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편린들

부모의 재력이 곧 자녀의 능력이 되는 세상

새 날 2015. 9. 20. 2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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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신 대학에 따라 미래가 결정되는 지독한 학벌 위주의 사회, 사실 우리 사회 모순의 상당 부분이 이로부터 기인하고 있음은 두 말 하면 잔소리일 테고, 부인하기도 어려운 노릇일 테다. 게다가 학벌을 결정짓는 요소 중 가장 큰 부분이 부모의 재력이라는 사실은, 제아무리 받아들이고 싶지 않아도 끝내 인정할 수밖에 없는, 그래서 쓴 입맛을 더욱 씁쓸하게 만들기에 충분하다. 서울대학교 학생 3명 중 1명이 강남 3구 출신이라는 통계와 '개천에서는 용 안 나고 강남에서 용난다'라는 우스갯소리는 이러한 현실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잣대다.

 

이명박정부가 만들어놓은 고교다양화 정책은 어느덧 대학 사회로 한정지어졌던 서열 구조를 그보다 한 단계 아래인 고등학교 단계로까지 낮추어 완성시켜 놓았다. 좋은 대학으로 향하는 필수 관문이자 통과의례처럼 받아들여지고 있는 특목고 내지 자사고, 그렇기 때문에 부모의 소득이 상위이며 학벌이 높을 수록 이의 진학률이 상대적으로 높아질 수밖에 없는 건 어쩌면 지극히 자연스런 결과다. 

 

ⓒ오마이뉴스

 

소득의 차이는 교육비의 차이를 불러온다. 가난한 집 자녀의 교육비가 잘 사는 집 자녀 교육비의 절반도 되지 않는단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지난 14일 발간한 ‘이슈 앤 포커스’의 학업 자녀가 있는 가구의 소비지출 구조와 교육비 부담 연구에 따르면, 소득 상위 20%에 해당하는 가구가 하위 10%에 해당하는 가구와 비교해 교육비를 2.6배 더 지출한 것으로 드러났다. 범위를 소득 상위 10%로 좁힐 경우 그 격차는 더욱 벌어져, 16.6배까지 차이가 난다. 그 뿐만이 아니다. 비영리 공익법인 동그라미재단이 지난 11일 '기회균등 지수' 연구 결과를 발표했는데, 이에 따르면 소득 상위 10% 가구 자녀가 이른바 'SKY'라 불리는 명문대에 진학할 확률이 하위 10% 가구의 5배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앞서의 결과가 괜한 게 아님을 증명하고 있는 셈이다.

 

 

하지만 이보다 심각한 문제는 다른 곳에서 드러난다. 앞서 언급한 상황이 어느새 중학교, 아니 초등학교 단계까지 내려간 채 불평등한 사회를 고착화시키고 있는 탓이다. 국제중학교 등 특목중에 진학하는 사립초등학교 졸업생 비율이 지나치게 높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사립초등학교는 일반 공립초등학교와 달리 학비가 많이 들기 때문에 아무나 들어갈 수 없는, 일종의 귀족학교에 해당한다. 2014년 기준 전국 사립초등학교 졸업생 비율이 전체 초등 졸업생의 1.6%에 불과하다는 사실이 이를 입증한다. 그런데 20일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소속 새정치민주연합 박홍근 의원이 교육부로부터 제출받은 자료를 분석한 결과, 국제중학교의 사립초 출신 비율이 영훈국제중의 경우 35%, 대원국제중은 27%에 이른다. 고작 1.6%의 비율에 비한다면 어마어마한 수치다. 이러한 결과는 사립초-국제중에 이르는 진학 구조를 통해 이른바 귀족학교 라인을 고착화시키고 있는 셈이다.

 

사립초등학교와 공립초등학교 간 벌어지는 학력 격차는 학부모가 부담하는 교육비의 차이만큼이나 상당하다. 당연한 결과일까? 그렇다면 지난 2011년 치렀던 학업성취도평가를 통해 드러난 서울 소재 초등학교 591개교의 학력 순위를 한 번 살펴보자. 상위권에는 온통 사립초등학교 투성이다.

 

 

반면, 사립초에 비해 교육 환경이 상대적으로 열악할 수밖에 없는 학교의 경우 순위는 하위권을 맴돌기 일쑤다. 꼴찌인 591위를 차지한 알로이시오초등학교는 위탁아동을 위한 사립학교(올해 학생수 부족으로 폐교됨)이며, 그 외 560위에 랭크된 대은초등학교는 서울형 혁신학교로 지정, 운영되고 있는 학교다. 소득의 차이가 교육비의 차이를 불러오고 이는 다시 교육 환경의 차이를 빚고 있으며, 학력 차이로 이어져 결국 학벌 위주의 서열 구도를 완성시키고 있는 셈이다. 문제는 고등학교도 아닌, 그렇다고 하여 중학교도 아닌, 초등학교 단계에서부터 이러한 끔찍한 결과를 빚고 있다는 점이 아닐까 싶다.

 

 

물론 이러한 결과가 우리 사회에 시사하는 바는 크다. 초등학교 단계에서 학력 차이가 거의 결정되는 경향 때문이다. 시울시교육청 산하 교육연구정보원에 따르면 초등학교 때 받는 사교육이 중고등학교 때 받는 사교육에 비해 이후의 학력에 훨씬 더 큰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확인한 바 있다. 때문에 초등학교 때 벌어진 학력 차이가 중고등학교에 진학하더라도 좁혀지기는커녕 그대로 고착화될 가능성이 크다. 이렇듯 초등학교 시점부터 굳어지는 서열 구도는 시간이 지날수록 계층 상승을 더욱 어렵게 만드는 결정적인 인자가 된다.

 

ⓒ서울신문

 

앞으로 개천에서 용나는 일을 바란다는 건 도저히 무리 아닐까? 부모의 재력이 곧 자녀의 스펙 및 능력이 되는 세상이니 말이다. 하지만 정작 문제는 그게 아니다. 어느덧 초등학교 단계에서부터 미래의 대부분이 결정되고 굳어진다는 사실이 무엇보다 안타깝게 다가온다. 몹시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공정한 게임을 바란다는 건 어불성설에 지나지 않거니와, 균등하지 못한 사회가 빚어내는 모습은 상상만으로도 끔찍하다. 작금의 상황은 불평등의 악순환이 계층 상승 내지 사회 이동성이라는 기회의 사다리마저 걷어차고 있는 꼴이라 우려스럽기 짝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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