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르의 전설

도시에서 대형견과 함께 산다는 건

새 날 2016. 1. 17. 18: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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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려동물을 기른다는 건 생각보다 그리 단순한 사안이 아니다. 아니 솔직히 말하자면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 중 하나일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하나의 생명체를 건사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애를 낳아 길러본 사람이라면 이게 무슨 의미인가 더욱 피부에 와닿을지도 모를 일이다. 우리가 흔히 착각하는 것 중 하나는, 애 키우는 일이 어렵다는 사실에 대해선 쉽게 인식하며 공감하면서도 개나 고양이 같은 반려동물을 기르는 일에 대해선 그와는 달리 상대적으로 가볍게 생각한다는 점이다. 

 

하지만 결코 그렇지 않다. 가능하면 회피하고 싶은 대목이겠으나 생명체란 존재는 세상을 살다 보면 병에 걸릴 수도 있거니와 언젠가는 반드시 죽기 마련이다. 사람이 그러하듯 말이다. 즉, 생명체를 입양하여 키운다는 건 해당 동물이 아프면 병원에 데리고 가야 하거나 때가 되면 먹이도 주어야 하며, 늙어 기력이 약해질 경우 그에 걸맞는 맞춤 돌봄이 뒤따라야 하는 법이다. 죽으면 적절한 사후 처리도 필요하다. 반려동물을 키운다는 건 바로 이러한 일련의 모든 과정을 받아들이고 끝까지 책임지겠노라는 일종의 사회적 약속인 셈이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그렇지 못한 경우가 허다하다. 당장 이쁜 외모에 반해 입양을 쉽게 결정했다가도 막상 키우다 보면 생명체이기에 항상 이쁠 수만은 없는 법이거늘, 처음과는 달리 현실적인 문제에 맞닥뜨리게 되면서 쉽게 파양을 결정하게 되거나 때로는 그냥 길에 내버려지는 문제가 발생하곤 한다. 지금도 무수하게 길 위에 버려지는 반려동물들은 다름아닌 이러한 연유 때문이다. 결국 반려동물을 키운다는 건 한 생명체의 삶과 죽음에 대한 막중한 책임감이 함께 동반되어야 한다는 의미이다.

 

이렇듯 반려동물을 기른다는 건 아무리 작고 하찮은 동물이라 해도 소중한 생명체를 다루는 사안이기에 결코 만만치 않은 일임이 분명하다. 그런데 같은 반려동물이라 해도 여타의 동물보다 도시 생활권에서 기르는 일이 더욱 힘든 종류가 있는 법이다. 다름아닌 대형견이 그렇다. 마당이 있느냐 없느냐 따위의 문제를 말하려 함이 아니다. 환경과 관련한 문제는 견주 스스로가 선택하고 감수해야 할 사안인 데다, 입양을 결정했다는 건 이미 어떤 식으로든 해당 건이 해결된 것으로 봐야 하기 때문이다. 그보다는 주변인들의 따가운 시선이 견주들을 더욱 힘들게 한다.

 

개를 싫어하는 사람들은 생각보다 많다. 어떤 이들은 작은 개만 봐도 질색을 하곤 한다. 때문에 산책길 대형견의 등장은 심지어 분노마저 야기시킬 수 있는 사안이다. 물론 그들이 이러한 행동을 취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전혀 없는 건 아니다. 가끔 목줄이 풀린 개에 의해 사람이 부상을 당하거나 심지어 목숨을 잃는 사건이 왕왕 보도되고 있기 때문이다. 조심해서 나쁠 건 전혀 없다. 조용히 걷고 있는데, 뒤에서 갑작스레 커다란 동물이 나타나게 될 경우 누구든 놀랄 수밖에 없다.   



이렇듯 반려동물에 대한 편견 내지 선입견이 심어지게 된 건 그동안 견주들이 목줄을 매지 않는 등 일반 시민들의 눈높이에 맞지 않는, 지극히 이기적인 행위를 일삼아 왔기 때문인 측면도 무시할 수는 없다. 지금도 비록 소형견이라 해도 '우리 개는 물지 않는다'며 목줄을 매지 않은 채 거리를 활보하는 견주들을 간혹 만나게 된다. 이런 이기적인 행태들이 다름아닌 모든 견주들을 이기적인 사람과 등치시키는 결과를 빚고 있는 셈이다.

