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편린들

자녀 체벌에 열광하는 미국인들을 보며

새 날 2015. 6. 19. 12:25
반응형

얼마 전 우연히 TV를 통해 보게 된 사연입니다.  벼농사를 생업으로 삼고 있던 한 농업인이 출연하여 이런 저런 고생담을 풀어놓는 예능 프로그램이었는데요.  진행자가 농사 짓는 일과 자식 키우는 일 중 어느 게 더 힘드냐고 묻자 그 농업인은 잠시 머뭇거리는 듯싶더니 씩 웃으며 애들 키우는 일이 훨씬 힘들었다고 합니다.  그의 웃음 뒤엔 무언가 씁쓸함 따위가 배어나오고 있었는데요.  나름 예리한(?) 제 눈이 이를 놓칠 리가 만무합니다.  저 역시 자식을 키우는 사람으로서 이분의 말씀에 백번 공감하는 입장입니다.

 

애를 키우다 보면 가끔 체벌을 통한 훈육이 필요한 경우가 있습니다.  물론 체벌 없이 제대로 된 교육이 가능하다면 그보다 좋은 방식은 없을 겁니다.  그렇지만 체벌 효과에 대한 의견은 여전히 분분하기에 이에 대해 마냥 찬성하거나 반대할 수만은 없는 입장입니다.  다만, 미국을 비롯한 주요 선진국에서는 '교육'이라는 이름으로 행해지는 자녀에 대한 체벌조차 바람직스럽지 않게 바라보는 시각이 우세한 듯합니다.  세계 최초로 어린이에 대한 체벌을 법으로 금지시킨 스웨덴을 비롯, 일부 유럽 국가들은 자녀체벌금지법을 시행해 오고 있기도 합니다.

 

한편 미국에서는 최근까지 자녀 체벌과 관련한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자신의 자녀를 꾸짖으며 매로 때려 아이의 몸 곳곳에 상처를 입힌 유명 프로미식축구리그의 한 선수는 지난해 아동 학대 혐의로 기소되기도 하였습니다.  이를 기화로 자녀 훈육을 위해 매를 드는 것이 과연 바람직한가를 놓고 미국 사회가 뜨겁게 달아오른 바 있습니다.  하지만 미국 사회의 여론은 대체로 부모가 원하는 형태로 만들기 위해 아이들을 때려서는 안 된다는 게 중론인 듯합니다.  결국 체벌이란, 교육과 아동 학대 사이 어느 지점에 위치해 있는 것만은 틀림없습니다만, 정확한 위치를 찾는 일은 사실 전문가에게조차 쉽지 않은 일인 듯싶습니다.

 

ⓒSBS 방송화면 캡쳐

 

