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르의 전설

모피옷 두른 반려동물, 그로데스크하다

새 날 2016. 2. 29. 12: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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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이들과 차별화하고 싶어 하는 사람의 욕심은 끝이 없다. 물론 이는 타고난 인간의 천성이기도 하거니와 무한경쟁이라는 치열한 환경 속으로 내몰린 현대인에게는 어쩌면 지극히 당연한 결과일지도 모르겠다. 이를 뒷받침하는 학설도 여럿 있다. 그 중 일찍이 욕구 5단계 이론을 주장한 메슬로우는 총 다섯 단계의 욕구 중 4번째 단계로 '존경욕구'를 언급한 바 있다. 이는 스스로 자신을 중요하다고 느낄 뿐 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로부터도 인정 받고자 하는 욕구를 일컫는다. 즉, 지위, 존경, 명예, 위신, 자존감, 성공 등에 대한 욕구를 말한다.

 

타인으로부터 인정을 받는 방식은 비단 사회적 지위나 명예 등으로만 가능한 건 아니다. 사람에 따라서는 간혹 특정 제품이나 브랜드 따위를 자신 내지 자존감과 등치시키는 경우를 볼 수 있다. 때문에 이른바 명품백 등을 착용하거나 고가의 의류로 온몸을 치장하고, 비싼 외제차를 몰고 다니며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는 행위 역시 메슬로우의 존경욕구로부터 발현된 결과 중 하나로 읽힌다. 사람마다 지닌 가치관은 천양지차이거늘, 이러한 현상에 대해 뭐라 하는 건 사실상 주제 넘는 행위이다. 타인에게 위해를 가하지 않는 이상, 헌법에서 보장하는 기본권적 권리를 누리겠다는 사람에 대해 태클을 거는 건 합당치가 않기 때문이다.

 

근래 결혼과 출산을 기피하는 풍조로 인해 1인 가구가 급증하고 있고, 생활환경 및 의료기술의 발달은 고령화를 급속히 앞당기고 있다. 이에 따라 애견 시장의 규모도 더욱 확대되고 있는 추세다. 모든 산업이 그러하듯 일정 규모 이상으로 발전하게 되면 세분화 및 고급화 단계로 접어들기 마련이다. 애견 산업 역시 이러한 전철을 그대로 밟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의 배경엔 반려동물을 흡사 자신의 가족처럼 여기는 이른바 '펫팸족'의 등장이 한 몫 단단히 한다.

 

이들이 반려동물에게 쏟는 애정은 남다르다. 일반 제품과 명품을 판매하는 상점이 나뉘어있듯, 애견샵에도 일반샵과는 차원이 전혀 다른 명품샵이 존재한다. 일반인들이 볼 때엔 눈이 휘둥그레질 수밖에 없는, 수 천만 원을 호가하는 명품 애견용품을 판매하는 곳도 있다. 물론 애견용품이 명품 딱지를 붙인 채 판매된다고 하여 딱히 뭐라 할 건 아니다. 앞서도 언급한 것처럼 사람들이 흔히 사용하는 가방에도 명품이 있고 의류 등의 제품 역시 그러하듯, 애견용품이라고 하여 명품을 만들지 말라거나 이를 구입한다고 하여 손가락질을 해야 할 이유는 없기 때문이다.  



최근 명품 애견샵에서 밍크털과 여우털 등 천연 모피를 소재로 한 반려견 옷을 판매해 논란이 일고 있다는 소식을 접했다. 서울 강남의 한 백화점 애견샵에서는 주로 명품 애견용품을 취급하고 있는데, 가령 반려견 침대 하나를 주문 제작하는 데 무려 3천만 원을 호가할 만큼 가격대가 비싼 편인 것으로 전해진다. 물론 3천만 원이 들든 3억 원이 들든 그건 전적으로 견주의 마음 가는 대로 책임지고 결정할 사안이기에 굳이 여기에까지 색안경을 쓰고 바라볼 필요는 없다고 생각된다. 다만, 내가 주목하게 된 건 모피 애견옷과 관련한 사안이다. 모피로 제작된 애견옷이 100만-250만 원 선에서 판매되고 있다는 소식이다. 

 

이는 경악할 만한 사안이다. 가격에 대해 언급하려는 게 아니다. 비단 생명 윤리니 환경 보호와 같은 고상한 얘기를 들먹이지 않더라도, 반려동물의 몸에 또 다른 동물의 모피로 만든 옷을 입힌다는 그 자체가 나에겐 지극히 잔인한 발상으로 다가오기 때문이다. 아니, 그로데스크하다는 표현이 더욱 적확할 것 같다. 반려동물에게 지극 정성을 쏟으며 남들과 차별화하고 싶은 마음은 십분 이해한다. 그렇다면 차라리 금이나 다이아몬드 등 귀금속으로 장식된 옷을 입히면 될 일이지, 왜 하필이면 밍크털이나 여우털과 같은 또 다른 동물의 천연 모피로 만든 옷을 반려동물에게 두르려 하는 걸까. 

 

우린 반려동물을 기르면서 적적한 마음을 달래거나 마음의 안정을 찾을 수 있고 심신의 건강도 누릴 수 있다. 이를 통해 책임감을 기르며 생명을 소중히 하는 마음도 갖게 한다. 동물이 인간에게 주는 혜택은 이처럼 다양하다. 이를 존중하기 위해 우린 사람과 함께하는 동물들에게 일찍이 사람과 더불어 살아가는 동물이라는 애틋한 의미의 '반려동물'이란 호칭을 부여한 바 있다. 그런데 이러한 좋은 의미의 반려동물에게 다른 동물의 고통이 고스란히 담긴 천연 모피를 두르게 하다니, 도대체 인간은 얼마나 더 잔인해져야 하는 걸까?

 

ⓒ일다

 

패션업계에 따르면 전 지구적으로 연간 5000만 마리에 가까운 동물이 모피 의류 제조 과정에서 도살되는 것으로 추산된다. 여우털 코트 한 벌에 여우 수십 마리가 희생되어야 하고, 마찬가지로 토끼털 코트엔 토끼 30마리의 죽음이, 밍크코트엔 수백 마리에 달하는 밍크의 고통스러운 죽음이 배어있다. 모피 의류 제작에 동원된 동물들은 좁은 우리 안에 감금된 채 물과 먹이도 제때 공급받지 못하고, 심지어 산 채로 가죽이 벗겨지거나 털 손상을 막기 위해 감전사시키고 있다는 끔찍한 뒷얘기도 전해진다. 

 

이렇게 수없이 죽어간 동물들의 흔적으로 만들어진 옷을 사람의 몸에 두르는 것도 모자라 이제는 자신의 반려동물에게까지 입히겠다니, 모순도 이처럼 굉장한 모순은 흔치 않은 것 같다. 이는 인간의 지나친 욕심이 나은 또 다른 무리수가 아닐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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