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편린들

대학축제, 바람직하거나 씁쓸하거나

새 날 2015. 5. 22. 11:30
반응형

대학가가 축제 열기로 한창 뜨겁습니다.  그런데 각 학교 단위의 축제 때마다 논란이 돼 온 단골 손님들이 있습니다.  다름 아닌 학교 내 주점 운영 등 음주문화의 폐해와 인기 아이돌 가수 초청과 같은, 지나치게 상업적으로 흐르는 분위기입니다.  그 중에서도 특히 학교 내 주점 운영은 음주로 인한 직접적인 피해뿐 아니라 선정적인 호객 행위 유발 등 학생 신분과는 전혀 어울릴 법하지 않은 부차적인 문제로까지 이어질 정도로 뒷말이 무성한 이슈 중 하나입니다.

 

지난해 이맘땐 세월호 참사로 인해 대부분의 대학에서 축제를 취소하거나 연기하는 바람에 가을이 되어서야 축제를 볼 수가 있었습니다.  당시 축제는 두 갈래의 전혀 다른 성향으로 나타났는데요.  하나는 세월호 참사를 추모하는 분위기였고, 다른 하나는 마치 술집 종업원을 연상케 할 정도의 선정적인 옷차림으로 호객 행위를 일삼아 눈살을 찌푸리게 했던 극과 극의 분위기가 주를 이뤘습니다.  축제 때만 이러한 의상을 입는 것도 문제가 되느냐 라고 하거나 아울러 개인의 의지에 의한 행위에 대해 왜 왈가왈부하느냐는 학생들의 항변이 있긴 했지만, 어쨌든 대다수의 사람들은 대학가의 자성을 바라는 눈치가 컸던 것만큼은 분명합니다.

 

올해 역시 크게 달라지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인기몰이 중이던 아이돌 가수를 무더기로 초청하여 이의 입장권을 웃돈 받아 챙기는 등 축제가 상업적인 수단으로 전락하기 일쑤고, 젊음과 낭만이 넘실거려야 할 캠퍼스는 어느새 가수들의 콘서트장으로 변모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보다 저를 더욱 놀라게 만든 이미지 한 장이 있는데요.  한 번 보실까요?

 

ⓒ헤럴드경제

 

모 대학 축제 때 사용될 술을 배급하기 위해 쌓아둔 모습이랍니다.  그야말로 장관이 아닐 수 없습니다.  소주와 맥주를 합쳐 무려 3만병이나 된다더군요.  이토록 많은 술들이 단 며칠 간 진행되는 한 대학교 축제에서 모두 소비된다는 의미입니다.  놀랍지 않은가요?  우리 사회의 음주문화가 세월이 흘러도 전혀 변함이 없는 건 이렇듯 학생 때부터 익혀 온 음주 패턴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에까지 미치게 됩니다.

 

그렇다고 하여 대학 축제를 통해 이러한 우울한 소식만 전해지고 있는 건 아닙니다.  대학 축제의 최대 병폐 중 하나인 음주문화에 대해 학교 측과 학생들의 자성 움직임이 보이고 있는 탓입니다.  19일부터 봄 대동제를 시작했던 한국외대 서울캠퍼스의 경우 교내 주점이 사라졌습니다.  학교 측은 “캠퍼스 내 면학 분위기 조성을 위해 주점 설치를 불허 한다”는 내용의 ‘교내 음주문화 개선 선언’을 의결한 바 있으며, 그의 일환으로 축제 때 주점을 허용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연세대 원주캠퍼스와 단국대 천안캠퍼스의 경우도 학교 측과 총학생회가 협의를 통해 축제 기간동안 교내 주점을 설치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의외로 학생들의 반응도 그리 나쁘지 않은 것 같습니다.  때마침 이에 대해 한 포털사이트가 설문조사를 벌였는데요.  무분별한 음주 문화 개선을 위해 대학 축제에서 주점이 사라져야 한다는 의견이 76%로, 그렇지 않다는 의견을 압도하고 있었습니다.

 

네이트 설문 화면 캡쳐

 

학교 내 주점 설치는 과다한 음주로 인한 1차적인 피해와 선정적 호객 행위 등 2차 피해를 양산할 수 있습니다.  아무리 축제 때만이라 하더라도 진리를 탐구해야 할 상아탑 내에 주점을 설치하는 행위 자체는 그다지 바람직스러운 모습이 아닌 것 같습니다.  축제 주점 퇴출은 비록 일부 대학에서 시작됐지만, 학생들과 일반인들의 뜨거운 호응으로 이어지게 된다면, 앞으로 대학가 전체로 확산될 가능성도 충분히 점쳐볼 수 있는 상황입니다.  숱하게 문제점으로 지적돼 온 이슈에 대해 학교 측과 학생 스스로가 개선하려는 의지를 내비치는 걸로 봐선 우리 사회의 앞날이 결코 어둡지만은 않은 것 같습니다.

