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편린들

돌과 백일잔치마저 자기과시 수단 삼아야 하나

새 날 2015. 9. 16. 2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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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고급호텔의 연회장, 1만 원짜리 100장을 바닥에 깔아놓고 마련한 아기 백일상, 예쁘면서도 정교한 꽃장식이 달린 30만원짜리의 럭셔리한 케이크, 그 위엔 금가루를 곱게 뿌리고 아기에게는 백일 기념 순금 목걸이를 채운 채...

 

모 언론사 기사를 통해 언급된 요즘 백일잔치나 돌잔치 풍습의 한 단면입니다. 최근 주변에서 돌잔치 하는 모습을 바라보며 예전에 비해 조금은 과하다 싶은 느낌이 들긴 했습니다만, 기사 내용을 훓어보니 생각보다 훨씬 심각해 보이는 수준이었습니다. 물론 일부 계층에서 이뤄지는 행태이긴 하겠습니다만, 근래 SNS나 인터넷 커뮤니티, 카페 등에 이를 공유한 채 서로 경쟁적으로 화려한 돌잔치나 백일잔치를 벌이는 게 일종의 유행으로 자리잡은 모양새입니다.

 

사실 백일잔치나 돌잔치는 예로부터 행해져오던 우리만의 전통 풍습 중 하나입니다. 이러한 것들이 발생하게 된 배경을 살펴보게 되면, 작금의 우리 모습이 얼마나 왜곡돼 있는가를 여실히 깨달을 수 있게 됩니다. 의학 기술이 미흡했고 위생관념마저 보편화되지 않았던 과거에는 영아 사망률이 상대적으로 높았습니다. 따라서 아기가 출생하여 100일이 되도록 건강히 잘 자라는 것을 기념하고, 일가 친척에게 인사시키며 아이의 평안을 기원하는 기회로 삼았던 게 다름아닌 백일잔치입니다. 마찬가지로 보통 아기의 생후 1년 동안을 성장의 고비로 삼아왔던 까닭에 1년을 넘긴 아기에게 있어 돌은 재생의 기쁨을 맞이하는 그런 날로 받아들여져오던 터입니다. 그러니까 이를 자축하고 주변 사람들과 기쁨을 함께 나누기 위해 돌상을 차려주었던 셈입니다.

 

ⓒ문화일보

 

그렇다면 오늘날은 어떨까요? 의료기술의 발달로 영아 사망률이 크게 낮아진 데다 핵가족화 되어가는 가족제도의 변화로 인해 백일과 돌잔치의 중요성은 예전만 못함이 분명합니다. 어쩌면 진작에 사라졌어야 할 풍습 중 하나일지도 모를 만큼 세태가 급변하고 있는 까닭입니다. 하지만 최근엔 저출산의 영향으로 인해 한 자녀 가정이 크게 증가하고 있는 추세입니다. 여기에 자신의 자녀만큼은 특별하게 키우고 싶은 부모들이 늘어나고 있는 데다, 업체들의 상혼이 그와 맞아떨어지면서 백일과 돌은 새로운 특수를 맞이하고 있습니다. 

 

집에서 손수 떡을 쪄 가족 친지나 이웃들과 함께 소박하게 이를 나눠먹으며 아기의 건강을 기원하던 정겹던 풍습은 사라지고, 온통 누군가에게 보여지기 위한 과시나 허세만이 판을 치는 세상이 돼버린 느낌입니다. 아이를 위한 행사임에도 불구하고 근래엔 오히려 부모 자신들을 위한 행사로, 애초의 취지가 크게 변질된 탓입니다. 돌잔치만 해도 사실 문제 투성이임이 분명합니다만, 어느덧 백일잔치까지 수백만 원을 써가며 행사를 치르는 등 부모들의 허례허식 경쟁이 도를 넘고 있다는 지적이 일고 있는 건 결코 우연이 아닙니다.



