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편린들

우려스러운 혐오의 대중화 그리고 일상화

새 날 2017. 7. 22. 16: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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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속 대중들의 특정 계층을 향한 혐오 현상이 도를 넘고 있다. '일베'라는 극우 코스프레 커뮤니티가 등장한 이래 '일베충'처럼 단어 말미에 벌레 '충'자를 넣거나 여러 개의 단어를 조합하여 혐오감을 표시하는 사례가 갈수록 늘고 있는 것이다. 최근엔 그 정도가 더욱 심각해지고 있다. 초기에는 '일베'나 '이글루스' 같은 특정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이러한 혐오 현상이 횡행하였으나 지금은 인터넷 커뮤니티와 SNS 등 모든 매체에서 어느덧 일상으로 자리잡았다. 


오로지 자기 자식만을 위해 민폐 행위를 서슴지 않던 엄마를 일컬어 '맘충'으로 부른다거나, 여성을 혐오하는 의미의 '김치녀' '된장녀' 그리고 남성을 혐오하는 대표적인 표현인 '한남충' 등은 이미 고전에 속할 만큼 최근의 혐오적 표현 양식은 일찌감치 춘추전국시대로 접어든 느낌이다. 근래엔 일상에서 흔히 벌어지는 민폐 행위를 두고 네편 내편 가르기 용도와 같은 극히 소소한(?) 목적으로 혐오적인 표현이 흔히 사용되곤 한다. 게다가 막말로 관심을 끌려는 사회 분위기는 이러한 현상을 더욱 부추기고 있는 입장이다.


이를테면 흡연하는 행위로 인해 주변사람들을 불편하게 하는 사람을 싸잡아 '흡연충'이라고 한다거나, 일부 몰지각한 애견인들을 향해 '애견충'이라는 애칭(?)을 갖다붙이는 경우가 그의 사례다. 틀니의 딱딱 거리는 소리를 흉내내어 어르신들을 비하한 '틀딱충', 부모나 선생님의 말을 듣지 않고 심지어 대들거나 온갖 악행을 일삼는 중고생을 비하한 '급식충' 등도 흔히 쓰인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김여사'나 '맘충' 등의 표현을 두고 심각한 여성 혐오 현상이라며 사회 전반에 경각심을 강하게 일깨운 바 있지만, 근래엔 단순히 여혐 남혐 현상을 떠나 혐오 공격 자체가 모든 계층에서 매우 폭넓게 이뤄지고 있다. 도로 위에서 안전을 무시하고 도로교통법을 위반해 가며 천방지축 자전거를 타는 이들을 일컬어 흔히들 '자라니'라는 표현이 사용되곤 한다. 그런데 정작 '자라니'가 자전거를 타는 사람 모두를 통칭하는 표현으로 수렴해가고 있다는 사실에 대해선 대부분이 애써 모른 척하는 눈치다. 이쯤되면 혐오의 대중화 시대라 부를 법하다. 


ⓒ한국일보


오늘자 한국일보 기사인 "[소년 여혐]초등 교실에서 싹트는 ‘여성혐오’"의 내용을 우연히 보니 여성 혐오 현상이 초등학생에게까지 광범위하게 확산되고 있다며 우려를 나타내고 있었다. 물론 무척 염려할 만한 사안임은 분명하다. 어른들로부터 시작된 특정 집단을 향한 혐오 현상이 어느덧 아이들에게까지 고스란히 전가되고 있으니 말이다. 지금은 어른들의 표현을 쉽게 흉내내면서 아이들이 아무런 의식 없이 뒤틀린 성적 표현을 남발하거나 여성을 대상으로 삼아 공격하는 일들을 벌이고 있으나, 성장과 동시에 그러한 경험들이 아이들의 성 정체성과 가치관 정립에 왜곡을 가해 그릇된 형태로 자리잡게 할 공산이 아주 크다. 


대부분의 민폐는 이를 유발한 자가 의도적으로 벌인 행위라기보다는 타인을 배려하지 않는, 눈치 없는 행동에서 촉발되는 경우가 더 많을 듯싶다. 즉, 자신들의 행위로 인해 타인들에게 피해를 끼치게 된다는 사실을 인지하게 된다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작금의 행위를 당장 멈추지 않을까 싶다. 이런 그들을 향해 'XX충' 하며 상대방을 경멸하는 듯한 표현 행위를 가하는 건 애초 여성 혐오의 기저에 깔려 있는, 만만한 상대를 대상으로 삼아 자신의 존재를 확인하고 드러내려는 행위와 일견 비슷한 속내가 담겨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이러한 현상은 부메랑이 되어 결국 자신의 목을 겨눌 확률이 아주 높다. 앞서도 언급했듯 일부 자전거 민폐족을 '자라니'라며 비아냥거리고 있지만, 어느새 이는 모든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을 통칭하는, 일종의 보통명사와 같은 쓰임새가 돼버렸으니 말이다. '자라니' 하며 아무 생각 없이 자전거를 타는 이들을 혐오하거나 얕잡아 부르던 현상이 어이없게도 자전거를 타는 자신에게까지 고스란히 되돌아온 격이다.



'일베'의 태동으로부터 본격 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여성 혐오 현상은 치열한 경쟁사회에서 자신보다 뛰어난 능력을 보유한 이성에 의해 좌절을 겪게 되면서 수컷들 사이에서 인정받고 싶은 욕구에 시달리던 일부 남성들이 상대적으로 만만한 여성을 대상으로 삼아 극단적인 혐오적 표현을 일삼는 등 공격을 퍼부으며 시작된 경향이 크다. 여혐 공격이 멈추지 않자 얼마 전부터는 일부 여성들마저 여혐 공격을 미러링하는 형태로 남성 혐오 공격에 나서는 등 여혐 남혐 공방이 불을 뿜고 있다. 물론 이는 현재진행형이다.


이도 모자라 우리는 모든 영역에서 마음에 들지 않는 계층이나 상대방을 향해 막말을 겸비한 혐오 공격을 퍼붓는 행위가 일종의 습관처럼 돼버렸다. 말 그대로 혐오의 일상화다. 특정 계층을 혐오하고 차별화하려는 현상은 어느덧 약자에 대한 혐오를 넘어 모든 연령, 성별, 계층을 아우르며 광범위하게 빚어지고 있다. 결국 자신만 아니면 상관없다는 식의 무차별적인 혐오와 차별은 특정 계층에 대한 혐오 이미지를 덧씌워 대중으로 하여금 편견적 시각을 갖게 하기 십상이다. 


언론을 통해 기사화될 만큼 초등학생들의 여혐 공격은 우려스럽기 짝이없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는 일찌감치 예견됐던 현상이기도 하다. 어른들의 그릇된 욕망에서 비롯된 표현이 아이들에게까지 고스란히 투영되고 있기 때문이다. 아이들의 현재 모습은 가까운 우리의 미래 모습 아닐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상에서, 혹은 인터넷 커뮤니티 등의 매체를 통해, 'XX충' 하며 계속해서 누군가에게 막말을 퍼붓고 혐오하고 싶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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