 

한편, 모 여대에서는 총학생회가 축제 때문에 청소 노동자들이 설치한 파업 관련 현수막을 철거하여 뭇매를 맞고 있습니다.  총학생회가 학우들에게 남긴 글이 인터넷에 올라와 읽어 보았는데요.  요는 이렇습니다.  쾌적한 축제를 위해 청소 노동자들이 설치한 현수막을 학교 측과 노조 측에 철거해줄 것을 공식 요청하였으나 원하던 대로 일이 이뤄지지 않자 총학생회가 직접 이를 철거했다는 것입니다.

 

ⓒ한겨레

 

온라인에서는 온통 난리가 났습니다.  특히 다른 모 여대의 경우와 비교하는 글을 퍼나르기 하면서 논란이 일파만파 확산돼 가고 있는 중입니다.  급기야 해당 대학 졸업생들까지 나섰습니다.  졸업생 143명은 21일 성명서를 내고 "청소노동자들의 천막을 철거한 총학생회의 무책임하고 경솔한 처사를 강력하게 비판한다. 총학생회와 학교 측은 자신들이 겪는 불편함을 내세우며 청소노동자들이 피 토하는 심정을 담아 설치한 천막을 단순한 천 조각으로 여겼다. 청소노동자들의 파업을 단순히 '몇 백 원'의 돈의 가치로만 재단해 이들의 요구를 허공에 외치는 메아리로 만들었다. 이 문제의 근본적 책임이 있는 서울여대 총장과 학교 당국은 청소노동자 문제에 대해 적극적으로 나서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그렇다면 또 다른 여대의 학생들은 도대체 어떻게 행동했길래 이렇듯 비교가 된 채 네티즌들을 잔뜩 뿔나도록 만든 걸까요?  상황은 전혀 다르지만, 마찬가지로 축제 때 벌어진 일입니다.  이 학교 학생들은 청소 노동자분들과 함께 축제 기간동안 주점을 열어 이를 통해 얻은 수익금 전액을 이들 노동자들의 복지기금과 투쟁 기금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힘을 보태고 있었습니다.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비교해본 바로는 네티즌들이 뿔이 날 만도 하고, 졸업생들이 성명서를 낼 만도 한 것 같습니다.  이를 보고 있자니 최근 모 대학에서 벌어졌던 상반된 두 사건이 오버랩됩니다.  울산의 모 대학에서는 청소 노동자들이 처우 개선을 요구하며 1년 가까이 파업을 벌이다 학교에서 쫓겨나는 등 고충을 겪고 있지만, 학교와 학생들은 이들을 거들떠도 보지 않은 채 오히려 파업 관련 현수막을 칼로 찢는 등 망동을 일삼아 온 탓에 당황한 노동자들이 학생들에게 좀 도와달라고 하소연했던 일이 있었습니다.  ( 관련 포스팅 참조 : '명문'을 만드는 건 과연 무언가 )

 

반면, 인천의 모 대학 역시 청소 노동자들이 용역업체로부터 일방적으로 계약 파기를 당한 상황에서 이를 해결하기 위해 서울 캠퍼스로 상경하여 농성을 벌여오다 학생들의 동참과 도움으로 결국 일이 잘 풀린 사례가 있었습니다.  청소 노동자들은 학생들의 도움에 감사하는 대자보를 학교 구내에 붙였는데, 이 글이 널리 알려지면서 가슴 훈훈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특히 이들이 학생들에게 남긴 '명문은 학생들이 만들어 가는 것'이라는 한 줄의 문구는 잊혀지질 않습니다. 

 

 

앞서 언급했던 여대에도 이 문구가 그대로 통용되기엔 무리가 따르는 일임이 분명합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하여 전혀 아니라고 할 수도 없는 노릇입니다.  학풍 내지 교풍이란 건 결국 이렇듯 지극히 사소한 사건 하나 하나가 쌓여 완성되는 성질의 것일 테니까요. 

 

젊음과 낭만 그리고 싱그러움이 넘쳐야 할 대학 축제 문화가 소비 문화로 대체되고 있는 현실은 두고두고 아쉬운 대목입니다.  하지만 주점이 사라지는등 자정 노력이 엿보이는 건 그나마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지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아울러 그저 소비하며 흥청망청 놀기 위한 축제보다는 이왕지사 일년에 단 한 번만이라도 이를 통해 주변의 어려운 분들, 특히 학교 내 청소 노동자 등에게 따뜻한 관심을 기울일 수 있다면 더 없이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갖게 합니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