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곳에서의 날선 설렘

청년 윤동주의 흔적이 깃든 부암동을 거닐다

새 날 2016. 3. 13. 15: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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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씨는 온종일 우중충했다. 오후부터 기온이 높아진다는 예보가 있었다. 그러나 바람이 도와주지 않는다. 여전히 차가웠다. 겨울용 외투를 벗을 수 없는 이유이다. 서울 종로구에 위치한 부암동은 도심과 지척이긴 하나 교통편이 썩 좋은 곳은 아니다. 일단 부근에 전철역이 없다는 사실만으로도 낙제점을 줄 만하다. 인왕산과 북악산 산자락 사이에 위치한 지리적 특징 덕분에 제법 가파른 언덕길이 치명적으로 다가오는 데다, 2차선으로 이뤄진 좁은 차도는 접근성을 크게 떨어뜨리는 요소로 작용할 법하다. 그나마 몇 개의 시내버스 노선이 이곳을 거친다는 사실이 다행스럽다. 우리 역시 버스를 이용했다.

 

아마도 2012년 즈음이 아니었나 싶다. 갑자기 무슨 바람이 들었는지 무턱대고 청운동과 부암동 일대를 찾았으나 당시엔 윤동주 문학관을 그냥 지나쳤던 기억이 있다. 그래서 이번엔 거꾸로 윤동주 문학관부터 찾기로 했다. 물론 영화 '동주'의 영향 탓이 전혀 아니라고는 말 못할 것 같다. 윤동주 시인이 새삼 주목 받고 있다는 사실이 발걸음을 이쪽으로 재촉한 셈이니 말이다. 우린 목적 달성을 위해 자하문 고개, 윤동주 문학관 정류장에서 하차했다. 이곳은 행정구역상 청운동이다.

 

 

하얀색으로 페인팅된 외관은 윤동주 그의 이미지처럼 매우 단아하다. 윤동주 문학관은 지난 2012년 원래 청운수도가압장과 물탱크 시설이던 곳을 개조하여 만들어졌다.

 

 

영화 '동주'가 불러온 반향이 상당한 모양이다. 문학관 내부에는 인근 북악산과 인왕산 등산객들로 빼곡했다. 모두 3개의 전시실로 꾸며져 있는데, 그 중 입구에서 제일 처음 만나게 되는 제1전시실에는 윤동주 시인의 친필로 된 원고와 사진 자료 등이 전시되어 있었다.

 

 

제3전시실에서는 윤동주의 일생과 그의 시 세계를 담은 영상물을 시간대별로 상영한다. 그런데 해당 전시실로 가기 위해선 반드시 거쳐야 할 공간이 있다. 다름아닌 제2전시실이다. 앞서도 언급했듯 이곳은 원래 수도가압장과 물탱크시설이었고, 그 중 제2전시실은 폐기된 물탱크의 상단을 개방하여 마치 우물처럼 형상화했다고 한다. 윤동주 시 가운데 '자화상'에 등장하는 우물에서 모티프를 따왔다는 문화 해설사의 설명을 듣고 있자니, 지금 우리가 발을 딛고 서있는 이곳이 다름아닌 '자화상'속 우물 안 어디쯤이 아니었는가 싶다. 이른바 '열린 우물'이다.

 

특이한 건 용도 폐기된 물탱크에서 흐르던 물의 흔적을 없애지 않고 그대로 남겨놓은 까닭에 마치 오랜 시간의 흔적이기라도 한 양 윤동주 시인이 살던 당시와 현재와의 시간적 간극을 메우고 있는 듯한 묘한 느낌을 받게 한다는 사실이다.

 

 

제2전시실이라 불리는 이곳은 이름과는 달리 텅 빈 공간이다. 관람객 저마다의 감성과 경험, 그리고 생각에 따라 각기 달리 다가오도록 한, 일종의 열린 전시실인 셈이다. 그런데 이날 전시실 위로 보이는 하늘 빛깔이 유독 찌푸리게 다가왔던 건 왜일까? 

