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편린들

일본 안보법 강행, 위기인가 기회인가

새 날 2015. 9. 21. 1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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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이 마침내 집단적 자위권 행사를 포함한 안보법 제개정을 완료했다. 패전국이던 일본이 아베의 숙원대로 70년 만에 다시금 전쟁을 치를 수 있는, 이른바 '보통국가화' 된 셈이다. 이로써 일본은 비단 자국이 아니더라도 한반도는 물론이거니와 다른 나라, 다른 지역에서 발생하는 전쟁에 대해서도 자위대의 활동 범위를 전 세계로 넓혀 무력 행사를 할 수 있는 길을 열어 놓았다. 이웃 국가 중국의 강력한 반발은 예견된 수순이다. 반대로 미국의 입장에선 적극 환영의 뜻을 표하는 등 동북아 정세가 격랑 속으로 빠져드는 모양새다.

 

우리에겐 미운 털이 제대로 박힌 아베 총리이거늘, 미국의 입장에선 상당히 고마운 존재가 아닐 수 없다. 미국은 중국과 러시아를 견제하기 위해 21세기 들어 두 가지 글로벌 전략인 나토의 동진확대와 아시아 태평양 재균형 전략 구상을 추진해왔다. 하지만 미국의 전통적 우방인 유럽 국가들은 미국 주도의 글로벌 현안 지원에 대해 뜨뜨미지근한 입장을 견지하고 있고, 중국의 군사력 증강에 대응하고 있는 미국 입장에서는 더 이상의 국방비 확대가 곤란한 처지에 놓인 터라 일본의 안보법 제개정은 미국에 천군만마를 얹어준 효과와 다름없다. 일본이 미국을 대신해 군사적 역할을 확대해 나가길 바라 마지 않던 시점에 아베가 이에 화답하듯 승부수를 띄운 셈이니 말이다.

 

ⓒ연합뉴스

 

그렇다면 미국이나 중국과의 관계 모두가 소중할 수밖에 없는 우리 입장에서 볼 때 일본의 군사적 역할 확대는 기회로 다가오게 될까 아니면 재앙으로 다가올까? 당장 동북아에서 군비경쟁이 늘어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게 된 측면에서 보자면 이는 재앙에 가깝다. 실제로 일본은 안보 관련법이 통과되자마자 곧바로 자위대의 해외임무 확대를 추진하고 있는 것으로 보도되고 있다. 북한의 움직임도 심상찮다. 북한은 19일 외무성 대변인 담화를 통해 안보법 제개정을 ‘재침 야망’으로 규정하고 강력한 반발과 함께 전쟁 억지력을 더욱 강화할 것이라고 천명했다.

 

한미 동맹의 명분은 북한의 위협을 고리로 삼고 있다. 그러나 보다 큰 밑그림을 그리고 있을 미국의 입장에선 북한보다 사실상 중국 견제가 더욱 시급한 과제가 아닐 수 없다. 한미 동맹보다 미일 동맹으로 균형추가 급격히 기울어질 수밖에 없는 이유이다. 우리 입장에선 한미 군사동맹을 북한 도발 억지의 역할로 한정짓고 싶은 반면, 미국은 중국에 대한 견제로 그 초점을 옮겨가고 있는 와중이다. 일본의 보통국가화를 계기로 미국은 한미일 삼각 동맹을 강조하며 중국으로부터 우리를 떼어내려 할 공산이 크고, 반대로 중국은 한국이 미일 군사동맹으로 기울어가고 있는 상황을 반전시키기 위해 우리를 상대로 압박과 회유를 가해올 수도 있는 상황이다.



하지만 정부는 한미관계가 역대 최고라 치켜세우며 대통령의 방중 이후 불거진 중국 경시론을 불식시키고 일본이 우리에게 영향을 줄 만한 군사 야욕을 펴지 못하도록 한미 동맹으로 제어하겠다는 의지를 불태우고 있다. 우리가 현실적으로 강대국들 사이에서 취할 수 있는 역할이란 게 고작 이 정도의 수준에 불과하다는 사실은 무척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물론 이번에 주어진 기회를 오히려 잘 활용하자는 일각의 주장도 있긴 하다. "미중 관계에서 일본 변수가 더 커졌고, 동북아 패권을 둘러싼 중일 간 대립이 심해지게 됐기에 우리가 중간에서 기민하게 매개 역할을 하며 외교적 공간을 넓히는 것이 가능하다"는 고려대 남광규 교수의 주장이 바로 그러하다. 

 

국립외교원 김한권 교수 역시 “이제 명시적으로 동북아에서 미국 일본 중국 모두로부터 전략적 신뢰를 얻는 국가는 한국밖에 없게 됐다. 동북아 긴장을 낮추기 위한 한국의 전략적 연결고리 역할이 더 중요해질 것이다”란 주장도 같은 맥락이다. 이들의 언급이 결코 틀린 건 아니다. 하지만 이러한 주장은 우리의 외교능력이 출중하다는 전제와 함께 지극히 긍정적인 관점에서 바라보는 시각일 테고, 현실에서는 중국과 미일 군사동맹의 대립구도가 과거에 비해 훨씬 예리해짐으로써 정부의 외교적 입지가 오히려 점점 줄어들고 있다는 점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연합뉴스

 

미일 군사동맹의 최종 목표는 다름아닌 중국 견제다. 북한 위협 억지를 명분으로 삼고 있는 한미 동맹이 그보다 관심을 덜 받고 있는 건 중국 견제에 비해 부차적인 사안인 탓이다. 어쨌거나 한미일 동맹의 한 축인 동시에 중국과도 공존을 모색해야 하는 우리로서는 과거보다 훨씬 힘겨운 외교전을 펼칠 가능성이 농후해졌다.


물론 북한의 위협에 대한 억지력 확보 차원에서 바라볼 때 일본의 안보법 제개정이 한반도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주장도 있다. 하지만 과거사에 대한 반성조차 않는 전범국 일본이 오히려 우리 땅 한반도에 자위대를 파병할 수 있게 된 사실은 여러모로 꺼림직하지 않을 수 없다. 아울러 호시탐탐 보통국가화를 노리고 있는 일본의 현재 모습 속에서는 다시금 군국주의의 부활을 꿈꾸는 듯한 끔찍한 형상이 어른거린다. 미국과 중국의 중간 지점 어딘가에 놓여 있던 균형추가 일본의 안보법 제개정으로 인해 우리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한쪽으로 기울어가는 모양새다. 이러한 결과가 기회로 다가오게 될지 아니면 또 다시 열강들에 의해 우리의 운명이 갈리게 될지 촉각을 곤두세우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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