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접 경험의 즐거움

강렬한 스릴과 빼어난 완성도 '곡성'

새 날 2016. 5. 12. 16: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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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곡성군, 한가롭고 조용하던 마을에 어느날 의문의 살인 사건이 잇따라 벌어진다. 참혹한 범행 현장은 차마 눈뜨고 볼 수 없을 정도로 처참하기가 이를 데 없다. 수사에 나선 경찰, 여러 의심스런 정황에도 불구하고 야생 버섯 때문이라는 잠정 결론을 내리게 된다. 하지만 여전히 뚜렷한 증거가 불확실한 터라 더 없이 흉흉해진 마을에는 외지에서 흘러들어온 한 일본인(쿠니무라 준)이 의심스럽다는 소문이 급속도로 퍼져나가고 있는 형국이다.

 

경찰인 종구(곽도원)는 근래들어 꿈자리가 뒤숭숭한 데다 일상에서마저도 자꾸만 섬찟한 현상을 접하던 와중이다. 때마침 일본인 관련 소문을 전해들은 종구, 그를 이번 사건의 핵심 배후로 의심하며 실체 파악을 위해 산중에 홀로 살고 있는 그에게 접근하기로 작정하는데..

 

 

일본인과 정면으로 맞닥뜨리게 된 그, 그동안의 소문과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일본인이 이번 사건과 어떤 방식으로든 연루돼있음을 확신하고 감정을 주체하지 못한 채 그의 거처를 쑥대밭으로 만들어놓는다. 종구의 딸 효진에게 이상한 증세가 나타나기 시작한 건 다름아닌 이 즈음이다. 효진의 몸에 두드러기가 나타나고 마치 귀신에 홀리기라도 한 양 거친 언사와 폭력적인 행동이 발현되곤 하는데... 

 

아름다운 시골 풍광, 이를 공간적 배경으로 한 이 영화는 유독 비 내리는 장면이 자주 등장한다. 첫 살인 사건 현장이 발견될 당시에도 마치 하늘에 구멍이 뚫리기라도 한 양 억수 같은 비가 땅 위로 내리꽂혔다. 주변이 산으로 둘러싸인 한가롭고 평화롭던 마을은 비가 내릴 때마다 온 마을이 젖어버리듯 예기치 않은 의문의 사건들로 온통 쑥대밭이 되고 만다. 작은 마을에서 잇따라 벌어진 의문의 살인 사건을 담당하던 제3자의 입장으로부터 자신의 의지와는 관계 없이 사건의 당사자로 변모하며 점차 그 한가운데로 향하던 종구는 커다란 덩치와는 달리 무척 소심한 인물로 그려져있다. 이번 사건이 그의 삶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게 된 이면에는 아마도 이러한 그의 성격이 한 몫 단단히하지 않았나 싶다. 

 

 

영화는 극의 흐름상 크게 두 갈래로 나뉜다. 마을에서의 연쇄 살인 사건 이후 종구가 무언가에 홀린 듯 일본인을 쫓고, 그의 딸 효진이 귀신에 씌워진 채 이상 증세를 보이며 가족 모두가 정신이 혼미해지는 지점과 효진의 증상을 없애기 위해 초빙된 일광(황정민)이라 불리는 유명한 무속인의 등장 지점이 바로 그에 해당한다. 흡사 멋진 해결사라도 되는 양 일광의 등장 장면은 짐짓 헐리우드의 액션 스타를 방불케 한다. 물론 결코 외양만 그런 게 아니다. 그가 선보이는 솜씨는 신기 충만하다. 

 

종구나 마을 사람들 대부분이 그러하듯, 영화는 특정인의 행적을 쫓거나 뒤를 계속 밟아가며 그를 이번 사건의 핵심 인물로 자연스레 몰아간다. 관객들 역시 자신도 모르는 사이 종구가 지닌 의심의 눈초리에 눈높이를 비슷하게 맞춰가게 된다. 일광의 표현을 빌리자면, 미끼가 던져지고 이를 덥썩 물고 있는 형국이다. 일광의 등장은 이러한 흐름에 있어 결정적인 반전 요소다. 이때부터 일광과 일본인이라 불리는 외지인 그리고 종구 앞에 홀연히 나타났다 사라진 의문의 여인(천우희), 이 세 사람은 이번 연쇄 살인 사건과 직간접적으로 관련된 인물 구도로 그려지기 시작한다.

 

 

이 영화는 스릴러 장르답게 초반부터 긴장감을 늦출 수 없게 하는 묘미가 있다. 심장을 조여오는 듯한 진한 공포감이나 피가 낭자할 만큼 잔인한 묘사는 딱히 없으나 두시간을 훌쩍 넘기는 긴 러닝타임 내내 지루할 틈이 전혀 없다는 사실이 이를 입증한다. 초자연적인 현상에 의해 빚어지는 사건들이기는 하나, 귀신을 직접 등장시키기보다 사람의 몸을 빌려 그 실체를 드러내는 방식을 차용한다. 

 

 

2년 8개월 여의 시나리오 작업과 6개월간의 로케이션, 그리고 1년 여의 후반 작업이라는 꽤나 공을 들인 작품답게 완성도 또한 높다. 이러한 덕분인지 제69회 칸 영화제 공식 섹션인 비경쟁부문에 초청되었다는 반가운 소식도 들려온다. 영화 전반을 관통하고 있는 스산함이나 공포감과는 별개로 중간중간 어이없는 행동과 대사를 통해 웃음 코드를 배치하고 있는 점은 재미를 배가시키는 요소다. 나약한 심성의 종구가 때때로 드러내는 공포 심리는 깜짝 놀라게 할지언정 무섭다기보다 되레 연민으로 다가오곤 한다. 심지어 웃음보를 터트리게 하는 경우도 있다.

 

 

구수한 전라도 사투리의 대사와 걸죽한 욕설은 거북하다기보다 왠지 입에 착착 달라붙는 느낌이다. 곽도원의 어딘가 빈틈이 있는 듯한 딸 바보 역의 자연스러우면서도 혼신을 다한 연기는 이번 작품을 빛나게 할 일등공신이라는 데에 이견이 없을 듯싶다. 쿠니무라 준이 보여주는 악한 기운의 카리스마는 관객들에게 충분히 전달되고도 남을 만큼 강력하다. 황정민과 천우희는 배역상 많은 시간이 할애되어있지는 않으나 짧은 출연이 외려 그들의 존재감을 더욱 도드라지게 한다. 비가 내리는, 혹은 그렇지 않은 곡성의 자연 풍광은 더없이 아름답다. 그러나 작품의 완성도는 그에 버금간다.

 

재미적인 요소도 상당하지만, 한국적인 정서를 나름 세련된 묘사로 표현한 점, 그리고 스릴러 장르에 있어 화룡점정이 되어줄 반전 요소를 매우 탄탄한 이야기 구조에 덧대고 이를 세밀하면서도 훌륭한 연출력으로 완성했다는 점에서 높은 점수를 부여할 만하다. 하지만 무언가 엉성한 구석이 있는 데다 아쉬운 대목이 존재한다는 점도 엄연한 현실이다.

 

 

감독  나홍진

 

* 이미지 출처 : 다음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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