이 때문일까요?  미국 볼티모어 폭동 당시 시위대에 합류했던 아들을 끌어내 공개적으로, 그리고 인정사정 없이 뺨을 때리며 훈육했던 엄마가 TV 전파를 탄 일이 있었는데요.  이후 이른바 '앵그리맘'이라 불리는 이 여성의 행동을 두고 볼티모어 경찰국장이 "자기 아들을 책임질 줄 아는 부모가 더 많으면 좋겠다"고 치켜세웠고, 그러자 이 훈계 장면은 온라인을 통해 삽시간에 퍼져나갔으며, 그녀는 졸지에 국민적 영웅이 되었습니다.  대중들의 열화와 같은 박수 갈채를 이끌어낸 것입니다.  심지어 워싱턴포스트 등이 선정한 '올해의 엄마'로 등극하는 기염을 토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뿐 아닙니다.  열세 살에 불과한 딸이 속옷 차림인 자신의 사진을 SNS에 올리자, 이를 발견한 엄마가 딸에게 "너 미쳤니. 왜 이런 짓을 하는 거야"라며 적나라하게 망신을 주거나 딸의 약점을 있는 그대로 폭로하면서 야단치는 동영상을 페이스북에 게재한 사례도 있었습니다.  대중들은 이 장면에서도 환호하였습니다.  "당신 같은 부모가 많아져야 한다"며 열광하고 또 열광한 것입니다.  이들 앵그리맘에게 찬사가 쏟아지는 이유는, 자식에 점점 관대해져가는 미국 사회에서 엇나가거나 잘못을 저지르는 아이들을 어떻게 다루며 바로잡아야 하는지 이들이 해법을 제시해 준 셈이고, 그에 따른 대리 만족을 느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렇지만 이들 엄마가 미국 사회의 영웅이 된 대가로 정작 그녀의 자녀들은 어떠한 영향을 받게 될 것인지 촉각을 곤두세우지 않을 수 없습니다.  아이들이 자신의 체벌 장면이 만천하에 공개되면서 입게 되었을 모욕감과 수치심 그리고 상처 입은 자존감은 어찌해야 할까요?  교육 전문가들에 따르면 아이에 대한 체벌은 아이를 공격적으로 만들고 폭력적으로 변화시킨다고 합니다.  미국 듀크대 연구팀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자녀 체벌은, 특히 어릴수록, 아이의 공격성과 함께 심지어 아이큐마저 저하시킨다고 하는데요.  체벌에 관대한 국가의 아이들이 체벌을 금지하는 국가의 아이들보다 평균 아이큐가 낮은 것이 이를 입증하고 있습니다.

 

 

체벌 자체도 문제입니다만, 앵그리맘들처럼 자녀의 체벌을 대중들에게 공개하는 수치심 유발 방식은 더욱 커다란 문제점을 야기할 수 있는 사안입니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이들처럼 감정적으로 건드리는 체벌 방식은 신경계를 자극하고 결국 뇌에 부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고 보고 있기 때문입니다.  결국 마땅한 훈육 방법이 없어 아이들 교육에 늘 혀만 끌끌 차던 미국 사회의 부모들에게 이들 앵그리맘이 대리만족감을 제공해 주었을지는 몰라도 이와 같은 훈육 방식은 그녀의 아이들에게 있어 아울러 그밖에 그 누구에게조차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의미로 다가옵니다.

 

저도 가끔 아이들에게 체벌을 가하는 경우가 있습니다만, 체벌을 하는 부모는 보통 자신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모르는 경우가 허다하다고 합니다.  스스로 체벌을 의식하며 가하는 횟수보다 이에 무감각한 채 자신도 모르게 수시로 가해지는 체벌이 부지기수라는 의미입니다.  때로는 자신의 화풀이 대상으로 아이들에게 체벌이 가해지는 경우도 있습니다.  유니세프 보고서에 따르면 전 세계 60%의 아동이 정기적으로 매를 맞고 있다고 합니다.  체벌을 받은 아이들은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공격적인 행동을 띠며, 나쁜 습관을 드러내는 것으로 입증되고 있습니다. 

 

체벌, 때로는 불가피한 교육 방식이긴 합니다만, 적어도 이를 실행하기 전 아이에게 어떠한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인지 인지하고, 아울러 스스로가 체벌이라는 분명한 의식을 지닌 채 가해야 할 것으로 판단됩니다.  물론 교육 전문가들에 따르면 체벌 없는 교육이 가장 바람직스럽긴 하겠습니다만, 사람 사는 세상이 어디 이론에 의해서만 돌아가던가요?  때문에 말을 잘 듣지 않는 아이들에게 아주 가끔은 따끔하면서도 올바른 방식의 체벌은 필요악일지도 모를 일입니다. 

 

역시 아이 키우는 일은 앞서 TV 프로그램을 통해 한 농업인이 언급한 것처럼 쉽지 않은 일인 것만은 분명합니다.  미국에서 영웅 취급되고 있거나 논란거리가 되고 있는 앵그리맘들의 훈육 사례를 통해 우리 아이들의 체벌에 대해 잠시 고민하는 시간을 가져 봤습니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