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편린들

우리 정치 민낯 드러낸 '노무현 추도식'

새 날 2015. 5. 25. 1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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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3일 김해 봉하마을에서 거행된 고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6주기 추도식은 여러모로 아쉬움이 컸던 행사다.  특히 이날 일부 참석자들의 행동은 우리의 정치 현실을 고스란히 드러낸 듯 몹시도 씁쓸했던 광경이 아닐 수 없다.  일부 참석자들은 반대 진영인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에게 "왜 왔냐"며 욕설을 퍼붓거나 물을 뿌리기도 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뿐만 아니다.  야권 인사 일부에 대해서도 불편한 속내를 숨기지 않았던 것으로 드러났다.  내빈으로 초대된 김한길 전 대표와 박지원 전 원내대표, 안철수 전 공동대표, 천정배 의원 등 이른바 '친노'로 분류되지 않은 인사가 소개될 때 일부 참석자들이 야유를 보내거나 욕설을 퍼붓고 심지어 물을 뿌리기도 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진영과 노선 앞에선, 우리 정치에 있어 응당 필요해 보이는 포용과 관용 따위의 모습은 온 데 간 데 없었다.

 

ⓒ민중의소리

 

특히 노건호 씨의 추도사 중 김무성 대표를 향한 돌직구는, 비록 틀린 말이 하나도 없는 데다 사이다처럼 시원한 청량감을 잠시나마 대중들에게 선사해 주었을지언정, 향후 어떤 식으로든 정치적 논란의 빌미가 되리란 건 불을 보듯 뻔한 노릇이라 안타까운 대목이 아닐 수 없다.  후에 언급된 얘기지만, 실은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가 사전에 참석한다는 연락이 없었고, 무려 10대의 버스 한 가득 경찰 병력을 동원한 채 불청객으로 추도식에 참석했다는 전언이다.  하지만 어쨌거나 김무성 대표 역시 추모의 뜻을 비치기 위해 참석한 손님 중 한 명임을 부인할 수는 없는 노릇일 테다. 

 

반대 진영에 의해 아버지를 잃고, 이후에도 반성은커녕 계속해서 고인을 능욕해 온 그들에게 노건호 씨가 자식된 도리로써 날린 직격탄은 어쩌면 너무도 정제돼 있는 듯 보여 오히려 내겐 한없이 안쓰러우며 씁쓸한 감정으로 다가온다.  그의 내재된 울분이 정제된 표현 틈으로 자꾸만 고개를 빼꼼히 내밀고 있는 느낌으로 와닿는 탓이다.  만일 내가 그였다면, 애비 잃은 아들의 입장에서 그야말로 피를 토하는 심경으로 백배 천배, 아니 그 이상의 훨씬 강력한 방식으로 응징에 나서지 않았을까 싶다. 



그러나 속마음이야 어떻든, 혹은 정치적 입지를 다지기 위한 퍼포먼스였든 그렇지 않든, 그리고 사전에 연락을 취하지 않은 불청객이었건 간에 어쨌거나 그 역시 추모를 위해 방문한 손님 중 한 사람임엔 틀림없다.  그가 비단 여당 대표라고 해서가 아니다.  극진히는 아니더라도 추도식을 개최하고 이에 성실히 임해야 하는 객이 아닌 주인으로서, 추도식을 찾은 손님들에게 충분히 예를 표할 필요성이 있다는 의미다. 

 

노건호 씨의 예측 불허 돌직구와 일부 참석자들의 불편한 행동은, 실체가 불분명한 '친노'니 '비노'니 하는 계파 따위를 대중들로 하여금 자칫 기정 사실로 받아들이게 만들 개연성마저 높인다는 점을 간과해선 안 될 테다.  이렇게 될 경우 가뜩이나 혼돈 속에서 허우적거리고 있는 제1야당은 국민들로부터의 차가운 외면에서 벗어날 길이 더욱 아득해진다.  제아무리 혁신위원장을 새로 내정하여 계파 청산과 공천 혁신 등을 꾀한다 한들 이의 효과마저 반감될 가능성이 높다.  반대 진영의 '친노'니 '비노'니 하는 프레임을 전제로 한 야권 흔들기 공격은 벌써부터 시작됐다.  추도사 작성의 배후로 이른바 '친노'를 지목하며 이들 죽이기에 사활을 건 모양새다. 

 

25일자 조선일보 1면

 

아울러 이러한 행위들은 김무성 대표의 입지만 더욱 공고히하는 결과가 될 공산이 커졌다.  김 대표는 이번 일에 대해 말을 아끼고 있지만, 실은 속으로 쾌재를 부르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를 향한 거부감이 커져갈수록 그에 비례해 상대적으로 인기와 위상의 외연이 커지고 있다는 상징적인 의미가 될 터이기에 외려 그는 이를 즐기고 있는 모양새다.  5.18 기념식에서의 물 세례와 노무현 추도식에서의 물 세례 및 노건호 씨의 돌직구는 그에게 동정적인 시각마저 작용하며 지지세력을 결집시키는 자양분으로 작용하고 있다.  이쯤되면 반전 아니겠는가.

 

나 역시 노무현 대통령을 좋아하고 존경하는 한 사람으로서, 지지자들의 치솟는 분노를 모르는 바는 아니다.  세월이 흐르면 이러한 분노가 가라앉을 줄 알았으나 반성은커녕 오히려 고인을 이용해 권력 유지에 혈안이 된 그들을 보고 있자니 다른 이들과 마찬가지로 속에서 천불이 올라온다.  더구나 작금의 정치적 지형은 전형적인 기울어진 운동장이 아닌가.  유리한 고지를 점한 쪽에선 자꾸만 반칙을 범해 오고 있는데, 반대 진영에서만 원칙을 고수하라고 하기엔 지나치도록 불공평한 현실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그렇다고 하여 이러한 방식의 분노 표출은 그 누구에게도 이로울 게 없다.  살아 생전 국민 통합과 지역주의 타파에 오롯이 헌신해 왔고, 누구도 원망 말라며 마지막 유언을 남겼던 고인 역시 절대로 이러한 결과를 바라지는 않았을 테다.  '노무현 추도식'을 통해 우리의 후진적인 정치 현실의 민낯이 고스란히 드러난 데다, 여권은 또 다시 이를 정쟁의 빌미로 삼으며 과거의 좋지 않았던 정치적 관행을 답습하는 모양새로 읽히는 상황이라 씁쓸하기 짝이 없다.  우리 정치는 아무리 시간이 흘러도 결코 변할 줄을 모르는 느낌이다.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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