경쟁적으로 벌이는 호화 백일잔치와 돌잔치는 SNS망과 인터넷 육아 카페 등을 타고 입소문이 빠르게 번지며 너도 나도 럭셔리 행사에 동참케 하고 있습니다. 물론 이러한 현상 뒤엔 자신의 처지와는 관계없이 남에게 잘 보이고 싶은 심리와 유행이라면 물불 가리지 않는 우리네의 오랜 악습이 뒷받침하고 있습니다. 관련 기사에 따르면 일반적으로 호텔 연회장을 빌려 이러한 행사를 치를 경우 500만 원의 비용이 넘는 경우가 다반사이고, 돌잔치일 경우 1000만 원을 훌쩍 넘는 사례도 많다고 합니다. 부모들 사이에서 입소문을 타 인기가 많은 업체는 올 연말까지 이미 예약이 끝난 상태라는 한 관련 업자의 귀띔은 해당 산업이 얼마나 호황을 누리고 있는가를 여실히 증명하고 있습니다.

 

물론 돈을 쓰는 건 개인의 자유입니다. 이에 대해 태클을 걸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하지만 특별한 날이면 온갖 상혼이 난무한 채 애초의 좋았던 의미를 퇴색시키거나 원래의 취지를 변질시켜왔듯, 백일과 돌의 참 의미를 무색케 하고 오로지 부모의 재력을 과시하기라도 하는 양 화려함 일색의 행사를 치르는 일은 그다지 바람직스럽다고만 할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이러한 행사를 치를 능력이 차고도 넘친다면 그나마 다행입니다만, 남들이 모두 한다고 하여, 아울러 이 또한 유행이랍시고, 여건도 되지 않는 이들이 이를 막연히 따라하는 행태나 이를 부추기는 듯한 사회 분위기는 그저 안쓰러울 뿐입니다.

 

ⓒ서울신문

 

최근 몇 년 사이 이른바 '스몰 웨딩'이 대중화되고 있습니다. 평생 한 번 치르는 결혼식은 허례허식의 가장 대표적인 풍습 중 하나입니다만, 다행히 근래 합리적인 젊은이들이 늘고 있고 이들의 사고 방식이 기존의 틀을 깨며 작은 결혼식을 점차 대세로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이의 확산엔 얼마 전 스몰 웨딩 형태로 소탈하게 결혼식을 올린, 원빈 - 이나영과 같이 사회적 파급력이 상대적으로 큰 연예인 커플의 영향도 한 몫 단단히 합니다. 물론 스몰 웨딩 또한 넘어야 할 과제가 산적해 있긴 합니다. 기존 업체들이 스몰 웨딩이란 단어만 앞세울 뿐 야외나 하우스 웨딩홀, 그리고 각종 장식이다 해서 오히려 호화 결혼식을 유도하는데 이용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스몰 웨딩 역시 또 다른 럭셔리 웨딩의 형태로 변질되고 있는 셈일지도 모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몰 웨딩의 등장은 우리에겐 일종의 관성이자 타성이랄 수 있는 허례허식의 강한 인력으로부터 조금은 멀어지게끔 해주는 좋은 징후로 받아들여집니다. 백일과 돌잔치가 일부 사람들에 의해 그 본질마저 왜곡된 채 자기 과시 내지 허영심을 부추기게 하는 또 다른 수단으로 전락하게 된다면, 아기가 건강하게 자라길 바라고 안녕을 기원하는 취지에서 비롯된 우리 조상들의 전통 풍습의 취지조차 무색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이는 정체불명의 무국적 기념일이 국내에 유입된 채 애나 어른 할 것 없이 상혼에 멍들게 만드는 결과와 비견될 만큼 바람직스럽지 않은 모습입니다.  어쩌면 우린 지금 나 자신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 게 아니라 순전히 남에게 보여지기 위해, 거짓과 위선 따위로 덧씌워진 가짜 얼굴을 지닌 채 세상을 살아가고 있는 게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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