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편린들

증오보다 용서가 아름다운 이유

새 날 2015. 6. 23.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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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7일 밤(현지시간) 미국 사우스캐롤라이나주 찰스턴에 위치한 한 흑인 교회에서 일어난 무차별 총기 난사 사건은 그야말로 충격이었습니다.  이 사고로 교회에서 성경공부를 하던 신자 9명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총을 난사한 범인은 백인우월주의자로 알려진 21세의 백인 청년 딜런 로프였습니다.

 

그로부터 이틀이 지난 19일의 일입니다.  로프의 보석 여부를 결정하는 약식 보석 재판정에는 희생자 가족들이 앉아 있었습니다.  가해자에게 직접 얘기할 기회를 주는 사우스캐롤라이나주의 관례에 따른 겁니다.  피해자 유가족들은 한 명씩 나와 차례로 범인에게 말을 건넸는데요.

 

 

"나에게서 가장 소중한 것을 앗아갔습니다. 엄마와 다시는 얘기를 나눌 수도, 엄마를 다시 안을 수도 없지만, 당신을 용서합니다. 당신 영혼에 자비가 깃들기를 빕니다. 당신은 나를 아프게 했어요. 다른 많은 사람을요. 하지만 저는 당신을 용서합니다."

 

"당신은 내가 알고 있는 가장 아름다운 사람들을 죽게 했어요. 내 살점 하나하나가 다 아픕니다. 이제 우리 모두 예전처럼 살아가지 못하겠죠. 하지만 당신을 용서합니다. 당신 영혼에 신의 자비가 깃들기를 바랍니다."

 

놀랍게도 그를 용서한다는 일성이었습니다.  그들의 목소리로부터는 슬픔을 애써 꾹꾹 눌러담은 흔적이 역력한 터라 더없이 가슴 절절한 느낌이었습니다.  자신의 피붙이를 잔인한 방법으로 살해한 범인을 바로 눈앞에 두고서도 어떻게 용서한다거나 심지어 자비가 깃들기를 바란다는 메시지를 전할 수 있는 걸까요.  저처럼 지극히 편협하며 이기주의적인 사람에겐 도저히 불가능한 일이 아닐까 싶은 상황인데요.  솔직히 저라면 그에게 저주 따위를 마구 퍼부었을 것 같습니다. 

 

ⓒYTN 방송화면 캡쳐

 

가해자는 '히틀러 만세'를 뜻하는 88이 적힌 티셔츠를 입고 백인 우월주의의 상징인 남부연합기를 든 채 포즈를 취하기도 했으며, 성조기를 불로 태우는 모습도 볼 수 있었습니다.  그가 만든 것으로 추정되는 웹사이트에는 백인 우월주의를 조장하는 2,500단어 분량의 선언문이 올려져 있었던 것으로 전해지기도 했습니다.  그는 이를 통해 "스킨헤드도 KKK도 없다. 다들 인터넷에서 떠들기만 한다. 누군가는 그것을 감행해야 하며 그것은 자신이 돼야 한다"라고 밝힌 바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흑인을 향한 증오범죄의 일단으로 읽히는 정황들입니다.  그의 표적은 비교적 명확했던 편입니다.  물론 그의 총구가 불특정다수를 향하긴 했으나 어쨌든 평소 흑인들에게 품고 있던 들끓던 증오심을 밖으로 내비친 결과물입니다.  이는 끔찍한 총기 난사로 귀결되고 말았습니다.  이렇듯 흑인들을 향한 증오를 가슴속에 한껏 품은 채 전혀 일면식도 없는 피해자들을 향해 무차별 총기 난사로 소중한 목숨을 앗아간 그에게 용서와 자비를 베푸는 모습은 제겐 놀라움이자 경외감으로 다가오기까지 합니다.

 

혹자는 이들이 기독교 신자들인 데다 실제 속마음은 전혀 다를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대중들에게 보여지고 있다는 점을 의식하고 이를 감춘 채 일종의 용서 코스프레를 벌인 행위라며 그들을 폄하할지도 모를 일입니다.  그러나 혹여 종교적인 목적 때문에 행해진 퍼포먼스이거나 비록 진짜 속마음은 겉으로 드러난 바와 다를지라도, 작금의 행위는 그 자체로 커다란 의미 부여가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가뜩이나 근래 인종 갈등 요소들이 부쩍 늘어나고 있는 추세에서 자칫 이를 더욱 부추기며 미국 사회의 안정마저 위협할 수도 있는 민감한 사안을 오히려 용서와 치유로 다가서는 성숙한 모습을 통해 반전을 꾀한 결과로 읽히기 때문입니다.

 

ⓒ연합뉴스

 

한 번쯤 입장을 바꿔 놓고 생각해 보는 건 어떨까 합니다.  만일 제가 피해자 가족이었다면 아마도 눈앞에 나타난 가해자를 향해 온갖 저주와 갖은 욕설 그리고 참을 수 없는 울분을 그 자리에서 폭발시켰을 것 같습니다.  어쩌면 그의 얼굴이 비친 모니터 화면을 때려 부쉈을지도 모를입니다.  이게 보다 솔직한 속내일 것입니다.  아주 사소한 일조차 쉽게 분노하고 작은 손해에도 이를 참지 못하는 저에게 있어 이들의 성숙하면서도 의연한 태도는 많은 부분을 생각케 하고 있습니다. 



우리 사회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싶습니다.  살짝 뒤틀린 이해관계에 의해 발생하는 작은 갈등 따위에도 우린 너무 쉽게 흥분하며 상대방을 업신여기려고만 하고 있습니다.  언젠가부터 아주 사소한 잘못조차 너그러이 받아들이지 못하는, 팍팍한 사회가 돼가고 있는 양상입니다. 

 

찰스턴 피해자 가족들의 이러한 담대한 행위를 두고 우리 언론들은 일제히 '위대한 용서'라는 타이틀까지 붙여가며 이를 전파하기 바쁩니다.  늘 좋지 않은 소식들로 인해 우울감이 잔뜩 더해지는 상황에서 일견 바람직스럽게 와닿는 모습입니다.  아무쪼록 찰스턴 총기 난사에 의한 희생과 아픔을 계기로 미국 사회에 여전히 만연한 인종 갈등의 해묵은 상처가 전부는 아니더라도 일정 부분 아무는 기회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아울러 이들의 용서와 자비 정신이 우리 사회에도 널리 전파되어 사회 구성원 서로간 치닫고 있는 반목과 갈등 치유에 작은 보탬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도 가져봅니다.  끝으로 찰스턴 피해자들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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