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접 경험의 즐거움

미국 이민자가 전하는 삶의 긍정 메시지 '아메리칸 시티즌'

새 날 2016. 5. 2. 12: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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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바논 출신의 이브라힘(카페드 네버위)은 이민 복권에 당첨되어 미국에 입성하게 된, 무척 운이 좋은 사나이다. 입국 수속을 밟던 공항에서 그 스스로도 운이 좋았다며 너스레를 떨 정도이니 이해가 될 법도 하다. 물론 그렇다고 하여 곧바로 미국 시민권자가 되는 건 아니다. 5년 간의 체류와 적절한 통과의례를 거쳐야만 시민권을 획득할 수가 있다. 꿈에 부푼 그는 입국 수속을 끝낸 뒤 한 모텔에 투숙한다. 이곳에서 우연히 알게 된 여성 다이앤(아그네스 브루크너)과 뉴욕 시내를 돌아다니며 즐거운 한때를 보낸 그다.

 

이튿날 요란한 싸이렌 소리에 놀라 눈을 뜬 이브라힘, TV에서 흘러나오는 장면은 그의 눈을 의심케 하고도 남을 만큼 경악스러웠다. 9.11 테러가 벌어져 무역센터 건물에서 화염이 치솟고 주변 사람들이 대피하느라 현장은 온통 아수라장이었다. 그러니까 아침의 싸이렌 소리는 결국 그와 직접 관련된 흔적 중 하나였던 셈이다. 다이앤이 사고가 난 부근에서 살고 있다는 사실이 문득 떠오른 그는 그녀의 안위가 궁금했다. 다행히 신변에는 이상이 없었다. 하지만 놀란 기색이 역력했다. 그러던 어느날 그는 9.11 테러의 배후로 의심된다며 FBI에 의해 모처로 끌려간 뒤 무려 6개월 간 구금되는데... 

 

 

2001년 9월 10일 전 세계를 발칵 뒤집어 놓았던 9.11 테러가 벌어지기 정확히 하루 전날, 아메리칸 드림을 꿈꾸며 미국땅을 밟은 한 이슬람계 청년이 겪게 되는 실재했던 사건을 모티브로 제작된 작품이다. 9.11 테러는 많은 것들을 바꿔놓았다. 당시 미국 대통령이었던 부시는 '세계는 테러 행위자들의 편에 설 것인지, 아니면 미국 편에 설 것인지 분명히 해야 한다'며 지구촌 전체를 공공연하게 편가르기하고 나섰다. 당시 미국인들이 받았을 충격을 고려한다면 미국 사회 전역을 급속도로 물들인 반 이슬람 정서에 대해 전혀 납득하지 못할 상황은 아니다. 광기어린 테러 행위가 극도의 공포감과 분노를 불러오며, 이슬람포비아 현상으로까지 발현되던 찰나이니 말이다. 그 한가운데에 이브라힘이 있었다.

 

9.11 테러 이전이라고 하여 미국인들의 이방인에 대한 시선이 결코 긍정적이었던 건 아니다. 하지만 테러 이후 더욱 악화된 것만큼은 분명하다. 이슬람계 외모를 갖고 있다는 이유만으로도 그들은 거리를 마음 놓고 활보할 수 없었으며, 심지어 테러 배후 세력으로 의심 받기 일쑤였다. 이브라힘이 6개월간 영문도 모른 채 구금되었던 이유는 알고 보면 터무니없다. 9.11 테러 전날 입국했다는 사실과 테러 용의자와 성이 같고 동일한 국가 출신이라는 사실, 아울러 미국에서 이미 살고 있는 그의 사촌에 대한 행방에 대해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다는 점이 수상하다는 등 우연한 사실과 단순 정황 근거만으로 그를 테러 배후 세력으로 몰아붙였기 때문이다. 

 

 

그가 입국 수속시 대답하기 곤란했던 대목에 대해 물론 대충 얼버무린 경향이 있긴 했으나 결정적인 순간에 이러한 행동이 화살이 되어 자기 자신의 목을 겨누고 만다. 입국이 허락되고 다이앤과 뉴욕 시내를 돌아다니다가 우연히 대통령을 비난하는 일군의 무리에 섞여 특별한 의도 없이 단순히 함께 구호를 외치며 동조한 행위마저도 테러 배후 세력을 캐내려는 이들에게는 좋은 빌미가 되곤 한다. 어떡하든 테러 행위와의 연관성을 찾기 위한 무리수는 과거 그의 일상 일거수일투족에 대해서까지 하나하나 의미를 부여해가고 있던 셈이다.