 

현실에서뿐 아니라 온라인상에서도 대형견에 대한 반감이 묻어난 글을 접하기란 그다지 어렵지 않은 일이다. 심지어 입마개 얘기마저 나온다. 산책 시 반드시 입마개를 해야 하는 견종은 법으로 정해져 있다. ‘맹견’이라 불리는 견종인데, 동물보호법 시행규칙에 따르면 도사견, 아메리칸 핏불 테리어, 아메리칸 스태퍼드셔 테리어, 스태퍼드셔 볼 케리어, 로트와일러 및 그 잡종의 개와 그 밖에 사람을 공격해 상해를 입힐 가능성이 높은 개를 일컫는다. 즉, 대형견이라고 하여 모든 개에 입마개를 착용할 필요는 없다는 의미이다. 물론 '우리집 개는 절대로 안 물어요'란 표현이 일반 시민들에겐 얼마나 무책임한 발언으로 와닿는가를 모르는 바는 아니다. 하지만 대형견이라고 하여 모두 입마개가 필요한 건 아니라는 사실도 인지할 필요는 있다.

 

우리집 개를 산책시키는 일이란 그 어느 순간보다 주의를 기울이는 사안이다. 좋지 않은 시선들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주변인들의 노골적인 반감을 피하기 위해 부러 사람이 없는 야심한 시간과 장소를 택하곤 한다. 이는 평소 자주 산책을 시킬 수 없게 만드는 요인 중 하나이기도 하다. 문제는 산책하던 개가 특별히 민폐를 끼치는 행위를 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대형견이라는 이유 때문에 무조건 반감을 표시하는 경우를 흔히 보게 된다는 점이다. 대놓고 뭐라 하는 사람을 만나는 경우도 있거니와 내색은 않지만 은연 중 싫다는 의사를 표시하는 경우를 많이 접해 왔다. 때문에 산책 중엔 최대한 조심스레 걸으며 되도록이면 사람들과의 접촉을 피하려 노력한다.

 

 

하지만 다른 측면에서 생각해 보면 이는 단순히 견주들만의 문제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서로 같지 않은 환경에 놓인 시민들끼리, 즉 상대방이 틀린 게 아닌 서로 다를 뿐이라는, 상호 배려하는 문화가 제대로 동작하지 않고 있는 느낌이 강하게 든다. 반려동물을 기르는 사람이 그렇지 않은 이들을 먼저 배려해야 하는 건 가장 중요한 덕목 중 하나임이 분명하다. 그러나 개나 고양이 등 반려동물과는 일절 엮이고 싶지 않을 만큼 이들 동물을 싫어하는 일반인들 역시 반려동물 인구가 지속적으로 늘고 있는 사회 풍조에 걸맞게 반려동물 또한 우리의 생활 공간에서 함께 살아가야 할 존재로 인식하고 상대방을 배려하는 마음 씀씀이가 절실히 요구된다.

 

도시에서 대형견과 함께 산다는 건, 단순히 반려동물을 기르는 일반적인 어려움보다 훨씬 힘이 들며 난이도가 높은 일이다. 산책을 다닐 경우 큰 덩치와 눈에 띄는 외모 때문에 유난히 많은 이들에게 관심을 받는 경우가 허다하다. 하지만 난 이런 관심이 오히려 부담으로 다가온다. 일반인들의 잠재된 반감 역시 현재 표현하고 있는 관심에 비례하거나 그 이상으로 크다는 걸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반려동물에 대한 시민의식이 여전히 성숙되지 않은 데다, 여러모로 상호 배려가 잘 이뤄지지 않고 있는 사회 분위기가 역력한 까닭에, 피해가 가지 않도록 더욱 조심스럽게 행동하고 있으나 여전히 대형견을 향한 따가운 시선은 뒷통수를 뜨끈뜨끈하게 만들기에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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