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편린들

서울시 공공자전거 보급에 앞서 살펴봐야 할 것들

새 날 2015. 6. 1. 1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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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가 내년 9월까지 공공자전거 2000대 신규 도입을 필두로, 공공자전거 보급 사업에 본격적으로 뛰어드는 모양새입니다.  언론보도에 따르면 시는 공공자전거 1차 도입분 2000대를 4대문 안과 상암, 여의도, 신촌, 성수동 등 5대 거점 150개의 무인 대여소에 배치하기로 하였으며, 2020년까지 2만대로 늘려나갈 계획이라고 합니다.

 

서울시 공공자전거 '따릉이'

 

무인 대여소를 도심 300m 간격으로 촘촘하게 설치하여, 자전거 천국인 선진 도시들처럼 자전거를 여가용이 아닌 생활 속 교통수단으로 정착시키겠노라는 야심찬 계획입니다.  이는 자전거를 출퇴근과 쇼핑 등 생활교통수단으로서의 활용에 방점을 찍기 위함인데요.  이를 위해 시는 주로 지하철역, 버스정류장, 아파트, 대학 캠퍼스 내에 이들을 집중 배치해 대중교통으로 손쉽게 환승할 수 있게 할 예정이라고 합니다.

 

무인 대여소에서 자전거를 빌리는 일도 비교적 수월해 보입니다.  스마트폰 앱을 이용해서 빌리고 반납할 수 있으며, 앱을 통해 무인 대여소의 위치, 자전거 대여 가능대수, 이동경로 등도 확인 가능하다고 합니다.  물론 스마트폰 없이도 회원카드 발급을 통해 이용 가능하다 하니 이용엔 그다지 불편함이 없어 보입니다. 

 

ⓒ중앙일보

 

실제로 서울시가 벤치마킹한 곳으로 알려진 미국 워싱턴이나 캐나다 몬트리올 그리고 프랑스 파리 같은 도시들을 살펴보게 되면 누구나 쉽게 빌리고 맡길 수 있는 공공자전거 시스템 덕분에 자전거가 도심 교통의 중요한 축이 되고 있습니다.  그에 비해 서울시의 자전거 교통수단 분담률은 꺼내 놓기가 부끄러울 만큼 미미한 수준에 불과합니다.  현재는 고작 2% 수준인 교통 분담률을 2020년까지 10% 수준으로 끌어올리겠다는 게 서울시의 복안입니다.  

 

그러나 이 제도의 시행에 앞서 먼저 살펴 봐야 할 것들이 있습니다.  현재의 도로 여건과 얕은 시민의식을 놓고 볼 때 이의 개선 없이 공공자전거를 도심에 풀어놓게 될 경우 서울시가 의도하는 것처럼 자전거 교통수단 분담률을 높이고, 더 나아가 걷기 좋은 도시로 탈바꿈 시키는 일이 실제로 가능하게 될 것인지는 예측하기가 쉽지 않은 노릇입니다.  

 

프랑스의 경우 공공자전거 정책 시행 이후 도심 차도에 갑자기 늘어난 자전거로 인해 자동차 운전자들이 기존의 자전거에 대한 인식을 새로이하게 되는 계기로 작용, 서로서로 조심하는 문화가 정착되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프랑스는 서울시와 근본적으로 많이 다릅니다.  도심에서의 차량 속도 제한이 우리보다 엄격한 편이라 서울에서처럼 높은 속도를 낼 수 없는 입장인 데다, 차도 또한 우리처럼 광활하지도 않은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에 반해 서울시의 넓은 차도와 비교적 높게 보장된 차량 제한 속도는 온전히 보행자 위주가 아닌 자동차 위주로 도심 계획이 짜여져 있음을 증명하고 있는 셈입니다. 



이렇듯 우리의 도로는 여전히 자동차 중심으로 이뤄져 있어 심지어 보행자조차도 제대로 보호를 받지 못하고 있는 상황인데, 자전거라고 하여 다를까 싶습니다.  지금도 자전거 운전자들은 위협 운전을 일삼는 자동차 때문에 차도를 달리지 못하고 있으며, 인도 위로 올라와 보행자에게 또 다른 위협으로 다가오고 있는 와중입니다.  때문에 우리의 시민의식과 도로 여건을 놓고 볼 때 공공자전거 보급은 오히려 가뜩이나 걷기 복잡한 서울 도심 속 인도 위를 혼돈의 도가니로 만드는 결과를 빚는 게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서울시가 최근 자전거 우선도로라는 실험을 통해 자동차 일색의 도시 문화에 변화를 꾀하고 있다는 건 익히 잘 알려진 사실입니다.  아울러 지자체와 함께 자전거도로 확충과 정비에도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는 사실 또한 이미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현실은 서울시가 생각하는 그것보다 훨씬 암울합니다.  한때 지자체마다 너도나도 시범 삼아 만들어놓은 자전거도로는 주차장을 방불케 하거나 노점상들에게 점유된 채 유명무실화된 지 이미 오래이기 때문입니다. 

 

ⓒ문화일보

 

얼마전 기사로 올라온 사진 한 장이 이러한 현실을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서울 광화문 앞 자전거도로에 관광버스들이 줄줄이 불법 주차돼 있어 자전거 이용은 언감생심에 불과할 뿐입니다.  그렇습니다.  이게 우리의 현실입니다.  자전거 보급을 활성화하여 자동차 이용을 억제하고 궁극적으로 걷기 좋은 도시로 탈바꿈하려는 서울시의 시도, 매우 좋게 받아들여지며 바람직한 실험임엔 틀림없습니다. 

 

그러나 왠지 일의 우선 순위가 뒤바뀐 듯한 느낌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우선 각 지자체에 설치된 기존 자전거도로를 정비하고 관리 감독을 철저히하여 실제로 자전거가 다닐 수 있게끔 환경을 조성해 놓는 일이 무엇보다 시급할 테고, 아울러 자동차의 시내 주행 속도를 현재보다 현저히 낮추어 차도에서도 실질적인 자전거 운행이 가능토록 여건을 조성해야 하는 게 우선 순위에 놓여야 함이 맞을 것 같습니다.  자동차 운전자나 일반 시민의 부족한 의식에 대한 제고 역시 함께 이뤄져야 하리라 봅니다.  일종의 소프트웨어인 자전거 보급은 이러한 하드웨어가 제대로 구비된 상태에서 이뤄져도 늦지 않다고 생각됩니다.  공공자전거 보급 사업의 본격 시행에 앞서 반드시 짚어 봐야 할 대목이 아닐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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