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편린들

한국에 혁신기업이 존재할 수 없는 이유

새 날 2015. 9. 19. 14: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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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를 방문 중인 황교안 총리는 지난 17일 "창조경제는 무한한 창의성과 상상력이 기술 문화 산업과 만나 새로운 비즈니스, 새로운 일자리를 만들어내는 신성장 동력"이라 밝히고, 현지 주요 IT 기업들을 방문, 우리 기업들과의 창조경제 관련 협력방안을 모색 중이라고 말했다. 아울러 국내엔 현재 전국적으로 20개에 가까운 창조경제혁신센터가 들어선 상태이고, 박근혜 대통령은 기회가 닿을 때마다 창조경제 전도사로서의 역할을 톡톡히하고 있다.

 

창조경제는 박근혜정부가 쏟아낸 여러 정책 중 가장 핵심에 속한다. 그만큼 공을 들이고 있고 중요하게 다뤄지고 있다는 의미이다. 창조경제의 개념을 다시 한 번 짚고 가야 할 필요성을 느끼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창조경제혁신센터가 정의하고 있는 창조경제란 다음과 같다. 창의성을 경제의 핵심 가치로 두고 새로운 부가가치, 일자리, 성장동력을 만들어내는 경제, 아울러 국민의 창의성과 과학기술, 정보통신기술(ICT)의 융합을 통해 산업과 산업이 융합하고 산업과 문화가 융합해 새로운 부가가치를 창출함으로써 새로운 성장 동력과 일자리를 만들어내는 경제를 일컫는다.

 

 

박근혜정부가 들어서자마자 이러한 내용의 다소 생뚱맞은 화두를 꺼내들 때만 해도, 추상적인 데다 모호하기까지 한 개념 및 명칭 때문에 대중들이 고개를 갸웃거리거나 외면 받기도 하였으나, 어쨌든 3년간 무려 21조 원이라는 예산이 이 창조경제에 투입된 터라 싫든 좋든 간에 어마어마한 국민의 혈세가 들어간 이상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어찌 성공을 빌지 않을 수 있겠는가 싶다.

 

다소 성급해 보일지는 모르겠으나 그동안의 성과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때마침 이를 가늠해볼 수 있는 보고서 하나가 발표됐다. 물론 받아들이는 주체에 따라 이를 성과로 판단하기엔 다소 무리가 따르는 내용일 수도 있다. 하지만 적어도 참고가 될 만한 지표임엔 틀림없다. 18일 KT경제경영연구소의 ‘MIT대학 선정, 세상을 변화시키는 기업에 대한 분석 및 시사점’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 매사추세츠공과대학이 발간하는 MIT테크놀러지리뷰는 매년 세계 50대 혁신기업을 선정하는데, 최근 5년간 우리나라는 삼성전자, LG전자 두 기업만이 이곳에 이름을 올린 바 있으며, 그나마 올해엔 단 한 곳조차 순위 안에 랭크되지 못했다는 소식이다.

 

이 보고서의 특징을 꼽자면 일반적으로 회사의 수준을 평가하는 방식인 명성이나 재무상태, 특허 등의 외형을 따지기보다 오로지 세상을 바꿀 만한 기술, 비즈니스 모델의 혁신을 이뤘는지를 고려하고 있다는 점이 아닐까 싶다. 우리나라는 삼성전자가 2012년부터 작년까지 연거푸 혁신기업으로 선정된 적이 있으나 안타깝게도 올해는 순위권 밖이다. 지난해 46위에 진입했던 LG전자 역시 순위권 밖으로 밀려났다. 우리나라에서 삼성전자가 차지하는 지위를 고려하다면 이의 탈락은 가히 충격적이라 할 만하다. 근래 부각돼오던 위기감이 현실화되는 게 아닐까 싶어 우려스럽기까지 하다.



