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저냥

아내의 눈꼬리가 내려가게 된 사연

새 날 2015. 3. 16. 1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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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가 식구들이 모처럼 한 자리에 모였다.  아직 봄꽃 소식은 요원하다.  그 대신 웃음꽃과 이야기꽃으로 만개했던 하루다.  과거 얘기들이 주를 이뤘다.  곁에서 가만히 듣고 있노라면 언젠가 했던 이야기가 틀림없는데, 이를 또 다시 반복하고 재차 반복하는, 덕분에 무한루프에 빠져든 느낌이었다.  자꾸 얘기해도 재미있는 모양이다.  나이가 들수록 살아가는 방식은 각기 다르더라도 누구나 과거 지향형의 인간이 되어간다던데, 실제로 그런 게 아닐까 싶을 만큼 옛날 얘기로 여념이 없었다.  이렇듯 우린 과거를 소비하며 어느덧 추억 속으로 빠져들고 있었다.

 

그런데 수많은 이야기 중 내 귀를 번쩍 트이게 할 만한 소재거리가 큰 처제의 입으로부터 흘러나왔다.  결혼하기 전 아내에 대한 얘기였다.  처녀시절 아내의 성격은 무척이나 쌀쌀맞은 데다 눈꼬리마저 위로 올라간 덕분에 매우 사나운 인상이었으나, 나와 연애를 시작하면서부터 어느새 눈꼬리가 아래로 처지면서 부드러운 인상으로 변모했단다.  물론 성격 역시 상당히 유해졌단다.

 

사실 나와 아내는 같은 회사, 같은 사무실에서 연을 맺은 사이이다.  대학생일 경우 흔히 학내 커플을 우린 'CC'라 칭하고, 당시 우리가 몸담았던 업계에선 사내 커플을 '대체빵'이라 부르곤 했다.  그렇다.  우린 사내 커플이었던 셈이다.  당시 내 눈에 아내의 성격은 똑 부러질 만큼 똑순이로 비쳤다.  일에 관한 한 완벽하게 처리하는 대신 이성에겐 항상 쌀쌀맞게 비치는, 일종의 까칠녀 내지 도도녀였던 셈이다.  그래서였을까?  나를 비롯한 남자직원들에게 무척이나 쌀쌀스레 대하던 그녀였던 터라 실제로 당시 눈꼬리가 올라간 것처럼 느껴지긴 했던 것 같다.



그러나 나와 연애를 시작한 이래 그녀의 까칠했던 성격은 커다란 변화의 흐름을 맞이하게 된다.  천지가 개벽하는 순간이자 도도한 역사의 물줄기가 바뀌는 그러한 찰나였다.  주변으로부터 사람이 변했다라는 말들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덕분에 날카로웠던 인상도 점차 유해지는 듯싶었다.  당시 난 이를 몸소 체험했던 터라 처제가 한 말이 결코 빈말이 아님을 잘 알고 있다.  그랬다.  지금도 마찬가지일 거라 믿어 의심치 않지만, 나와 연애하던 시절 그녀는 진짜로 날 사랑하고 있었던 거다.  사랑에 빠진 여자는 얼굴이 꽃처럼 환해진다는 말을 듣긴 했지만, 바로 아내가 그러했기 때문이다.

 

"맞아 언니는 나를 만나면서부터 인생 자체에 꽃이 피기 시작한 거야" 라며 난 처제에게 더욱 너스레를 떨었다.  다른 표현을 빌리자면 일종의 자뻑이었다.  처제는 맞장구를 치며 깔깔거렸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 보면 아내나 나나 서로 간에 부족함을 채워주는 존재인 것만은 분명한 듯싶다.  나 역시 까칠하기로 따지자면 아내 못지 않다.  하지만 그녀를 만난 이후 나의 성격 또한 많이 누그러졌음이 틀림없기 때문이다. 

 

우린 이 세상 그 누구보다 부족함 투성이인 부부다.  그런데 우리 부부를 각기 떼어놓고 본다면, 정말 보잘 것 없는 데다 함께할 때보다 부족함이 훨씬 많은 사람들이다.  그나마 두 사람이 함께하니 모가 났던 부분도 부드러워지고 서로 간의 공백을 메울 수 있었던 셈이다.  아내의 위로 삐친 눈꼬리를 자연스럽게 내려가도록 만들었듯, 우린 앞으로도 상대방에게 더 좋은 영향을 미치며 곱게 살아갈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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