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편린들

미군에 의한 탄저균 위험 노출, 방치해선 안 된다

새 날 2015. 5. 29. 1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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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군이 한국 정부에 통보 없이 살아있는 탄저균을 배송한 것으로 드러나 충격을 주고 있다.  정부는 지난 28일 미국 군 연구소로부터 주한미군 오산 공군기지로 탄저균이 잘못 배송된 사고와 관련하여 미국 측으로부터 관련 사실을 통보받았다고 밝혔다.  해당 탄저균은 물류업체인 '페덱스'를 통해 일반 화물과 함께 배송된 것으로 알려졌다.  문제는 주한미군이 살아있는 탄저균을 국내에 반입하면서 우리 정부에 이를 통보하지 않은 데다, 뒤늦게 통보받은 정부 역시 모든 사실에 대해 함구하고 있다는 부분이다. 

 

탄저균이란 탄저병의 원인이 되는 세균으로서 생물학 테러에서 흔히 쓰이는 병원균 중 하나다.  이는 피부 접촉이나 호흡, 오염된 식품 섭취 등을 통해 감염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탄저균의 독소는 혈액 내의 면역세포에 손상을 입혀 쇼크를 유발하고, 심하면 사망에 이르게 하며 가열이나 일광 소독제 등에도 높은 저항성을 갖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이에 감염될 경우 하루 안에 다량의 항생제를 복용하지 않으면 80% 이상이 사망할 정도로 위험천만하기 짝이 없는 질병 인자다.  탄저균 100㎏을 대도시에 살포할 경우 시민 100만에서 300만 명이 사망에 이른다고 하니 그야말로 공포스럽다.

 

ⓒ한겨레

 

지난 2001년 9.11 테러를 전후하여 미국에서 벌어진 테러로 인한 탄저균 공포의 실체를 우린 또렷이 기억한다.  탄저균이 우편을 통해 미국 정부와 언론에 배달되어 집배원과 기자, 병원 직원 등 5명이 숨졌으며, 17명이 치료를 받아야만 했다.  당시 미 의회에도 탄저균 편지가 배달되면서 미 상원이 의회 건물을 통째로 폐쇄하는 등 돌발 상황마저 발생한 바 있다.  이렇듯 국민의 안전과 생명을 충분히 위협할 수 있을 만큼 경악스러운 사건 앞에서 우리 정부는 미군 측이 통보하기까지 어떤 경로로 탄저균이 반입됐는지 그리고 어느 정도의 수준으로 위협적이었는지에 대해 아무런 설명이나 대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탄저균과 관련하여 도대체 어떠한 비밀이 숨겨져 있는지, 정부는 과연 이에 대해 알고 있기나 한 건지 아니면 아예 모르고 있는 건지 함구로만 일관하고 있는 탓이다.  실은 정황상 정부가 모르고 있는 게 분명 맞을 듯싶다.  왜냐하면 이토록 치명적이며 위협적이기까지 한 유해 물질을, 아무리 비활성화된 상태라 해도 특수한 방법으로의 배달이 아닌 일반 택배회사 중 하나인 '페덱스'를 통해 인천 공항으로 버젓이 들여왔다는 사실에 대해 전혀 인지하지 못한 대목에서 그러한 정황이 읽힌다.  만에 하나 그렇지 않고 사전에 인지한 사안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암묵적으로 그대로 방치한 것이라면 정부의 허술한 관리에 대해선 비난 받아야 함이 마땅하다.

 

현행 SOFA(주한미군 주둔군지위협정) 규정에 따르면, 살아있는 탄저균 반입의 경우 미군 측이 우리 정부, 즉 질병관리본부에 통보하기로 되어 있다.  하지만 문제는 모든 경우가 그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데에 있다.  이번 사건의 경우, 실은 활성화된 탄저균이었으나 비활성화된 훈련용 탄저균으로 인지된 탓에 미군 측에서 통보하지 않았던 것으로 전해진다.  바로 이 부분에 치명적인 문제점이 도사리고 있다.  혹여 비활성화된 탄저균이라 해도 엄연히 살아있는 세포이거늘, 이는 곧 언제라도 활성화시킬 수 있다는 의미가 되기에 제아무리 당장의 위험 인자가 없는 물질임에도 불구하고 활성화된 탄저균과 똑같은, 특별한 방식으로 취급되었어야 함이 옳지 않겠는가.  당장 SOFA 관련 항목의 개정이 절실해 보이는 대목이 아닐 수 없다.  그래야 비슷한 사례를 막을 수 있다.



미군 측은 배양실험 중에 탄저균이 살아있었던 것으로 확인하여 유해물질 관리팀을 소집해 즉각 시설물을 차단했다고 밝혔다,  아울러 미국질병통제예방센터 규정에 따라 탄저균을 전량 폐기 처분했단다,  훈련 참가 요원들을 검사한 결과, 모두로부터 감염 증상이 나타나지 않았으며, 일반인들은 위험에 전혀 노출되지 않았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미국이나 주한미군 측은 반입경로나 시점, 구체적인 실험 내용, 폐기 방법 등에 대해서는 충분한 설명을 내놓지 않고 있다.  탄저균 표본이 살아있었다는 것을 인지한 시점도 공개 않고 있다.  따라서 이들의 발표를 전적으로 신뢰하기엔 의심스러운 대목이 한 두가지가 아니다.

 

그동안 얼마나 많은 양의 탄저균이 우리나라로 반입돼 왔는지 알 수조차 없는 건 주권국가로서 자존심 상하는 문제가 아닐 수 없다.  미군 주둔기지가 법상으로는 미국이라 해도 엄연히 우리의 영토이거늘, 국민의 생명과 안전보다 더 중요한 게 과연 존재하긴 하려나 모르겠다.  북한의 위협에 맞서 방어 체계를 꾸리는 일, 물론 반드시 필요하기도 하거니와 매우 중요한 사안이다.  실제로 탄저균 반입 목적이 북한에 맞서기 위한 실험인지의 여부는 우리로선 알 수가 없지만 말이다. 

 

어쨌거나 모르쇠로 일관한 채 우리 영토에서 버젓이 벌이고 있는 탄저균 따위의 세균전 실험에 대해선 이미 세간에 알려진 만큼 더 이상 용납하기가 어려운 노릇이다.  최악의 경우 그와 같은 행위를 묵인할 수밖에 없는 처지로 몰린다 해도, 적어도 실험이나 훈련 내용 전반에 대해 우리와 공유해야 함은 지극히 당연하다.  위험천만하기 짝이 없는 실험을 우리 정부와 국민이 모른다는 게 도대체 말이 될 법한 일인가.  정부와 미군은 이번 사태의 전모에 대해 명명백백하게 밝혀야 할 것이며, 문제가 되거나 위협적인 요소에 대해선 모두 제거해야 함이 옳다.  필요하다면 SOFA 개정을 통해서라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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