앞으로 우리와 치열한 다툼을 벌일 것으로 예상되는 잠재적인, 아니 현실은 이미 경쟁국의 지위로 등극한 중국의 선전이 단연 돋보인다. 10위 이내에만 4곳, 전체적으로는 모두 15개의 기업이 순위권 안에 포진돼 있다. 적어도 혁신과 관련해서는 중국에 비해 우리가 월등히 뒤지고 있는 셈이다. 중국은 치고 올라오는 반면, 우리는 글로벌 기업의 치열한 혁신 경쟁에서 갈수록 도태되는 형국이다. 국가 차원에서 창조경제와 혁신을 강조하며 천문학적인 비용을 투입하여 이를 지원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결과가 빚어지고 있는 현상은 과연 무엇 때문일까? 

 

최근 진행되고 있는 국회 미래창조과학방송통신위원회 국정감사를 눈여겨 봐야 할 필요성이 엿보인다. 야당 의원들에 따르면 창조경제란 스타트업 기업 육성으로 우리 경제를 보다 젋고 활력있게 바꾸고자 함이 본래의 취지일 텐데, 창조경제의 상징과도 같은 창조경제혁신센터장 17명 중 11자리에 지역 연고가 있는 대기업 퇴직자 출신을 앉혀놓는 우를 범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이들은 그저 자리 챙기기에 급급해할 뿐 정작 소통이 이뤄지고 아낌없이 지원돼야 할 젊은 혁신 기업가들에게 다가설 수 있는 유인 고리가 너무 약하다는 의미다. 아울러 혁신센터의 최고 책임자를 아직 임명하지도 않은 공석의 상황에서 대통령이 미리 와서 기념사진을 찍고 갈 정도로 지극히 형식적인 측면으로 흐르는 경향이 짙단다.

 

언론에 따르면 이번 정부가 창조경제를 화두로 꺼내든 이후 벤처기업 수는 이미 3만개를 넘어섰고, 벤처캐피털 신규 기업투자도 1조 6천5백억 원의 수준에 육박할 만큼 외견상의 성장세는 뚜렷하다. 하지만 앞서도 언급했듯 혁신 기업가들과의 연결고리가 약한 바람에 반드시 돈이 필요한 이들에게 적절한 조건으로 이것이 신속히 전달되지 않고 있다는 점이 문제로 지적된다. 물론 21억원이라는 창조경제 예산의 상당 부분이 건설사업에 불과한 혁신센터를 짓는 곳에 쓰였다는 사실만으로도 어떤 분위기일지 대충 짐작 가능하지만 말이다. 결국 내실보다 형식을 중요하게 여기며 이를 갖추느라 어렵사리 마련된 자금이 대부분 그곳으로 집중되는 바람에 정작 혁신 다운 혁신, 아울러 창조경제의 개념에 걸맞는 성과를 낼 수 없다는 의미가 된다. 

 

ⓒ세계일보

 

그러나 이렇듯 외화내빈의 형태를 자아내고 있는 근본적인 이유는 어쩌면 다른 곳에서 찾아야 될지도 모를 일이다. 정작 혁신과 창조경제를 막고 있는 건 언론을 통제하여 여론을 특정한 방향으로 몰아가거나 인터넷 포털마저 간섭하려 들고, 다양성을 무시한 채 역사교과서를 국정으로 회귀시키려는 정부의 경직된 사고와 정책 기조 아닐까? 이런 사회 분위기라면 제아무리 창조경제를 떠벌린다 해도 혁신이나 창의성을 발휘한다는 자체가 어불성설일 테니 말이다.

 

가까운 미래 새로운 성장 동력을 발굴해야 할 처지로 내몰린 우리에게 있어 창조경제라는 화두를 꺼내든 건 어쩌면 기막힐 정도로 절묘한 타이밍일지도 모른다. 문제는 이를 어떻게 살리느냐 하는 점일 텐데, 혁신센터라 불리는 근사한 건물을 새로 짓고, 또 그 앞에서 대통령이 웃으며 사진 한 장 달랑 남겨놓는 방식을 혁신이라 칭한다면 앞으로의 전망은 한없이 어두움 일색일 테다. 창조경제에 쏟아부은 21조 원의 혈세, 그리고 앞으로 투입될 예산을 고려해볼 때, 현 정부의 임기가 끝날 즈음 미래의 먹거리 마련은 고사하고, 이번 정부가 야심차게 추진했던 창조경제마저 자칫 국가적 재앙으로 남지 않게 하려면 지금과 같이 경직된 방식으로는 어림없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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