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편린들

노인 연령 상향 제안, 왜 지금인가

새 날 2015. 5. 28. 1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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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노인회가 최근 노인 연령을 현행 65세에서 70세로 인상하는 방안을 제안하였습니다.  이들 조직은 복지 혜택을 누리고 있는 당사자이기에 다른 그 어떤 세력이나 집단에서의 제안보다 상당한 파급 효과를 불러오리라 점쳐지고 있는 탓에 미묘한 파장마저 일으키고 있습니다.  저조차도 이 소식을 처음 전해 듣고선 하필 왜 이 시점에서 이러한 제안을 했을까 하는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기가 어려웠습니다.

 

 

아니나 다를까요.  새누리당에서는 이번 제안에 대해 적극 환영의 뜻을 표해 왔습니다.  새누리당 유승민 원내대표는 27일 열린 최고중진연석회의에서 "우리 사회에서 굉장히 중요한 제안이라고 생각하며, 진심으로 높이 평가하고 존경의 말씀을 드린다"고 말하였습니다.  뿐만 아닙니다.  이른바 보수라 일컫는 언론들마다 일제히 환영 일색의 논평과 기사를 쏟아내놓고 있습니다.  이를 기화로 노인 연령 인상을 공론화해야 한다며 한껏 목소리를 높이고 있는 실정입니다.

 

물론 의료기술의 발달과 생활 여건의 개선으로 평균수명이 점차 늘어나는 추세인 데다 고령화로 치닫고 있는 우리 사회이기에 노인 연령의 기준을 한 번쯤 재정립해야 할 필요성이 있다는 데엔 저 역시 공감하는 입장입니다.  가장 비근한 사례로는 지하철 무임 승차 기준 연령을 들 수 있습니다.  신체 건강한 노인이 넘쳐나는 상황에서 이의 혜택을 받는 인구가 갈수록 늘다 보니 서울메트로 등 지하철 회사의 만성적인 적자 문제나 심지어 세대 간 갈등으로까지 비화되는 등 수많은 문제점들이 노정되고 있어 최근 이의 기준을 상향 조정해야 한다는 주장이 점차 설득력을 얻고 있는 추세입니다.

 

노인 연령 기준 상향 공론화는 사실 정치권이나 정부에서 끄집어내야 할 사안입니다만, 여권이든 야권이든 한 표라도 아쉬운 상황인 탓에 그 누구도 이를 섣불리 꺼낼 수 없는, 일종의 뜨거운 감자였던 셈입니다.  그런데 의외로 복지 혜택의 수혜 당사자인 대한노인회가 스스로 이러한 제안을 해 왔으니, 늘 기득권만을 좇는 우리 사회의 보편적인 세태에 반하는 행동으로 비쳐 어쩌면 이들에게 칭찬을 해주는 건 둘째 치고 의아한 시선으로 바라보게 됨이 지극히 당연한 노릇인 것 같습니다.  이의 제안 뒤에 무언가 정치적 배경이 존재하든 그렇지 않든 자신들의 기득권을 스스로 내려놓은 모습만큼은 충분히 박수 받을 만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MBC 방송화면 캡쳐

 

그러나 노인 연령 인상은 생각보다 그리 단순하지만은 않다는 데에 문제의 심각성이 있습니다.  모두가 알다시피 우리나라의 노인 빈곤율은 OECD 1위로 알려져 있습니다.  단순히 한 해로 그치는 게 아니라 매년 1위를 하고 있다는 건 더욱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아울러 이와 밀접할 수밖에 없는 노인 자살률 역시 세계 1위입니다.  노인 빈곤율이 50%에 달하는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복지 혜택은 턱없이 부족하기만 합니다.  최근 통계에 따르면 국내 근로자들의 평균 퇴직 연령은 52.6세입니다.  하지만 체감 퇴직연령은 48세에 불과하며, 실상 사오정이란 단어가 오히려 더욱 정확한 느낌으로 다가올 만큼 우리의 현실은 갑갑하기만 합니다.

 

만에 하나 노인 연령 기준을 70세로 인상하게 될 경우 국민연금과 기초연금 등의 수혜도 자동적으로 그에 맞춰질 테니, 고령층의 일자리는 턱없이 부족한 상황에서 50세 가량이 되어 정년퇴직 후 대다수의 퇴직자들이 무려 20년 가까이 소득이 전무한 상태에서 생활하게 될 공산이 큽니다.  이는 무엇을 의미하는 걸까요?  노년이 축복이 아니라 고통으로 다가오는 순간입니다.  가뜩이나 노인 빈곤율이 높은 상황에서 이를 더욱 악화시킬 소지가 다분하다는 의미입니다.  더불어 노인 자살률 역시 더욱 늘어날 수밖에 없는 구조입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예측이 비단 남의 얘기에 불과한 걸까요?  전혀 그렇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가까운 미래에 내 자신 그리고 당신의 일이 될 수도 있는 문제입니다. 

 

노인 연령 인상이 현실화되어 현재 65세 이상 노인을 대상으로 한 지하철 무임 승차, 고궁 박물관 무료 입장 등의 경로우대 혜택마저 그에 따라 늦춰지는 건 부차적인 문제에 불과합니다.  정작 공포스럽게 다가오는 건 65세에서 70세로 5년을 늦출 경우 발생하게 될 복지 공백 상황입니다.  현재의 얄팍한 노인 복지 혜택 기준에서 보자면 지금보다 더욱 많은 노인들을 빈곤의 늪에서 허우적거리게 만들 가능성이 높기 때문입니다.  



정부에서는 노인 연령이 70세 기준이 될 경우 연간 2조5천억에서 3조원 정도의 재정 절감 효과가 있을 것이라 전망하고 있습니다.  새누리당이 대한노인회의 제안에 적극 환영하고 또한 보수 언론이 화력 지원을 하는 데는 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는 것이라 짐작됩니다.  현재 정치권에서는 공무원연금개혁안과 관련하여 타결을 앞두고 막판 협상이 진행 중에 있습니다.  대한노인회가 노인 연령 인상 방안을 제시하며 스스로가 기득권을 던졌노라는 이미지를 심은 이상, 이는 정부와 집권 여당에 힘을 실어주는 모양새가 되는 셈이기에 결국 어떤 식으로든 여권과 정부에 유리하게 작용할 가능성이 큽니다.  

 

노인 연령 인상에 대한 공론화는 지금 당장이 아니더라도 언젠가 한 번은 반드시 필요한 일입니다.  다만, 이번 대한노인회의 제안은 시점 내지 정황상 다소 정략적으로 비치는 데다 청년 실업, 고령층 일자리, 정년 연장 문제나 세대 간 갈등 그리고 복지 등 이와 관련한 얽히고 설킨 여러 사회적 현안들이 해결되지 않은 상황에서 무턱대고 노인 연령 기준을 높이자며 덤벼드는 일은 그다지 바람직스럽지 않아 보입니다.  재정 절감 효과를 대가로 노인들을 희생양 삼는 우를 범하여선 절대로 안 될 노릇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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