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편린들

교육부의 국정화 홍보 웹툰이 부적절한 이유

새 날 2015. 11. 2. 1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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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일 동안 대한민국 사회를 극심한 이념 갈등의 혼돈 속으로 몰아넣었던 역사교과서 국정화에 대한 행정예고가 2일로 종료된다. 국정화 시행은 사실상 기정사실로 받아들여지는 분위기이다. 물론 정부가 찬성 의견과 반대 의견 등의 여론을 모아 이를 종합 판단, 확정 고시하는 절차가 남아 있긴 하나 이는 결국 요식 행위에 불과한 까닭이다.

 

아울러 국정최고책임자인 박근혜 대통령의 국정화 의지는 앞서 청와대 5자 회동에서 보여준 섬뜩했던 결기를 통해 이미 그 기운을 강하게 드러낸 바 있고, 국정화 반대가 북한 지령에서 비롯됐다는 서슬 퍼런 새누리당의 막무가내식 색깔론까지 투입된 것을 보아 하니 국정화는 벌써부터 우리 앞에 성큼 다가온 느낌이다.

 

 

그러나 이러한 사실들보다 이번 국정화 추진 과정에서 드러난 가장 커다란 무리수로 받아들여지는 대목은 따로 있다. 새누리당이 거리 곳곳에 붙여놓은 "우리 아이들이 김일성 주체사상을 배우고 있습니다"라고 쓰여진 플래카드? 물론 엽기적일 만큼 화끈한 재료이긴 했으나 어쨌거나 이는 아니다. 틈만 나면 "헬조선 현상은 잘못된 역사교과서 탓"이라며 주장하던 정치인들의 망언 역시 아니다. 이러한 현상들이 이번 국정화 논란을 희극화하는 데 있어 훌륭한 양념 역할을 톡톡히 하긴 했으나 보다 결정적인 건 엄연히 따로 있다.

 

다름아닌 교육부가 지난달 30일 자신들의 페이스북에 게재한 국정화 홍보 웹툰이다. 이 만화는 엄청난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만화 내용이 재미 있거나 인기 있어서라기보다 너무도 어이없고 황당한 내용 일색인 탓이다. 덕분에 해당 웹툰은 네티즌들의 뭇매를 맞으며, SNS를 뜨겁게 달궜다. 이의 인기가 어느 정도였냐면 해당 게시물에 달린 댓글만 해도 수천개에 달할 만큼 어마어마하다. 물론 댓글의 대부분이 비난 일색이긴 하지만 말이다. 아울러 패러디물마저 속출하고 있는 양상이다. 이쯤되면 교육부가 애초에 의도한 것보다 더욱 커다란 반향을 불러오며 이곳저곳 퍼나르기 된 채 많은 사람들에게 읽히고 있으니 대단한 성공을 거둔 셈이라 할 만하다. 

 

 

그런데 해당 만화의 내용을 거들떠 본 사람들은 대충 눈치를 챘겠지만, 이에는 앞서 언급한 정치인들이 떠들어대던 것과 진배없는 내용들로 가득함을 알 수 있다. 물론 매우 낯뜨거운 내용 일색이다. 아마도 윗선의 지시에 의해 억지로 만들기는 했어도 이의 제작에 참여한 공무원들조차 너무도 황당한 내용에 낯을 붉히거나 혀를 끌끌 차지 않았을까 싶을 정도로 심각하다. 도대체 교육부는 대한민국의 국민 수준을 얼마나 얕보았으면 이렇게까지 조악한 수준의 이념 몰이에 나설 수 있는 것인지 보면 볼수록 화가 난다.

 

그렇다고 하여 내가 화가 나는 진짜 이유는 단순히 만화의 내용 때문만은 아니다. 국민의 여론을 모으고 그를 종합적으로 판단, 교과서 발행체제의 방향을 결정하는, 그 어떤 곳보다 객관적이어야 할 교육부가 어떻게 정치적 이슈인 국정화 전쟁의 전면에 나설 수 있었을까 하는 점 때문이다. 게다가 우리 사회의 아킬레스건이랄 수 있는 이념 갈등을 아예 대놓고 부추기며 나선 게 아닌가. 교육 행정을 총괄하는 정부 부처가 현재 정치적 쟁점이 되어 대한민국을 둘로 나눈 채 극심한 이념 전쟁을 벌이고 있는 사안에 대해 직접 개입하여 어느 한쪽의 일방적인 편을 들고 나선다는 게 과연 가당키나 한가? 아직 국정화 시행이 결정되지도 않았는데?

 

 

더구나 얼마 전까지의 교육부 행보를 보면 더욱 기가 막히고 코가 막힐 노릇이 아닐 수 없다. 요즘 유행하고 있는 '웃프다' 라는 표현이 꼭알맞다. 오늘날의 교과서를 검인정한 건 다름아닌 교육부, 바로 그대들이다. 2014년 1월 교육부는 현재의 교과서를 검인정하여 내놓으면서 보도자료를 통해 "학생들의 올바른 역사 인식 형성에 도움을 줄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힌 바 있다. 그렇다면 불과 1년 사이에 어떻게 이렇듯 전혀 다른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건가? 행정부처가 정치적 의도나 잇속에 따라 같은 사안에 대해 이율배반적인 행동을 일삼아도 되는 건가? 더구나 교육부는 대한민국의 아이들과 교육 주체의 미래를 짊어지고 있는 부처가 아니었던가? 그 어느 부처보다도 교육적이 되어야 할 교육부가 되레 편가르기라는 지극히 비교육적인 처사를 일삼는다면 이를 보고 배우는 우리 아이들은 도대체 무어란 말인가?

 

교과서 때문에 이 나라를 부끄러워 하며 헬조선을 외친다는 얼토당토 않은 주장은 20세기 서슬 퍼렇던 시기에나 사용됨직한, 실은 그 시기에도 우스갯감으로 전락할 공산이 크지만, 시대를 제대로 거스르는 느낌이 아닐 수 없다. 그렇다면 진짜로 이 나라가 부끄러워지는 건 과연 어떤 상황일까? 아마도 이러한 무리수를 통해 미래마저 불투명하게 만들고 그나마 남은 한 조각의 희망마저 앗아가고 있는 교육부의 망동 때문에 대한민국이란 나라가 진정 부끄러워지고 있는 건 아닌지 곰곰이 되새겨 보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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