적 만만한 대상이라고 여겨온 여성을 상대로 시시덕거리며 혐오 행위를 일삼아오던 행태가 사회 곳곳에 만연하면서 심각한 사회 문제로까지 불거졌던 여성 혐오 현상은 어느덧 일방적으로 피해를 호소하던 여성들이 조직적으로 대응에 나섬과 동시에 미러링 등의 방식으로 맞불을 놓으면서 본격 여혐 남혐이라는 첨예한 대립 구도로 전선을 형성하고 있는 모양새다. 


이번에 남성 BJ로부터 살해 협박을 당한 BJ는 게임 방송을 진행하면서 남성을 비하하거나 성희롱했던 것으로 알려지면서 이른바 '남혐 BJ'로 불리는 여성이다. 그녀는 게임 속에서 남성 이용자들이 여성 이용자에게 퍼붓는 성희롱과 비하 발언에 대해 단순히 미러링을 하는 것이라고 밝히고 있지만, 이미 남혐 BJ로 낙인이 찍힌 뒤라 수많은 남성들로부터 공격을 받아왔으며, 급기야 살해 협박이라는 극단에까지 이르고 말았다.



처음에는 장난 반 재미 반으로 시작됐을 법한 여성 등 약자를 향한 혐오 행위는 이렇듯 가상 공간을 벗어나 어느덧 현실에서 실제로 영위하는 우리의 삶 곁으로 깊숙이 침투해 들어오며 심각하게 위협하는 수준에까지 이르렀다. 이는 예견된 수순이다. 우리가 여혐 남혐은 물론, 사회 모든 영역에서 빚어지고 있는 온갖 혐오 현상, 특히 사회적 약자를 향한 혐오 현상에 대해 우려를 표하며 이의 자제를 호소했던 이유도 바로 이 때문이다. 


한편, 살해 협박 생방송을 끝낸 남성 BJ는 경찰에 연행되어 불안감을 조성한 혐의로 범칙금 5만 원을 부과받은 뒤 풀려났다고 한다. 이에 대해 살해하겠다며 그 대상을 직접 찾아다니기까지 한 사람에게 단순히 경범죄법을 적용, 범칙금만을 물리게 한 사실에 대해 일각에서 솜방망이 처벌이 아니냐는 비판이 흘러나오고 있다. 또 다른 갈등의 불씨를 남겨놓은 셈이다.


인터넷방송은 방송법이 아닌, 정보통신망법과 전기통신사업법의 적용을 받는 인터넷서비스로 구분된다. 이에 따라 대부분의 규제는 사업자들의 자체적인 모니터링에 기반한 자율규제로 이뤄진다. 그러나 이러한 자율규제의 효과는 거의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언론보도에 따르면 가장 큰 제재가 자사 플랫폼에서 방송을 할 수 없도록 계정을 정지시키는 일뿐이란다. 이는 곧 다른 플랫폼으로 얼마든 옮겨갈 수 있다는 의미가 된다. 아울러 BJ가 자극적이거나 선정적인 형태의 방송으로 벌어들인 수익을 몰수하거나 추후 민형사상 책임을 묻는 경우 또한 거의 없다고 한다.



이의 심각성을 인지한 정치권은 사업자가 음란 또는 폭력 등 불법방송을 삭제하지 않거나 유통을 차단하지 않을 경우 과태료를 부과할 수 있도록 하는 정보통신망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발의하고 나섰다. 그러나 해당 법이 통과되어 시행된다고 해도 사전에 유해 방송을 걸러낼 방도는 딱히 없다. 한계가 뚜렷하다. 방송 내용이 자극적이며 선정적이라는 입증이 밝혀진 뒤에야 비로소 사후 조치가 취해지기 때문이다. 방송이 이미 나가고 그로 인한 피해가 일파만파 확산된 뒤에야 이뤄지는 사후약방문보다 사전에 예방할 수 있는 강력한 조치가 절실해 보이는 대목이다. 


여혐 남혐은 그 대결 구도가 구체적으로 모습을 드러낸 이래 갈등 현상이 더욱 고조되고 있는 양상이다. BJ들 사이에서도 남녀 서로가 편을 갈라 상대방을 혐오하며 헐뜯을 정도로 해당 현상은 어느덧 일상이 돼버렸다. 더욱이 문제가 되고 있는 건 고삐 풀린 1인 인터넷방송 플랫폼이 이러한 현상을 부추기는 매개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문제점들이 이 새로운 미디어의 출현에 대한 법적 제도적 틀이 온전히 갖춰지지 못하는 등 대응이 미비한 틈을 이용하여 자극과 선정성 그리고 일탈로 점철된 개인 인터넷방송이라는 플랫폼과 맞물리면서 흡사 날개라도 단 양 활개를 치고 있는 것이다. 1인 인터넷방송에 대한 보다 강력하고 뚜렷한 대책이 요구되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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