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곳에서의 날선 설렘

서촌 나들이, 새해엔 꽃길만 걸어요

새 날 2017. 1. 17. 1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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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촌’은 경복궁 서쪽에 있는 마을을 일컫는다. 보다 정확하게 표현하자면 인왕산 동쪽과 경복궁 서쪽 사이, 그러니까 청운동 효자동 및 사직동 일대를 의미한다. 이곳은 대중교통을 이용하여 무수히 지나다녔던 곳이지만, 그동안 왠지 발길이 잘 닿지 않는 장소였다. 


뚜렷한 목적 없이 무작정 길을 나섰던 건 새해가 시작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다. 경복궁역에서 하차 후 3번 출구로 향했다. 조금 걷다 보면 우측에 서촌마을이 나타나는데, 몇몇 잘 알려진 미술관이나 작은 공방 같은 특이한 곳들이 즐비하다. 드문드문 한옥들도 보인다. 세월의 흔적이 남은 까닭인지 골목길은 어딘가 모르게 정겹다. 



저 앞엔 인왕산 자락이 보이고, 거리와 차도가 한산해서 그런지, 아니면 이 계절이 건네는 특유의 스산함 때문인지, 이름 모를 시골의 한 낯선 공간에 와 있는 느낌이다.



서촌 하면 빼놓을 수 없는 곳이 바로 통인시장이다. 이곳만의 먹거리 투어는 나름 유명하다.



인기 점포들은 일찌감치 줄이 길게 늘어서 있었고, 덕분에 이곳의 명물을 맛보려면 시간 투자는 기본인 데다가, 긴 기다림이라는 인내심도 요구된다.



이곳이 유명세를 타고 있는 건 전통 있는 오래된 점포들과 미식가들의 입맛을 사로잡는 독특한 맛 때문이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재미있는 지불 체계와 구입 방식 때문이기도 하다. 다수의 시장 내 점포들이 이른바 '엽전'이라는 이곳만의 지불 시스템에 가입되어 있어 구매자가 사전에 이를 구입, 각 점포를 돌아다니며 자신이 먹고 싶은 음식을 골라 담고, 그의 대가를 엽전 형태로 지급할 수 있는 체계다. 시장 중앙 2층엔 '엽전카페'라는 공간도 별도로 마련되어 있어, 구매자들이 엽전으로 구입한 음식을 편하게 앉아 먹을 수 있도록 꾸며놓았다. 이 특이한 시스템은 젊은 계층에게 폭발적인 인기몰이 중이다. 물론 외국인 관광객들에게도 인기 만점이다.



우린 엽전이 아닌 현금으로 몇몇 음식을 구입했다. 덕분에 포장이 이미지처럼 점포에서 준 그대로이지만, 엽전을 이용할 경우 별도의 1회용 도시락 용기를 이용하게 된다. 시장 곳곳에선 이 도시락을 들고 왔다갔다 하는 젊은이들의 진풍경을 볼 수 있다. 우린 기름떡볶이와 치즈가 들어간 닭꼬치를 주문했는데, 닭꼬치는 정말 입에서 살살 녹는 바람에 레시피가 몹시 궁금한 상황이었고, 떡볶이는 뒷맛이 무척 고소했다.



통인시장을 빠져나와 다시 경복궁역 방향으로 향할 즈음 잠시 휴식을 취하기 위해 우린 도보 난간 위에 걸터 앉는다. 그때 내 눈에 문득 들어온 한 커피점.. 전면에는 이러한 문구가 쓰여 있었다. 


"새해에는 꽃길만 걸어요!"



그런데 글귀만 이쁜 게 아니었다. 점포 오른쪽엔 반려견을 묶어놓는 공간이 별도로 마련되어 있었다. 



뿐만 아니었다. 입구를 자세히 살펴보니 장애인을 배려한 흔적이 엿보인다. 아니나 다를까. 왼쪽에 장애인 표식이 부착되어 있었다. 보다 많은 계층을 배려한 점포 주인의 마음 씀씀이가 무척 곱게 다가온다.



조금 더 내려가다 보니 세종대왕 탄생지를 알리는 표지석이 보인다.





서촌은 북촌과는 그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 여기저기를 덧댄 채 세월의 흔적을 고스란히 남긴 곳도 많았지만, 현대적 감각을 물씬 풍기는 가게들도 제법 흔하다.



골목길로 조금 깊숙이 진입하게 되면 만날 수 있는, '날개'로 유명한 시인이자 소설가 이상의 집



'이상의 집' 안쪽에서 보이는 골목길 풍경



원래는 한옥이었으나 지붕만 보존한 채 안쪽은 세련된 현대적 감각의 인테리어로 개보수되어 있었다. '이상의 집'을 형상화한 조형물이 지붕 위로 솟구쳐 있는 모습이 이채롭다.



서촌 골목길, 그러니까 경복궁역 2번 출구를 벗어나자마자 만나게 되는 첫번째 골목길은 이른바 '세종마을 음식문화거리'로 불린다. 골목길 안쪽으로는 정말 다양한 종류의 음식점과 술집들이 즐비하다. 이 골목길은 생각보다 꽤 깊다.



밤 시간대, 특히 요즘처럼 촛불집회가 열리는 주말이면 이곳은 정말 불야성을 이룬다. 세상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고 가고,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도시민들의 애환이 숨쉬는 곳이기도 하다.


ⓒKBS


얼마나 되었을까. 아마도 지지난주말 아니었나 싶다. 친구들과 나 역시 이곳에서 서로 막걸리잔을 부딪히며 과거를 회상하고 또한 미래를 축복했다.



해가 저물어가는 다소 쌀쌀한 기온이었지만 서울 도심을 지나는 사람들은 여전했고, 모두들 바쁜 걸음이었다.



골목과 골목이 이어진 서촌 마을은 북촌만큼 친절하지는 않은 것 같다. 이곳을 안내하는 곳도 딱히 만날 수 없다. 경복궁 등 고궁이 관광지로 인기를 끌기 시작하면서 서촌 역시 유명세를 치르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러니까 아기자기한 예쁜 외양의 가게들도 이 즈음부터 생겨난 셈이다. 옛 정서와 멋스러움이 공존하는 서촌은 외려 그래서 매력적이다. 


새해엔 모든 사람들이 꽃길만 걸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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