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르의 전설

반려견과의 교감은 결핍을 메우는 과정이다

새 날 2016. 1. 26. 12: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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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극 한파가 몹시도 기승을 부리던 날, 난 마당에 풀어놓은 미르가 은근히 걱정스러웠다. 물론 이중모로 이뤄진 두터운 털가죽이 온몸을 감싸고 있어 태생적으로 추위에 유독 강하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긴 하지만 말이다. 이 곳이 아니었다면 아마도 저 고위도의 광활한 자연 속에서 동료들과 무리를 지은 채 더불어 살아가고 있을 법한 녀석이거늘, 뜬금없이 중위도, 그것도 정가운데에 콕 박힌 한반도의 중심에 떨구어진 채 살아가고 있으니 녀석의 운명도 어찌 보면 참 기구하다.

 

15년만에 가장 추웠다던 그날 아침의 일이다. 난 녀석의 안위를 살피고 주변 정리를 위해 현관 밖으로 몸소 행차했다. 물론 추위에 맞서기 위해 중무장을 한 뒤다. 머리엔 털모자를 뒤집어 쓰고, 두터운 잠바에 긴 털목도리로 목과 그 언저리인 얼굴 부위의 일부까지 칭칭 동여맸다. 현관문을 여니 확실히 공기가 예사롭지 않다. 숨을 들이킬 때마다 냉각된 공기가 너무도 차가워 마치 예리한 칼날이기라도 한 양 콧속을 거쳐 폐부 깊숙이 날카롭게 파고드는 느낌이다. 콧속의 점액질마저 모두 얼어붙을 것만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녀석은 다행히 멀쩡했다. 평소처럼 반갑다며 꼬리를 흔들고, 두 발로 땅을 디딘 채 두 손을 번쩍 올려 내 팔에 척하고 얹는다. 녀석의 키는 일어설 경우 얼추 나와 비슷하다. 녀석은 주둥이를 주욱 내밀더니 내 얼굴에 바짝 붙여온다. 아침식사를 마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탓에 내 입 안엔 여전히 음식물의 흔적이 남아 있었을 테고, 녀석은 마치 내가 무얼 먹었는지를 일일이 확인이라도 하겠다는 양 얼굴에 밀착한 채 코를 연신 킁킁댄다. 잠시잠깐의 탐색을 마친 녀석은 다시 내려와 네 발로 땅을 딛는다.

 

그러고선 갑자기 시멘트 맨바닥에 벌러덩 눕더니 배를 하늘 위로 드러낸다. 쓰담쓰담해 달라는 신호다. 영하 18도에 시멘트에 드러눕는 녀석이나 또한 그런 녀석의 비위를 맞춰주겠다며 쓰다듬어주던 나나 모두 제 정신이 아닌 것만은 틀림없다. 항상 묶여 있던 녀석의 목줄을 추위 때문에 요 며칠 사이 풀어놓았던 터다. 덕분에 모처럼 녀석과의 뜀박질이 가능했다. 추위를 이기는 방법은 역시나 움직이는 게 최선이다. 내가 먼저 발동을 건다. 녀석에게 뛰는 시늉을 하며 장난을 걸었더니 아니나 다를까 잽싸게 마당 한 바퀴를 먼저 달린 뒤 내게 돌아온다. 쫓고 쫓기는 뜀박질은 몇 차례 계속됐다. 숨이 차오른다. 미르와 내가 이번 북극 한파에 대응하는 자세다. 



엇저녁의 일이다. 이제 추위도 제법 누그러진 기색이 역력하다. 물론 그래도 내겐 여전히 춥다. 퇴근하여 집에 들어서는 순간 미르가 대문 앞에서 문이 열리기만을 학수고대하고 있는 눈치다. 문이 열리기 훨씬 전부터 일어서서 나를 열렬히 반긴다. 집에 들어서자마자 난 그런 녀석을 쓰다듬어준다. 그런데 녀석의 반응이 평소와 무언가 다르다. 녀석의 얼굴을 쓰다듬던 내 손에 자신의 그 커다란 얼굴을 연신 묻으려 한다. 뿐만 아니다. 녀석이 몸통을 내 다리에 기댄 채 비벼오더니 그 무겁디 무거운 체중을 싣는 게 아닌가. 애정이 듬뿍 담긴 행동이다. 녀석을 안아주니 정자세로 앉은 채 나를 뚫어져라 응시한다.

 

 

그래, 너나 나나 할 것 없이 우린 모두 완벽하지 못한 데다 무언가 부족함을 안은 채 이 세상을 살아가는 존재임이 틀림없겠구나. 조물주가 애초 지구상의 생물을 수컷과 암컷으로 창조할 때부터 우린 평생 결핍을 천형인 양 안고 살아가야 하는 존재가 된 셈일 테니 말이다. 물론 그렇다고 하여 반드시 이성을 통해 메워지는 결핍이 우리가 지닌 부족함의 전부는 아니다. 가령 비타민D의 결핍을 만회하기 위해 우린 햇빛을 쪼여야 하듯 물리적이거나 반드시 물리적인 형태가 아니더라도 삶 속에서 늘 무언가 허기를 느끼게 마련이다. 때로는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오는 결핍이 크게 다가올 수도 있는 사안이다. 이를테면 오프라인과 온라인상에서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과 무수한 소통을 나누곤 하나 반대로 그러면 그럴 수록 무언가 공허해지는 느낌 역시 일종의 정신적 결핍으로부터 오는 결과물일 수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언급하려는 결핍이란 가령 이성간의 사랑일 수도 있겠고, 그와는 전혀 다른 개념의 보다 폭넓은 개념의 사랑일 수도 있겠다. 혹은 정신적인 공허함 같은 것일 수도 있겠다. 하지만 그게 뭐든 그다지 상관은 없다. 무어라 해도 괜찮다. 동물 역시 마찬가지다. 단언컨대 세상에 완벽한 피조물이란 없다. 생명체의 태생 과정에서의 결핍은 필수 불가결한 요소다. 반려동물과 나누는 교감은 이러한 태생적 혹은 후천적 결핍을 메워가는 과정 중 하나다. 사람이든 동물이든 그 누구든 간에 모두가 부족함을 안고 태어난 이상 우린 늘 이를 메우며 살아가야 한다. 미르가 내게 보내오는 애정 표현이나 내가 미르를 안을 때마다 전해져오는 뭉클함을 통해 우린 무의식 중 서로의 결핍을 각기 해소하고 있는 셈이다. 사람과 반려동물이 동시에 누리는 교감은 그래서 더없이 소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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