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저냥

손가락 작은 상처가 내겐 특별했던 이유

새 날 2015. 5. 3. 16: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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엇그제 집에서 빗자루를 이용해 쓰레기를 주워 담던 도중, 오른손 새끼 손가락이 어딘가의 모서리에 부딪히는 바람에 작은 상처가 생겼다.  약간의 고통이 수반됐지만 육안으로 봤을 때 별다른 외상이 없길래 괜찮겠거니 생각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부딪혔던 자리가 아파왔다.  여간 신경 쓰이는 게 아니었다.  자세히 살펴보니 피부 일부가 벗겨져 있었다.  그냥 두면 성가실 것 같아 약을 바르고 일회용 밴드로 감쌌다. 

 

오늘 아침에도 비슷한 일이 벌어졌다.  아이들 방 전등이 나갔다면서 아내가 새 형광등 하나를 가져왔다.  교체해 달라는 의미다.  난 흔쾌히 응하며 맛이 간 기존 형광등을 등으로부터 빼내려 시도했다.  그 순간, 금속으로 이뤄진 거치대에 내 오른손의 손가락 하나가 그만 부딪히고 만다.  아차 싶었으나 이미 늦었다.  이번엔 약지다.  물론 아팠지만, 이번에도 언뜻 보니 외상이 안 보이길래 우선 형광등 교체하는 일에 집중했다.  다 끝내고 나서 다친 부위를 확인해보니 살짝 찢긴 듯싶었다.  다행히 피가 나오지 않길래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휴일 아침은 우리집 대청소의 날이다.  난 진공청소기를 이용해 집안 구석구석 분주히 움직였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다친 부위가 아파 오는 게 아닌가.  아뿔싸 피마저 고이기 시작했다.  이번에도 그냥 둬선 안 될 것 같았다.  일회용 밴드로 또 다시 감쌌다. 

 

약지와 소지에 상처가 생겼다

 

실은 언젠가부터 사소한 일을 하던 중 쉽게 다치는 경우가 다반사가 됐다.  주의력 결핍인 탓도 한 몫 하겠지만, 그보단 분명 다른 이유가 있을 듯싶었다.  상처가 왜 생겼는지 알 수 있었던 건 그나마 다행이라 여겨진다.  웬만한 상처들은, 언제 어디서 어떻게 발생했는지 전혀 눈치챌 수 없을 만큼 부지불식 간 발생하기 일쑤였기 때문이다.  아내에게 이와 같은 현상에 대해 말했더니 자신의 손을 보여준다.  오늘 내가 다친 상태와 비슷한 상처가 손가락에 아로새겨져 있었다.  

 

내가 겪고 있는 현상이 아내에겐 이미 일상이란다.  즉 자신도 모르는 상황에서 상처가 발생하는 경우가 흔하고, 아주 사소한 작업을 하다가도 쉽게 다치곤 한단다.  물론 예전엔 결코 겪을 수 없었던 현상이란 것까지 나의 경험과 똑같았다.  우리 부부, 날이 갈수록 총기가 떨어지며 건망증이 심해지더니, 어느새 덤앤더머와도 같은 행동을 함께하기 일쑤였는데 이젠 몸마저 그리 돼 가는 느낌이다.



결코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이 또한 노화 현상의 하나로 받아들여진다.  우리가 늙고 있다는 신호를 신체 스스로 자꾸만 보내오고 있는 것이다.  이는 젊은 시절과 견주어볼 때 신체 활동이 월등히 떨어지는 데다 운동 반응 신경마저 둔해지니 자신도 모르는 사이 작은 움직임에서조차 예전과 같은 민첩성이 부족하여 빚어지는 현상 중 하나가 아닐까 싶다.  아내나 나나 공히 느끼는 바다.


비단 손가락이 아니더라도 자주 사용되는 신체 부위에 조그만 상처라도 발생하는 날엔 일상 생활을 영위하는 데 있어 여간 신경 쓰이는 게 아니다.  더구나 예전과 달리 이젠 상처가 잘 아물지 않는 느낌마저 있지 않은가.  젊은 시절에 비해 세포 분열이 왕성하지 못해 빚어지는 현상일 테다.  물론 이를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이 전혀 없는 건 아니다.  예전보다 더욱 몸 조심을 하면 될 일이다.  일례로 청소를 하거나 형광등을 교체하는, 무척이나 사소한 작업에서조차 장갑을 끼는 행위는 상처 발생으로부터 우리 몸을 보호해주는 역할을 톡톡히 할 테다. 

 

어르신들의 몸 동작이 조심스러워 보이는 이유는, 물론 신체 반응 속도가 떨어지고 골격과 근육이 예전 같지 않아 나타나는 현상 중 하나겠지만, 아마도 나이가 들어갈수록 내가 겪고 있는 현상과 비슷한 경험이 비일비재해지다 보니 이에 대한 방어 기제로 자연스레 발현되는 행동이 아닐까 싶다. 

 

손가락 다치는 일이야 사실 흔하디 흔한 현상인 데다 극히 사소한 일이기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할 일이라곤 딱히 없을 것만 같다.  하지만 앞서의 이유 때문에 최근의 상처가 내겐 그 어느 때보다 특별한 의미로 다가온다.  난 아파서 그랬다기보다 연이어 발생한 상처에 짜증이 올라오는 데다 아이들과 아내 앞에서 멋쩍기도 하여 괜시리 딴청을 부렸다.  아내에게 투덜거린 것이다.  "아이들 일은 이제 아이들 스스로 할 때도 되지 않았나.  이런 것까지 내가 일일이 봐주게 되면 아이들이 직접 할 수 있는 일이 뭐가 있겠어"  곁에서 나의 말을 잠자코 듣고 있던 아내는 무슨 연유에서인지 그저 빙그레 웃고만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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