 

 

제3전시실로 발걸음을 옮긴다. 이곳은 제2전시실과는 달리 닫힌 공간이다. '닫힌 우물'이라는 별칭도 그로 인해 붙여졌을 법하다. 제2전시실과 마찬가지로 용도 폐기된 물탱크를 원형 그대로 보존하되, 상단을 개방하지 않은 채였다. 안으로 들어서니 냉기가 확 올라온다. 조명시설이 없어 어두움 일색이다. 얼마후 윤동주 시인의 일대기가 담긴 10분 가량의 짧은 영상이 상영된다. 거리상 한국과 가장 가깝다는 일본 후쿠오카 교도소에서 생을 마감한 윤동주의 기구한 삶이 제3전시실이라는 묘한 공간과 만나니, 어느새 이 '닫힌 우물'은 후쿠오카 교도소로 둔갑한 채 우리에게 다가서는 느낌이다.

 

 

윤동주 문학관 위로는 '윤동주 시인의 언덕'과 산책길이 조성돼 있다. 윤동주 시인이 연희전문학교에 재학하던 청년 시절, 인왕산과 이웃하고 있는 북악산 자락을 오가며 시정을 다듬곤 했단다. 그러니 이곳은 그가 실제로 거닐었을 법한 흔적을 따라 마련된 공간인 셈이다.

 

 

그의 대표 작품 중 하나인 서시를 옮겨놓은 바위

 

 

 

윤동주 시인의 언덕 위에 서면, 서울 도심 전경이 한 눈에 들어온다.

 

 

이 산책로는 북악산과 인왕산 자락의 성곽길과 연결되어 있다.

 

 

윤동주 시인의 언덕을 내려와 부암동주민센터 옆길로 들어섰다. 서울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해 있다는 자하미술관을 관람하기 위해서다. 조금 걷다 보면 오른쪽으로 새로 지어진 한옥 한 채가 펼쳐지는데, 종로구에서 전통문화체험을 위해 마련한 무계원이라는 공간이다.

 

 

 

 

 

 

과거 상업 용도의 한옥 요정이던 이곳의 건물 자재를 활용, 2014년 새롭게 지은 멋드러진 건축물이다.

 

 

언뜻 봐도 낡은 돌과 깨끗한 돌로 확연히 구분된다. 오래된 돌은 실제 조선시대 당시 성곽 등지에서 사용하던 것들을 재활용했단다.

 

 

 

담벼락의 전통 문양이 참 곱다.

 

 

무계원에서 조금 더 올라가다 보면 소설가 현진건의 집터임을 알리는 표지석을 만나게 된다.

 

 

자하미술관은 인왕산 등산로로 이어지는 길의 주택가 맨 끝 지점에 위치해 있다. 부암동주민센터로부터 직선거리 약 500미터 지점이다. 자하미술관 앞에서 아래쪽을 향해 바라본 경관이다. 왼쪽이 북한산, 오른쪽은 북악산 자락이다.

 

 

북한산의 위용

 

 

북악산의 자태

 

 

 

드디어 자하미술관에 도착했다. 1층에 1전시실이, 2층에 2전시실이 마련돼 있다. 입장료가 있기는 한데, 생각보다 저렴하다. 1천 원이면 들어갈 수 있다. 서울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해 있다는 게 괜한 말이 아닐 정도로 지대가 높은 데다, 공기마저도 서울의 그것과는 차원이 전혀 다르다. 마치 시골 공기 같다.

 

 

 

 

부암동엔 사실 골목 사이사이로 아기자기한 볼거리들이 제법 숨겨져 있고, 각종 먹거리와 즐길거리로 넘쳐난다. 하지만 이날은 주말임에도 불구하고 날이 쌀쌀해서 그런지 거리를 거니는 사람이 그다지 많지 않은 느낌이었다. 왠지 을씨년스러울 정도다. 날이 좀 더 따뜻해지고 녹음이 무성한 싱그러운 계절이 돌아올 즈음 우린 이곳을 다시 찾을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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