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편린들

언론은 마른 몸매 강박증을 부추기지 말라

새 날 2017. 9. 8. 1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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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모 특성화고 3년생이 입사 지원을 위해 이력서와 자기소개서를 작성하면서 심각하게 고민하는 모습을 우연히 접했다. 무슨 연유일까 하고 유심히 살펴보니 이력서를 한창 작성하던 도중 신장과 체중을 입력하는 칸에서 더 이상 진도를 나가지 못한 채 멈춰 있었던 것이다. 입사 지원 마감 시한이 촉박했기에 서둘러야 할 상황이었건만 안타깝게도 그 아이의 고민은 더욱 깊어지는 듯싶었다. 다름아니라 신장이 167cm인데, 실제 체중이 60kg에 달한다며 이를 줄여야 할지 아니면 그냥 두어야 할지를 놓고 고심하던 참이었다.  


차별이라는 인식이 자리를 잡으면서 근래엔 좀처럼 보기 힘들어졌지만, 예전의 오래된 서식을 그대로 활용하는 일부 기업이나 특성화고교 등 직업계교의 학교 자체 이력서 서식에는 여전히 신장과 체중을 묻는 칸이 존재한다. 이러한 현상을 바라보는 외국인들의 시선은 경악 그 자체다. 블룸버그는 한국에서 구직자에게 체중을 물어보는 것이 정상이라는 사실에 주목하면서 구직자의 직무 능력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정보를 공공연히 요구하는 우리의 관행을 꼬집고 나섰다.



차별을 야기하는 이러한 현상은 그 밖에 또 다른 문제점도 양산한다. 지난 해 언론보도에 따르면 정상 체중인 한국 여성 10명 중 4명이 자신을 비만이라고 생각하는 등 여성들 사이에서 ‘마른 몸매 강박증’이 심화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홀쭉한 몸매를 강조하는 미디어의 영향은 대중으로 하여금 마른 체형에 대한 선호 현상을 가중시키고 있었다. 사회적 공기로서의 막중한 책무를 짊어져야 할 언론 또한 이러한 현상을 부추기는 데 일조하고 있었다.



최근 한 언론사가 아이돌그룹 '원더걸스'의 멤버인 '선미'의 KBS 뮤직뱅크 프로그램 녹화장 출근 모습을 보도한 기사는 그의 대표적인 사례다. 해당 기사에는 "선미 '몸무게 43kg 위엄'"이라는 제목과 함께 꽉 끼는 청바지 핏에 라이더 재킷을 입은 채 밝게 웃고 있는 선미의 모습이 포착돼 있다. 모르긴 몰라도 기자가 그녀의 늘씬하면서도 잘 빠진 몸매의 비결이 43kg에 불과한, 깃털처럼 가벼운 체중 때문이라는 사실을 '위엄'이라는 표현을 통해 애써 강조하고 싶었던 모양이다.


포털에서 선미의 인물정보를 검색해보니 실제로 신장 166cm, 체중 43kg이었다. 그렇다면 '위엄'이라는 표현까지 써가며 기자가 극찬한 그녀의 신장 및 체중의 비율과 관련한 신체 조건은 과연 어떤 범주에 속할까? 그래서 질병관리본부에서 제공하는 '비만도 계산기'에 해당 데이터를 넣고 직접 돌려 보았다. 짐작했던 대로 그녀의 신체질량지수(BMI)는 정상체중인 18.5-23을 하회하는 15.6으로, 저체중에 해당됐다. 



직무와 전혀 관련이 없음에도 구직 서류를 통해 구직자의 체중을 묻는 관행이 여전히 사라지지 않고 있고, 미디어는 온통 깡마른 몸매만을 찬양하거나 노래하고 있으며, 언론은 이러한 현상에 대해 경각심을 갖게 하고 바로잡으려는 노력보다는 오히려 더욱 부추기고 있었다. 현실이 이러하기에 건강한 정상 체중의 사람들도 자신을 스스로 비만이라 인식하고 다이어트에 빠져드는 것이었다. 그러다 보니 한창 성장하는 어린 아이들마저 미에 대해 왜곡된 시선을 갖기 일쑤이다.



해외에서는 잘못된 체형 인식에 대한 위험성을 자각하고 이를 바꿔나가려는 노력들이 줄을 잇고 있다. 프랑스에서는 거식증에 걸린 한 모델이 숨진 뒤 '깡마른 몸매 퇴출법'이 시행되고 있고, 2017 미스 영국 대회 우승자인 '조이 스메일'은 정상 체형인 자신에게 살을 빼라는 주최 측의 조언에 반발하면서 왕관을 반납하는 일도 있었다. 


우리 역시 미에 대한 잘못된 인식이 이미 우려할 만한 수준에 이른 것으로 판단된다. 온갖 종류의 성형과 다이어트 사업이 우후죽순 성행하고 있는 이면엔 이렇듯 미에 대한 뒤틀린 인식이 굳건히 자리하고 있다. 언론은 이를 바로잡아야 할 사회적 공기 가운데 하나다. 각종 미디어가 심어놓은 미에 대한 왜곡된 인식에 대해 위험성을 널리 알리고, 경각심을 갖도록 도와야 할 사회적 책무가 바로 그들에게 있는 것이다. 언론은 마른 몸매 강박증을 부추기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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