 

세계 최고 수준의 인권 국가임을 자처하는 미국이지만, 미증유의 광기어린 테러 행위 앞에서는 그들이라고 한들 뾰족한 수가 없었던 듯싶다. 미국인이 되고 싶어 일부러 가슴에 성조기가 크게 그려진 티셔츠를 입은 채 돌아다녀도, 그들의 시선은 이브라힘의 이슬람계 외모만으로도 그저 이방인으로 비치거나 심지어 테러 배후 세력으로 둔갑하는 등 여전히 차갑기만 하다. 어떤 이들에게는 미국 시민권을 얻는 일이 식은 죽 먹기에 불과하나 또 다른 이들에게는 그 어떤 과정보다 험난함의 연속이다. 특히 테러와 연루된 이슬람 국가 출신의 경우 시민권은 고사하고 국외로 추방 당하기 십상이다. 이 영화는 이브라힘이 미국 시민권을 취득하기까지의 지난하면서도 힘겨운 여정을 그리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브라힘의 삶을 대하는 자세는 언제나 진지했으며 한결 같았다. 그가 미국에 온 목적은 분명했다. 어릴적부터 내전과 가난을 피해 여러 국가를 전전해오다 자신의 꿈을 펼칠 수 있는 곳은 미국이 유일하다고 생각했다. 미국인들이 자신을 향해 편견과 거부감을 드러내더라도 그가 꿋꿋하게 신념을 굽히지 않은 채 싸워나갈 수 있게 한 원동력도 다름아닌 그만이 지녔을 법한 삶에 대한 긍정적인 자세와 가치관 덕분이다.

 

미국에서 처음 인연을 맺게 된 같은 이슬람계인 모(리즈원 맨지)에 대해 베푼 그의 친절과 호의는 그리 멀지 않은 미래에 그에게 다시 돌아와 적잖은 도움이 된다. 불의한 일을 겪더라도 남의 일에는 절대로 참견해서는 안 된다는 게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대중들의 일반적인 처세 방법일 텐데, 그는 그에 아랑곳하지 않고 외려 비슷한 상황과 맞닥뜨리게 될 경우 기꺼이 의협심을 발휘하곤 한다.  

 

 

이렇듯 어떠한 경우에도 자신의 신념에서 벗어난 행위를 하지 않던 이브라힘이었건만, 그의 지난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시민권 취득을 목전에 둔 상황에서 결국 국외로 추방을 원하는 세력에 의해 위기를 맞게 되자, 그 역시 그동안 굳건하게 지켜왔던 평상심과 자제력을 잃고 만다. 하지만 이제껏 그가 보여준 태도는 주변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동화시켜 왔고, 이는 다시금 이브라힘을 자신만의 신념으로부터 굳건하게 지켜주는 역할을 톡톡히 한다.

 

이 영화를 통해 테러 국면에서 빚어진 인권 탄압과 광기 및 편견에 사로잡힌 미국 사회의 민낯을 들여다보게 하는 시각도 물론 흥미진진하지만, 난 그보다는 외려 이브라힘의 삶을 대하는 의연한 태도와 그가 우리에게 던지는 긍정 메시지가 더 관심 있게 다가온다. 이브라힘은 종교적 신념에서 비롯됐을 법한, 선행을 베풀면 그에 따른 결과가 반드시 자신에게 돌아올 것이라고 철석 같이 믿는 사람이었다. 다이앤과의 인연 역시 그녀가 곤란을 겪을 때 선뜻 호의를 베풀어 맺어졌듯 그는 어떠한 경우에도 사람을 차별하지 않고 늘 정중하게 대우해 왔으며, 아울러 매사에 최선을 다했다. 이러한 그만의 진지한 삶의 자세는 어느덧 나비효과가 되어 주변 사람들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게 하고, 결국 자기 자신에게까지 되돌아오게 하는, 무언가 굉장히 놀라운 마력을 선보이고 있는 느낌이다. 

 

 

감독  샘 카디

 

* 이미지 출처 : 네이버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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